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서재

How We Live at Home with Book | 니나 프루덴버거

by 해인

인테리어 책이 아니다.

8개국 15개 도시에 사는 예술가 32명의 개인 서재를 탐방한 이야기다.

그중에는 보르헤스, 에코, 롤랑 바르트와 작업한 편집자의 서재(라고 하기엔 너무 방대한 도서관?)도 있고, 표지 장정 만으로 재소유욕을 자극하는 펭귄 clothbound classics 시리즈를 직접 디자인한 디자이너의 서재도 있다. 파리에 가면 으레 들르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주인의 서재도 있고, 멕시코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화가의 서재도 있다. 생태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곳도 있고, 그냥 서재 자체가 아름다운 박물관 같은 곳도 있다. 뉴욕 한복판의 로프트 같은 곳에 좁고 기다란 서재도 있고, 운 좋게 문 닫는 서점에서 구해온 책장으로 개인 서재를 꾸민 곳도 있다. 한 마디로 ‘책에 미쳐 사는 사람들의 은밀한 공간’을 기꺼이 내어 보여주었다. 책에 대한 그들의 지극한 사랑과 함께. 눈요기에 그치지 않고, 세상에 나처럼 미친 사람이(나보다 훨씬 더 미친 사람이) 많다는 안도감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끼는 환희와 반가움을 떠받치는 근간이다.


남동생과 같은 방을 쓰던 어린 시절부터 혼자 사는 작고 초라한 옥탑방, 엉겁결에 시작한 신혼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만 골라 리트리버가 걸레로 만들어버린 지금 사는 집까지 책장과 서재는 아마도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나의 관심사와 업을 규정하는 무수한 카테고리가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진화의 창이라고나 할까. 읽는 속도는 사는 속도를 절대 따라가지 못하기에 철 지난 책들은 무참히 방출되었다. 밤바다 책장의 책들이 무너지는 두려움에 잠이 들었다는 동생의 증언처럼 끊임없이 증식하는 책들은 절제할 수 없는 욕망의 증거처럼 느껴져 늘 책장 이상으로 책을 들이지 않겠다는 마음속 다짐을 되새기곤 했다. 그렇게 주기적으로 사는 것과 내보내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이없이 쓸려나간 책을 다시 사고, 그걸 왜 방출했나 어처구니없는 심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분명 방출할 때는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 간절해지는 건 단지 없어서가 아니라 그 당시의 내가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도 사람처럼 언제 어느 때 만나는가가 중요한 인연의 포인트다. 다리가 부러져 입원하지 않았더라면 까라마조프형제들과 악령을 한달음에 읽어내는 일은 아마 영원히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끔 상상한다. 나는 언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게 될까. 차분히 앉아 오로지 그 책에만 전념할 수 있는 때는 과연 언제일까? 하지만 책장을 보면 들끓었던 욕망과 지나간 열정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부끄러움에 흔적조차 지우고자 했던 노력도 부서진 낙엽처럼 어디선가 뒹굴고 있는 걸 발견한다. 책의 내용이 아닌 장정에 공들인 책들을 허영이라 치부한 적도 있었고, 비주얼만으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요리책들에 꽂힌 적도 있었다. 지금은 물성이 아름다운 책들은 이북 유무와 상관없이 사들인다. 얼마 있지 않으면 절판될 거란 걸 너무 잘 알기에. 내용 없이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책들도 한계를 알지만 순간의 만족을 위해 기꺼이 지불한다. 그나마 비교적 저렴한 사치라고 자위하면서.


책을 읽는 일은 고된 일이다. 눈이 침침해지고, 허리가 무너진다. 등이 굽고 어깨가 뻣뻣해진다. 읽는 즐거움에는 대가가 따른다. 어떤 이는 책으로 둘러싸인 자신만의 요람을 만들어 '리딩누크'라고 이름 짓기도 하고, 어떤 이는 고심해서 구입한 TV 모니터 앞을 결국 넘쳐나는 책들로 쌓아버렸다. 끊임없이 자가증식하는 책과 읽으면서 치러야 하는 몸의 대가 사이에서 각자 찾은 방법들이 나의 관심 포인트였다. 나의 경우엔 읽을 수 있는 장소를 최대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방구석에서만 읽는 게 아니라 거실에서 읽을 수 있도록 소파를 치운 것, 하루 종일 읽어도 자기 전에 읽는 것만큼 짜릿한 것이 없기에 침대 옆 책상을 마련한 것, 그러고도 침대에 기대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도록 커다란 쿠션을 배치한 것. 최근에 개발한 방법으로는 서서 읽는 것이다. 가끔씩 눈을 들었을 때 멀리 초록이 보이는 곳이면 더욱 좋다. 저절로 안구운동이 되므로. 가까운 활자를 읽다가 먼 곳에 초점을 맞추면 눈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 곳을 걸어서 다닐 수 있게 하루의 일과를 조정한다. 가급적 움직이면서 읽는 것. 워밍업을 위한 쉬운 책부터 원서와 대조해 봐야 하는 벽돌책과 오디오북과 함께 읽을 전자책이 담긴 노트북이 든 가방은 더 큰 내구성을 원하며 아름다움과 기능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영어 원서의 경우 혹사한 시력 때문에 모니터로 활자를 크게 키워놓고 보는 게 편하다. 구석구석 샅샅이 뒤져 볼 수 있는 검색 기능 때문에 책을 야무지게 탐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다 너무 좋은 책이 있으면 원서, 번역서 등을 차례로 구입한다. 결국 좋은 책은 디지털, 아날로그 버전을 모두 갖게 된다. 그런 지위의 영예를 누리게 되는 책은 그리 많진 않다. 리베카 솔닛, 마가렛 에트우드, 메리 비어드, 어슐라 르 귄 정도. 한때 폴 오스터와 필립 로쓰, 윌리엄 포크너, 존 치버, 레이먼드 카버의 전작읽기에 열중하던 적이 있는데, 여전히 믿고 볼 수 있는 작가들이긴 하지만 예전의 열정이 식은 건 사실이다. 아마 시작은 헤밍웨이겠지. 하루키와 쿤데라도 당연히. 쿨하고 멋진 그들의 지적인 면모가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기꺼이 굴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좀 식상하달까. 아 모르겠다. 여전히 믿고 보는데, 심장의 저 밑바닥까지 들썩이진 않는다. 미안하지만 그들의 남성스러움이 더 이상 내게 매력적이지 않다고 해야 하나.


그 모든 열정의 궤적이 책장에 담겨있다.


이제 방출하기를 멈추고 조심스럽게 구입한 책들로 지나간 열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책장을 가지고 싶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책을 보고. 아마 사모은 책들을 완독하고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처럼 책장에는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읽지 않은 책 따위에 대한 죄책감은 1도 없다. 푸코가 그랬다지? 앞으로 읽을 책들 사이를 걷는 일은 참 설레는 일이라고. 보르헤스였나? 도서관처럼 가득 찬 책들을 보며 저 많은 책들을 다 읽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누가 다 읽은 책을 전시하는 바보도 있냐며 구시렁거린 게. 몇 년 간 펼쳐보지 못한 장서들이 마치 갚지 못한 채무 같아 모두 방출해 버리고 난 지금 난 조금씩 그때 그 책들을 다시 사모은다. 그리고 혼자 다짐한다. 구매 버튼을 누를 때는 반드시 두 번 생각한다고. 한 번 장바구니에 담은 다음 며칠이 지나도 사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할 때 진짜 버튼을 누르겠다고. 그러면서 위안도 잊지 않는다. 이 정도면 그렇게 미친 건 아니라고. 그리고 이 정도도 미치지 않으면 대체 인생이 무슨 재미가 있겠냐고. 가장 보람 있고, 뚜렷한 행복을 보장하는 광기가 아니겠냐고.


저자의 첫 책은 느긋한 바닷가 서퍼들의 집을 구경한 모음집(<Surf Shack: Laid-Back Living by the Water>)이고, 얼마 후 나올 책은 산장에 지은 서재 탐방 순례(<Mountain House: Studies in Elevated Design>)다. 그저 그런 겉핥기식의 자랑질이 아닐 거란 걸 알기에 그녀의 지난 책과 앞으로 나올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다. 내일모레쯤 결제 버튼을 누르게 될 것 같다.


9780525575443-5.jpeg 멕시코 예술가 페드로 레예스가 아내 카를라 프레난데스와 만든 콘크리트 빌트인 책장


EPu7xvQU4AAxiLh.jpg 펭귄의 Clothbound Classics 시리즈를 디자인한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의 서재


11.jpeg 읽다가 잠들 수 있는 알론스의 리딩 누크(reading nook)


91rGYHKZxsL._AC_UF1000,1000_QL80_.jpg 책과 직물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예술가 요나다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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