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의 대화 나의 노래 Nov 07. 2022

기억하고 싶어 CD를 산다

프로그램북에 적어놓은 '여음'

유튜브 프리미엄에 가입한 후에는 음악을 CD보다 유튜브로 많이 듣게 된다. 그런데도 콘서트홀에서 판매하던 카바코스 바흐 CD를 샀다. 이날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나는 지난 일요일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혼자 1시간을 운전해 바다 위 아름다운 공연장을 찾았다. 카바코스가 연주하는 바흐를 듣고 싶었다.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은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소리가 좋다고 호평을 받는 곳이다. 나는 2년 전 아이와 송도로 1박 2일 여행 왔을 때 이곳에서 <모차르트 모자이크> 공연을 봤다. 그때는 다른 공연장과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날은 ‘여기 다르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소리가 흩어지지 않고 명징하게 귀에 꽂혀 연주자가 전하는 음악을 온전하게 받는 기분이다. 어떤 연주보다 한 악기의 소리를 오롯이 들을 수 있는 독주회에 빛을 발하는 곳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카바코스의 연주였기에 더 그랬겠지만.


나는 5열 14번 자리에 앉았다. 카바코스가 활을 그으며 내는 숨소리까지 들리는 자리였다. 공연 전 안내 방송이 나왔다. 여음이 끝날 때까지 박수, 환호는 삼가달라는 내용이었다. 특별하게 당부하는 안내 방송이 인상적이어서 프로그램북에 '여음'이라는 단어를 적어놓았다.


카바코스의 바흐 소나타&파르티타를 듣는 내내 성당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거룩하게 연주하는 카바코스의 모습은 제단 위의 수도자 같았다. 음악을 들으며 나는 자꾸 기도하게 됐다. 그의 음악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내 깊은 속내를 신께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카바코스는 마치 내 연주를 방해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한 카리스마를 보이며 고도의 집중력으로 빈틈없는 연주를 했다. 곡을 모두 연주한 후에도 활을 내리지 않고 한참을 그대로 있던 그를 보며 여음이 음악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러다 연주가 끝날 때는 한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카바코스. 그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관객의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다. 관객에게 진심어린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연주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공연이 끝나고 홀에 비치된 <김선욱 &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 <파비오 비온디 & 에우로파 갈란테 “사계”> 홍보 브로셔를 챙겨왔다. 프로그램을 훑어보니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이 있다. 11월에 혼자 또 와야지 다짐을 하며 공연장 문을 힘차게 밀었다. 바람에서 바다 내음이 조금 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CD를 튼다. 공연장에서 들었던 숨소리가 섞인 그의 연주 소리가 들린다.



Leonidas Kavakos

Bach Sonata & Partitas

2022.10.16. Sun 3pm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작가의 이전글 영어책 잘 읽는 아이가 되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