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가 있어서 다행인 봄
남편 시험이 끝나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 중의 하나가 온가족 다같이 음악회에 가는 것이다. 그동안은 아이와 나만 다녔다. 드디어 일요일 저녁, 왼쪽에 남편 오른쪽에 아들 팔짱을 끼고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갔다. 우리가 간 공연장은 광주 남한산성아트홀. 같은 공연을 예당, 롯콘에서도 했지만 굳이 광주로 간 건 가격이 좋기 때문. 남한산성아트홀은 지방 공연장임에도 좋은 음악회가 곧잘 열려 종종 찾곤 한다. 지난해 이곳에서는 김선욱, 선우예권 등이 출연한 피아노 페스티벌이 열렸고, 임윤찬이 KBS 교향악단과 협연을 했었다.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는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의 대표 관현악단으로, 특히 모차르트 연주가 훌륭하기로 유명하다. 이날 연주곡은 모차르트 교향곡 40번과 35번 그리고 바이올린 협주곡 5번. 첫 곡 1악장 첫 마디를 듣는 순간부터 나는 나지막이 탄성을 자아내고 말았다. 옆에 있는 남편에게 귓속말로 “봐봐. 다르지?”라고 하니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화음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아낌없이 보여줬다. 때론 여러 악기들이 내는 소리를 듣는 게 버거워 교향곡을 꺼렸던 내게 ‘이렇게 아름다운데도?’라고 묻는 듯했다. 너무나 조화로워 여러 악기가 정말 하나의 마음이 되어 연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주는 듣는 내내 편안하고 행복했다.
지휘자 아담 피셔는 유머가 있고 그야말로 음악을 즐겼다. 1악장이 끝나고 박수 치는 관객이 있었는데 싫은 내색 없이 살짝 인사를 하며 부드럽게 넘어가 주었다. 그러면서 2악장이 끝나고 나서는 ‘이번에는 박수 안 쳤네. 고마워’ 하는 뜻으로 재치있게 관객 쪽을 바라봤다. 음악에 대한 몰입감이 대단해 지휘를 할 때는 권투를 하는 동작을 하기도 하고 두 발을 구르기도 하며 매우 열정적이었다.
바이올린 협주곡도 매력적이었다. 1부 때 푹 잤던 아이도 바이올린 협주곡은 빠져 들으며 연주자가 멋있다고 했다. 레이 첸의 연주는 자신감이 넘쳤으며 자유롭고 개방적인 느낌이었다. 그는 악보대로 정확하게 연주하려고 하기보다는 오케스트라, 관객과 교감하며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 같았다. 모차르트 협주곡도 좋았지만 앵콜곡으로 연주한 이자이, 파가니니의 곡들이 그와 더 잘 어울려 보였다.
처음에는 작은 도시의 공연장에 관객도 많지 않고 해서 오케스트라가 대충 연주하는 건 아닐까 좀 염려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지휘자, 협연자 모두 최선을 다해 연주해 주었다. 그들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무대에 섰을 때와 오늘의 무대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날 연주에 정성과 애정을 보여줬다.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그래서 누굴 만나든 음악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어한다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무덤덤해 보였던 관객석도 곡이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달라졌다. 박수와 환호 소리가 점점 커졌고, 마지막 앵콜곡이 끝날 땐 거의 모든 관객이 기립 박수를 쳤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마음이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에게도 똑같이 가닿은 것 같았다.
사실 모차르트는 우리 부부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 결혼 전, 남편과 내가 본격적으로 연인 사이가 된 것도 남편이 나에게 <마술피리> 오페라를 보러 가자고 했을 때부터였고, 둘 다 모차르트를 좋아해 신혼여행도 빈으로 갔었으니까. 연애 때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문화적 소양이 풍부한 남편이 그저 멋있어 보였는데. 나에게 대화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사람이기도 했고. 그러나 결혼 10년 차인 지금은 ‘저 사람은 왜 저러지?’를 밥 먹듯 생각하며 한숨을 쉴 때가 많다.
그래도 이날 정말 오랜만에 좋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나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리에겐 모차르트가 있었지.’
공연장을 나와 앞서가는 남편을 따라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오늘 공연 어땠어?”
“난 좀 놀랬어. 완전 감동!”
모차르트가 있어서, 모차르테움이 있어서 다행인 봄이다.
2023.3.12. Sun 5PM
남한산성아트홀 대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