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올 한올 마음의 결을 살려
2년 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공연을 봤었다. 정명훈의 지휘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김선욱 협연)과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연주했었는데, 잊지 못할 공연이었다.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명징하고 아름다운 연주에 여유가 있으면서도 지휘자와 협연자에게 존경을 보이는 단원들의 에티튜드까지. 빈필, 베를린필 공연을 봤을 때보다 훨씬 큰 감동을 받았다. 나에게 No.1 오케스트라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다.
조성진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만남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완벽한 조합이다. 게다가 지휘는 정명훈. 너무 가고 싶었다. 하지만 예매사이트 들어갈 때마다 언제나 매진. 그런데 하루는 슈클(클래식 동호회 네이버 카페) 게시판을 보다가 예매사이트의 취소표가 새벽 2시쯤에 풀린다는 정보를 얻게 됐다. 마침 그때 나는 유럽 여행을 다녀온 직후라 시차 적응을 못 하고 있어 새벽 2시에도 눈이 말똥말똥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새벽 2시에 노트북을 열었다. 정말 표가 있었다. 매번 하얗기만 했던 좌석에 보라색(R석), 초록색(S석), 하늘색(A석) 등이 곳곳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 접속자가 많아서 그런지 쉽게 예매되지는 않았다. 인내심을 갖고 여러 번 새로고침을 했다. 결국 R석 예매에 성공!
티켓팅이 하도 치열해 내 생애 조성진의 공연은 못 보겠다 싶었는데 드디어 보게 된 날. 조성진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연주였다. 음악 안에 들어있는 서사와 그 곡을 썼을 당시 음악가의 마음과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연주자의 존재감이 너무 강해 조성진만 보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피아니스트, 오케스트라 모두 본인들을 드러내기보다는 차이콥스키를 온전히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특히 2악장에서 첼로와 피아노가 주고받은 선율이 아름다워 기억이 남는다. 조성진은 첼로 쪽을 보고 호흡을 맞춰가며 연주를 했는데 첼로 수석의 표정이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앵콜곡 브람스의 카프리치오 2번까지 조성진은 어찌나 섬세한지. 한올 한올 마음의 결을 살려 연주한다. 내 자리 위치 때문인지 오케스트라에 피아노 소리가 조금 묻히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점이 아쉽긴 했다. 이번 공연에서 조성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제껏 클래식 공연에서 이렇게 큰 박수와 환호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다들 너나 할 것 없이 조성진에 열광해 왠지 휩쓸리지 않고 거리를 두고 싶었는데 그의 연주를 실제로 들으니 나 또한 어쩔 수 없다. 1부가 끝나고 데스크로 가서 얼마 전 나온 그의 신보 헨델 프로젝트 CD를 샀다.
브람스 교향곡 1번도 너무나 좋았다. 정명훈은 악보없이 지휘했는데 브람스를 완전히 통달한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건 단원들이 지휘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휘자의 곡 해석을 존중하고 그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구현하려는 의지와 열정이 보였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정말 조화롭고, 음악적 전달력이 뛰어난 오케스트라인 것 같다. 특히 관악기가 아주 훌륭해서 감탄하며 들었다. 좋은 오케스트라는 확실히 관악기가 강한 듯하다.
이번에도 앙코르곡은 지난 공연과 마찬가지로 ‘헝가리 무곡 1번’이었다. 지휘자가 단상에 오르자마자 음악이 바로 시작되는데 기분이 들떴다. 헝가리 무곡은 나를 포함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앙코르곡이 아닐까. 마지막에 정명훈은 끊임없이 박수 치는 관객들을 향해 환히 웃으며 모두 일어나자는 제스처를 보였다. 관객들이 다 같이 일어나서 손을 높이 들고 환호를 보냈다. 그 순간은 음악으로 충만해진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티켓값이 비싸 공연이 끝나고 따로 저녁을 사 먹지 않았다. 차에서 다시 조성진의 연주를 들으며 집에서 싸간 고구마와 아몬드우유를 먹었다. 집에 가는 길이 좀 막혔지만 콧노래가 나왔다.
2023.3.4. Sat 5PM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