셰익스피어의 시간 속에서

영국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 에 다녀와서

지난 여름 영국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고 뿌듯했던 경험 중 하나는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한 일이다. 영국 문화의 진수를 느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셰익스피어를 빼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마침 무대와 가까운 좌석으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표가 남아 있었다. 예매에 성공한 순간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셰익스피어에 대해선 <로미오와 줄리엣>만 알았고 그 외의 작품은 잘 몰랐다. 그러던 중 김하나 작가의 <금빛 종소리>를 읽게 되었는데 셰익스피어의 <멕베스>가 소개되었다. 작가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고 나니 영미 문학 전반에서 얼마나 그의 작품이 깊이 스며들어있는지 새삼 느꼈다고 했다. 셰익스피어는 영미 문학의 바탕이자 토대였다. 이번 여행은 그런 셰익스피어의 세계를 직접 마주할 좋은 기회였다. 연극을 보기 전 도움이 될까 싶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셰익스피어> 책을 주문해 읽었다. 그러고 보니 예술 문화 및 인문학의 주요 인물을 다루고 있는 이 시리즈의 1번이 바로 셰익스피어였다.


현재의 글로브 극장은 17세기 야외 원형 극장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템스강 바로 앞에 있다. 테이트 모던과도 가까운데 전통적인 극장과 현대적인 미술관이 나란히 있는 것이 영국 문화의 조화를 엿볼 수 있는 장면 같았다.


극장에 가니 과거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그 옛날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연극을 보던 모습이 절로 생생하게 그려졌다. 당시 관객들은 배를 타고 템스강을 건너와 소까지 끌고 와 연극을 즐겼다고 한다. 영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와 예술에 대한 열망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런데 연극 본 날이 여행 막바지여서 많이 지쳐있었고 몸살 기운이 돌기도 해서 긴 연극에 집중하는 것이 좀 힘들었다. 오히려 걱정했던 아이가 연극에 푹 빠져 즐겁게 관람했다. 기억에 남는 점은 클레오파트라가 말을 하지 않고 동작으로만 감정을 표현했던 것이다. 그 모습이 굉장히 독특하고 이색적이었다. 아이 말로는 이집트인인 클레오파트라를 로마인 안토니우스와 대비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이라고 한다. 극이 시작되기 전 안토니우스 역을 맡은 배우가 이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고 하는데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또한 이날 연극에 출연하기로 한 배우가 갑작스럽게 사정이 생겨서 급히 다른 배우로 대체되었는데, 그 배우는 대본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한 상태라 태블릿 PC를 몸에 부착하고 연기를 했다. 그 상황이 극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 조금 아쉽기도 했는데 연극이 끝난 후 커튼콜에서 그 배우는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나 역시 손을 높이 들어 뜨겁게 박수를 쳤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우리에게 삶을 더 넓고 깊게 들여다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감정과 욕망은 모두 내 안에도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를 뿐, 그에 맞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따른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지붕이 뚫려 있는 야외극장이다 보니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또한 볼 수 있었다. 연극과 함께 시간이 흐르고 있는 이 순간을 함께 경험하는 것도 또 다른 의미를 더해주었다.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글로브 극장에서 본 연극은 매끄럽고 빈틈없이 잘 짜여진 콘텐츠라기보다는 그날의 배우, 예기치 못한 사건들, 날씨, 그리고 여기 모인 관객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연극 같았다. 무대의 배경이나 소품들이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점들이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현장감과 감성을 더 잘 살려주는 요소가 되었다.


이날 경험을 통해 나는 연극을 보는 것이 단순히 무대 위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함께 경험하고 그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과정임을 알았다. 문학에 대한 나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지고, 삶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진 느낌이 들었다.


영국 여행을 다녀온 후 셰익스피어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집을 사서 매일 아침 한 편씩 필사했다. 아침마다 그의 시를 한 줄씩 써 내려가며 그의 문학적 깊이를 다시 한번 느꼈다.

얼마 전에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었는데 셰익스피어의 글이 인용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고 반가웠다. 예전에는 그런 부분을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알고 있기에 그 문장들이 훨씬 더 눈에 잘 들어왔다. ‘슬픔은 앞에 있고 기쁨은 뒤에 있네’ 라고 말하는 셰익스피어. 삶의 고단함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살아가도록 이끌면서도 결코 희망은 놓지 않게 한다. 셰익스피어의 시간 속을 거닐고 있는 나는 문학을 오늘 더 사랑하게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런던에서 위키드를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