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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대화 나의 노래 Oct 05. 2022

영어책 잘 읽는 아이가 되려면

열 살인 아이는 대부분의 영화를 자막없이 봐도 이해합니다. 저는 알아듣지 못해 웃지 못하는 장면을 아이는 깔깔대면서 봐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영어로 말하고요.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거리길래 뭘 하나 보면 영어 이야기를 만들어 공책을 빽빽하게 채우더라고요.      



아이는 다섯 살 때부터 영어 영상을 매일 봤습니다. 조금씩 노출하기 시작해 여섯 살부터 여덟 살 때까지는 날마다 2~3시간씩 봤고요. 아홉 살 이후부터는 1~2시간 정도 시청합니다. 영상 컨텐츠는 주로 스토리가 있는 애니메이션을 봤습니다. 단어나 표현을 개별적으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 안의 유의미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습득하게 되면 기억에 오래 남고, 뜻과 용례가 명확하게 파악되어 활용성이 높아집니다. 또한 애니메이션은 대개 전문 성우가 녹음하기 때문에 정확한 발음을 들을 수 있고, 영상의 자극성이나 유해성 측면에서도 안심이 되고요.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은 서사와 주제를 담고 있어 책(문학 분야)과 가장 유사한 영상 콘텐츠라고 생각했습니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된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게 되면 ‘무슨 내용일까?’, ‘어떤 뜻일까?’, ‘다음 장면은 어떻게 될까?’ 등의 질문을 던지며 끊임없이 추론하게 되어 넓은 의미의 문해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보았죠.      


아이는 영어 영상을 곧잘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끔씩 읽어주는 영어 그림책에는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어요. 아이가 우리말 책은 보고 또 보는 책이 많았는데 영어 그림책은 그런 책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 아이를 보며 계속 영상만 보고 영어책은 외면하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우려와 달리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변했습니다. 제가 옆에 앉혀놓고 읽어주지 않는 이상 절대 혼자 영어책을 보는 법이 없던 아이가 스스로 영어책을 꺼내 들춰보더라고요. 아이가 변하기 시작한 건 영어라는 언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익숙해졌을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하루에 영상을 두세 시간씩 2년 정도 보자 귀가 트이고 입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아이에게 짧은 글로 이루어진 다비드 칼리의 <작가>라는 그림책을 읽어주었는데 아이는 그 책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이번에는 자기가 엄마에게 다시 읽어주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한글로 쓰여진 책을 영어로 바꿔 읽어주더라고요. 아이는 점점 영어가 재밌어지고, 호기심도 커진 듯했어요. 그런 단계에 이르자 아이는 영어책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아이에게 알파벳이나 파닉스를 따로 가르친 적이 없었지만 아이는 영어책을 읽었습니다. 아이는 <Leap Frog>라는 파닉스 DVD를 무척 좋아해 수없이 보았는데요. 이걸로 영어 철자와 발음의 원리를 모두 익힌 것 같아요. 먼저 스토리 중심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충분히 영어 노출을 한 후 파닉스 영상을 봤기에 흡수도 빠르고 효과적이었다고 봐요.       


아이는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영어독서프로그램(리딩게이트)를 열심히 했어요. 컴퓨터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아이는 독서 후 문제를 풀면 포인트를 획득하고 순위도 집계되는 형식의 독서프로그램을 게임을 하는 것처럼 재밌어했어요. 지금은 그때만큼의 흥미는 갖고 있지 않지만 입학 후부터 매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따로 어휘를 공부해본 적 없는 아이는 이 프로그램을 하며 어휘를 많이 외우게 되었고요. 이 프로그램에서 포인트를 많이 획득하기 위해 <Harry Potter> 시리즈 원서 읽기도 도전하게 되었어요.        


아이는 영상과 연계된 영어책을 잘 보았습니다. 영상을 통해 전체적인 내용이나 인물의 특징 등이 파악이 된 상태라 다른 책보다 쉽게 몰입하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틴틴의 모험’ DVD에 푹 빠져있는 아이에게 같은 시리즈의 책을 사주었는데요. 간만에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한 자리에서 앉아 한참을 보더라고요. “재밌니?” 라고 슬쩍 물었더니 아이는 흥분하며 답했습니다.


“이렇게 재밌는 부분이 DVD에서는 안 나왔어요. 책이 훨씬 재밌어요!”     

혹시나 오해 하실까 봐 말씀드립니다. 아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펼치고, 책을 한 번 집어 들면 몇 시간씩 빠져 읽고, 이 책 저 책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는, 그런 아이 아닙니다. 밖에서 친구들이랑 노는 것과 책 보는 것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신발 신는 아이입니다.     

 


그래도 아이에게 “책을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으면 “책은 재밌죠!”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딱히 할 일이 없거나 많이 놀고 난 후 책장에 꽂혀있는 책 한 권을 쓱 빼서 침대에 벌렁 누워 킥킥거리며 보고요. 길을 가다 서점이 보이면 들러서 구경하고 싶어 합니다. 책을 폭넓게 읽지는 않지만 본인이 마음에 드는 책은 연필을 들고 밑줄까지 그으며 몇 번이고 읽고요. “엄마가 책 읽어줄까?” 하면 언제나 기분 좋게 “좋아요!”를 외칩니다. ‘온가족 책읽기’ 시간이 되면 하품하는 아빠에게 자기가 재미있게 본 책을 건네며 이것 좀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하고요.      


책의 재미를 아는 아이는 결코 영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책이 주는 즐거움과 가치가 아이 내면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면 영어를 배우게 되었을 때 영어책을 꼭 읽고 싶어 해요. 아이가 영어책을 잘 읽었으면 좋겠다 싶으시다면 영어 학습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 먼저 책이 익숙하고 편한 아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어 주세요. 영어 영상에서 영어책으로 확장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우리말 독서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입니다.      


저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매일 우리말 책을 읽어주었어요. 아이가 글자를 읽을 줄 알아도 책 읽어주기는 계속했습니다. 혼자 읽는 것보다 함께 읽을 때,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도 나눌 때 책이 재밌어지기 때문이에요. 책 이야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 부분 재밌다’, ‘이 문장 좋다’, ‘이거 보니까 무엇무엇이 생각난다’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고요. 때론 말하지 않고 읽기만 해도 좋습니다.    

  

저는 오늘도 열 살인 아이에게 잠자기 전 C.S. 루이스의 <사자와 마녀와 옷장>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한글 해득을 얼마나 빨리하느냐,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책을 즐겁게 읽어본 경험, 책을 통해 교감을 나누고 소통을 해본 경험이 아이로 하여금 책을 펼치게 합니다. 그리고 영어책도 읽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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