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한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자전거 앞자리에 태워 다방에 데려가 요구르트를 손에 쥐어주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아주 커다란 방 하나가 우리집이던 것을. 안집 할머니가 계셨고, 마당 한 켠에 는 수도펌프가 있어 거기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나는 기억한다, 외할머니댁 녹이 슨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좁고 기다란 화단에 피어있던 빨간 사루비아 꽃을. 나는 꽃의 하얀색 끝부분을 쪽쪽 빨아 먹었다. 옅게 달짝지근한 맛이 났고, 실컷 뽑아 먹다 꽃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쯤 그만두었다.
나는 기억한다, 아빠가 다니는 농협의 직원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잔디밭에서 야유회를 했던 것을. 평소 얌전하다는 말을 듣던 나는 베이지색 바지가 새까매질 때까지 잔디밭에서 뒹굴고 미끄러졌다. 그 통쾌함과 자유로움이란!
나는 기억한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학교 앞에 있는 자기 집에 가서 물건을 가져오라고 심부름 보냈던 것을. 선생님 방에는 책들이 놓인 네모난 상이 있었고, 좋은 냄새가 났다. 좀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얼른 물건만 갖고 나왔다.
나는 기억한다, 치악산 기념품 가게에서 나뭇잎 위에 붓펜으로 시를 써 코팅해서 팔던 것을. 하나 사주겠다는 아빠 말에 여러 개를 놓고 고민하다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쓰여진 것을 골랐다.
나는 기억한다, 고등학교 야자시간 친구와 옥상 위에 올라가 밤의 도시 불빛을 보며 “넌 뭘 하고 싶어?”라고 묻던 날을.
나는 기억한다, 11월 아주 추웠던 날 명동의 샐러드바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소니 CDP를 들고 짙은 초록색 니트를 입은 너에게 걸어갔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랑했던 날들이 점점 잊혀지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할머니 입관식 날 예순이 다 된 엄마가 어린 아이처럼 울며 “엄마, 하늘 나라에서 행복하세요”라고 말하던 것을.
* 강성은 시인님의 시창작 수업에서 조 브레이너드의 <나는 기억한다>를 읽고 썼던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