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의 대화 나의 노래 Dec 22. 2022

음악의 언어

고된 시기에도 찬란한 순간이 있어


‘마리아 조앙 피레스’라는 이름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 모른다. 그녀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앞두고 꼭 가고 싶다는 마음에 다이어리만 펴면 나도 모르게 끄적였다. 표를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예매하고 그냥 가면 될 것을 나는 그게 쉽지 않다.      


공연은 화요일 저녁. 아이가 축구 학원 가는 날. 학원보다 공연 끝나는 시간이 더 늦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수험생인 남편에게 부탁할까 하다 이내 관뒀다. 남편은 말하면 들어주긴 한다. 그러나 자기 공부 스케줄이 흐트러지는 게 싫은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수년째 아이 돌봄에 관한 모든 것을 오롯이 내가 맡고 있는데 고작 하루 아니 네다섯 시간을 흔쾌히 봐주지 못한다. 남편에게 합격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고 있지만 야속한 건 어쩔 수 없다.      


아이에게 1순위는 축구다. 여행지에 가서도 그 지역 운동장을 찾아 축구를 해야 하는 아이다. 나는 거절 당할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화요일에 예술의전당 가는 거 어때? 축구 학원은 한번 빠지고.”

“nope!”이라는 대답이 세차게 들려올 줄 알았으나 웬일인지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 고민한다. 그러더니 하는 말.

“모차르트(예술의전당 내에 있는 카페)에서 오징어먹물 리조또 먹을 거죠?”

“그럼. 치킨앤칩스도 사줄게.”

세상에 이런 일이! 아이가 축구 학원을 빠지고 음악회에 간다고 했다.    

  

마리아 조앙 피레스 연주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던 건 유튜브에서 우연히 그녀의 연주를 듣고 나서다. 퇴근 후 아이 저녁을 부리나케 차려준 후 끈적거리는 주방 바닥을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어 걸레를 든 날이었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고 엎드려 눌어붙은 때를 박박 문질렀다. 몸은 피곤에 절어있는데 흘러나오는 음악은 감미로웠다. 녹턴.      


마음이 저릿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녹턴을 들었지만 눈물이 날 것 같은 녹턴은 처음이었다. 나는 걸레를 내려놓고 싱크대 앞에 주저앉아 가만히 음악을 들었다. 음악이 귀에만 머물지 않고 내 마음에 닿을 때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음을 느낀다. 음악에서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가 들렸다. 

‘삶은 그렇단다. 이렇게 고단할 때가 있단다.’ 

매일 나는 퇴근 후 그녀의 녹턴을 들었다. 


공연 당일 제시간에 퇴근하기 위해 업무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서울로 향했다. 비가 내렸고 도로는 몹시 막혔다. 아이에게는 핸드폰을 쥐여 주고 평소 주말에만 보게 하는 유튜브 축구 영상을 마음껏 보게 해주었다. 운전하는 내내 음악 대신 축구 방송을 들었다. 40분이면 가는 거리를 1시간 반 가까이 걸려 도착했을 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도 곧 근사한 저녁과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모차르트 카페로 달려갔다. 그런데 카페는 이미 만석. 배고프고 힘들다는 아이를 달래가며 꼬박 30분을 넘게 기다렸다가 겨우 들어갔다. 사람이 많아 테이블에 마주 앉은 아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주문한 음식을 오래 기다렸다. ‘기어코 음악회에 오려고 했던 내 선택이 잘못일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할 때, 입 주변을 온통 오징어먹물로 검게 묻히며 접시에 밥알을 싹싹 긁어먹는 아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조금 웃음이 났다. 


우리는 공연장 3층에 앉았다. 티켓값도 부담되고 행여 아이가 부스럭거려 다른 관객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주위에 사람 없는 자리를 찾다가 결국 3층 좌석을 골랐다.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는 가파르고 높아서 아찔하기도 했으나 생각보다 무대도 잘 보이고 소리도 좋아 나쁘지 않았다. 우리 앞자리에는 혼자 오신 외국인 할아버지가 앉으셨다. 찬 바람이 부는 날 타국에서 홀로 공연장을 찾아 슈베르트를 듣는 할아버지에게 음악은 무엇일까. 


짧은 은발의 44년생 포르투갈 할머니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 의상과 용모는 마치 파주 헤이리에 사는 인심 좋은 예술가 같은 모습이었다. 소박하면서도 진실해 보였고 무엇보다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두 손을 모으고 관객에게 여러 번 인사하며 겸손하고도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일 때 저렇게 아름답게 늙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1부 내내 자는 아이에게 어깨를 빌려주느라 지쳐서일까. 좀처럼 연주에 잘 몰입되지 않았다. 실연인데도 집에서 스피커로 들을 때보다 그녀만의 투명하고 섬세한 감성을 느끼지 못해 아쉬웠다. 프로그램북에 ‘엄마, 몇 분 남았어요?’를 써서 몇 번씩 보여주던 아이가 신경 쓰여 마지막 곡 슈베르트 소나타 21번이 끝나고 커튼콜을 할 때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세가 있는 연주자들은 앙코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미련없이 문밖을 나섰는데 음악 소리가 들렸다.     


다시 들어갈까 하다 문밖에 설치된 무대 모니터 앞으로 갔다. 이곳에는 아이와 나 둘뿐. 화면에는 피아니스트의 주름진 얼굴과 나이 든 작은 손이 그대로 보였다. 아이를 꼭 껴안고 모니터 아래에서 그녀의 앙코르 연주를 들었다.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무수히 많은 별들이 우리에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아이는 “엄마, 진짜 좋다!”라고 말하며 나를 더 꼬옥 안았다. 그녀는 음악으로 말하고 있었다. 

‘봐봐. 고된 시기에도 찬란한 순간이 있어.’ 


집에 가려고 차에 타자 아이는 바로 축구 봐도 되냐고 묻는다. 나는 정말 못 말린다는 뜻으로 두 손을 들었다가 아이에게 순순히 핸드폰을 건넨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져 물어본다.

“오늘 어떻게 축구 학원 안 갈 생각을 했어?”

아이는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무심하게 말한다.

“엄마가 너무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내 곁에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      


Franz Schubert, Piano Sonata No. 13 in A Major, D 664 

Claude Debussy, Suite Bergamasque L. 75

Franz Schubert, Piano Sonata No. 21 in B-flat Major, D 960 

Claude Debussy, Deux Arabesque No.1     

2022.11.22. Tue 7:30 pm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매거진의 이전글 진짜 음악이 흐르는 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