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차 타지 말고 엄마랑 같이 걸어갈래?”
월요일 저녁, 농구학원 갈 채비를 하던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좋죠!”라고 답했다.
올해 나는 직장이 멀어져 늘 피곤했고, 아이는 6학년이 되면서 예전처럼 시시콜콜 잘 이야기 하지 않았다. 진지한 대화가 아니어도 재밌는 일이나 웃긴 말, 소소한 일들을 나누던 일이 점점 줄어드니 집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밥 뭐 먹을래?” “숙제 했어?” “엄마 먼저 잘게”로 축약되는 우리의 대화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농구학원까지 걸어가며 나는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씩 물어봤다. 요새 같이 잘 노는 친구는 누군지, 주로 뭘 하며 노는지, 학교에서 재밌는 건 뭔지, 힘든 건 없는지, 요즘 관심사는 뭔지. 더 꼬치꼬치 묻고 싶었지만 아이가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걸 보니 귀찮아 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말 없이 조금 걷다가, 이번엔 내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금요일마다 독서 모임 가잖아. 그게 엄마한테는 참 즐거운 일이야. 이번 달에는 파스칼 카냐르의 <음악 수업>을 읽었거든. 그런데 읽어보니까 너무 어렵더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근데 있잖아.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좋은 거야.”
“뭔지 알아요. 저도 <지구 끝의 온실> 읽을 때 그랬어요.”
문득 꺼낸 아이의 공감이 반가웠고, 나는 더 이야기했다.
“작가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더라고. 그럼 내가 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래서 도서관에서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봤어. <세상의 모든 아침>이란 소설이 있어서 그걸 읽었는데 이건 장면이 다 그려지면서 너무 좋더라. 그러고 나니까 <음악 수업>에서 작가가 하려던 이야기도 조금은 알겠더라고.”
아이는 내 말에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서 걸었다. 나는 또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엄마 학교에서 학부모 공개수업을 했거든. 그때 주제가 <좋아하는 인물 소개하기>였는데 우리반 애들이...”
나는 나의 일상과 일, 관심사를 아이에게 이야기해줬다.
그때 느꼈다. 아이에게 이것저것 캐묻는 것보다 내가 먼저 내 이야기를 건네는 게 아이의 마음을 여는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는 걸. 아이는 자기가 보지 못하는 ‘엄마의 세계’에 귀를 기울이며 좀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원래는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바로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학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돌아가기로 했다. 마침 학원 근처 공원에서 라일락 향기가 진하게 풍겨왔다. 나는 벤치에 앉아 <비대칭> 소설을 읽으며 아이를 기다렸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곧 가로등 불이 켜졌다.
학원 끝날 시간이 되어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빠삐코와 시원한 생수를 샀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땀으로 흠뻑 젖은 아이가 학원에서 나왔다. 아이 이름을 부르자 손을 크게 흔들며 내게 뛰어왔다. 아이는 생수를 단숨에 들이켜고 빠삐코를 쭉쭉 빨며 “아, 시원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