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둘째 주, 넷째 주 금요일마다 동백의 반달서림에서 ‘반달금요클래식클럽’이라는 독서모임을 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읽는 일반 독서모임과 달리 이 모임은 예술 관련 도서를 읽고 나눈다.
뭔가를 시작했다가 얼마 안 돼 그만둔 적이 많은데 이 모임은 어느덧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 북클럽은 이제 나의 한 부분이 되어 만약 없어진다면 허전한 느낌이 들 것 같다. 앞으로도 금요일 저녁에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이 작은 서점으로 향하고 싶다.
이 독서모임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좋아하는 책, 음악, 미술,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이야기를 부담 없이 마음껏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독서모임에서 우리는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를 떨 듯 이야기한다. 자신이 얼마나 잘 아는지, 얼마나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모르면 모르겠다, 어려우면 어렵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런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에 나온 음악을 직접 들어보거나 작품을 찾아보기도 하고, 인상 깊었던 문장을 돌아가며 얘기한다. 최근 본 좋은 음악회나 전시도 추천하기도 한다.
이번 열두 번째 반달서림 음악회는 반달금요클래식클럽에서 읽었던 책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음악회를 통해 다시 책 이야기를 듣고, 그와 관련된 음악을 들으니 가물가물해진 책의 구체적 내용과 그때 받았던 감동들이 잔잔히 밀려왔다. 마치 좋았던 추억을 들춰보는 것처럼 그 감정을 한 번 더 깊이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때 써놓았던 메모들을 다이어리에 차근차근 옮겨 적는 느낌이었다.
음악회는 <생각의 음조>, <음악 수업>, <세이렌의 노래>, <피아노로 돌아가다>,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여기, 카미유클로델>,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책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반달금요클래식클럽의 모임장이자 아르케컬처 대표인 바이올리니스트 손다영 선생님이 기획한 공연이다.
선생님은 연주 실력이 훌륭할 뿐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이 뛰어나고 미학에 깊은 관심과 탐구심을 가진 분이다. 전문적인 음악적 지식을 쉽게 풀어 설명해주고, 연주자로서의 경험과 입장을 생생하게 들려주신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인품이 참 좋다. 항상 겸손한 태도로 상대방 이야기를 경청하고, 예술과 책에 대한 것이라면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신다. 때로는 독서모임에서 책에 나온 곡을 본인 바이올린을 꺼내 직접 연주해주시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마다 나는 마냥 행복해진다.
<생각의 음조>를 읽고 ‘플뤼겔’이란 단어를 알게 되었다. ‘날개’, ‘그랜드피아노’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가 마음에 들어 블로그 닉네임을 ‘플뤼겔’로 바꿨다. <세이렌의 노래>을 읽고는 그동안 잘 몰랐던 여성 작곡가들의 삶과 숨은 명곡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음악회에서는 에이미 비치의 <로망스>가 연주되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 있었구나 싶었다. 이 곡이 멘델스존, 슈만만큼 많은 무대에서 연주되길 바란다.
<나의 이브 생로랑에게>는 내가 사랑하는 책 중 하나다.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 생 로랑을 ‘언제나 기꺼이 감탄할 준비가 되어 있는 너’라고 표현했다. 그들은 취향과 사랑을 온전히 함께 나누며 예술적인 삶을 살아갔다. 음악회에서는 그들이 좋아했던 오페라와 관련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환상곡>이 연주되었다. 그 곡을 들으며 오페라 극장에서 나란히 앉아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열렬한 눈으로 바라봤던 피에르와 생로랑을 상상했다.
이번 음악회에는 어린이들도 참석했다. 그중 한 친구는 다른 음악회도 많이 다녀봤다고 했다. 서점 대표님이 그 친구에게 오늘 음악회 소감을 물으며 “큰 음악회와 오늘 음악회를 비교했을 때 어때요? 둘 중 어떤 게 좋아요?”라고 했더니 아이는 “둘 다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좋은 음향시설이 갖추어진 콘서트홀에서 듣는 음악회도 좋고, 작은 공간에서 정답게 모여 앉아 듣는 음악회도 좋다. 서점 음악회를 즐겨 찾는다는 한 관객의 말처럼 여기서는 모든 좌석이 VIP석이다.
어디든 음악이 흐르는 곳이라면, 그곳의 관객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