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내 마음속의 조

<작은 아씨들> by 루이자 메이 알콧

by 해인

그러니까 다른 세상 일과 마찬가지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작은 아씨들>은 언제나 내 곁을 맴돈다. 어린 시절엔 조를 보면서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고,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에 개봉한 그레타 거윅의 동명 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 보며 두 번 다 펑펑 울었고, 서점에서 펭귄 clothbound classics를 사겠다고 가서는 <Little Women>을 보고 두 말 없이 집어 들고 하루 종일 감탄사를 연발하며 눈알이 빠지도록 읽었다. 참고로 펭귄 clothbound classics는 그저 멋진 표지로 재포장한 고전이 아니라 아주 훌륭한 서문을 덧붙여 책의 완성도를 올린 것이 특징이다. <작은 아씨들>처럼 소설의 배경이 중요한 경우 서문은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겠다.


<제2의 성>을 쓴 시몬 드 보부아르도 자신을 소설 속 조와 동일시하며 작가인 루이자 메이 알콧(Louisa May Alcott)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고백하듯 이 소설은 위대한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페미니즘 소설’로 간주된다. 어린 시절 작은 아씨들 만화영화를 보고 자란 이들에게, 혹은 작은 아씨들의 줄거리를 어렴풋이 아는 이들에게 이 소설이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하면 의아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작은 아씨들은 원작에서 많이 수정, 개작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죽을 때까지 가족의 생계는 물론, 자매들이 일찍 죽으며 남긴 조카들까지 책임지며 글을 써야 했던 알콧은 자신의 페르소나인 조를 끝까지 결혼시키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출판사의 강력한 요청과 자신의 책을 함께 출간하기 원했던 알콧의 아버지 브론슨의 강권, 그리고 1부를 출간하고 쇄도하는 독자들의 간절한 요청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그레타 거윅의 영화가 훌륭한 건, 그런 저간의 사정을 영화 속에서 절묘하게 그려냈다는 데 있다. 조가 소설 속 주인공을 결혼시키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독일인 선생 바우어와 결혼하게 하는 장면을 할리우드 식으로 풍자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조와 앙숙으로 그려지곤 했던 에이미의 입을 통해 결혼에 대한 자신과 알콧, 그리고 조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As a woman, there is no way to make money.
Even if I had my own money,
it would belong to my husband the minute we are married.
If we had children, they would belong to him, not me.
They would be his property. So don't sit there and tell me that marriage isn't an economic proposition, because it is.


조를 연모했던 로리를 좋아했던 에이미. 에이미가 그림공부를 위해 파리에 갔을 때 로리를 만나 자신은 부자와 결혼하겠다는 얘기를 하자 로리가 아, 그거 너무 경제적인 선택 아니야?라고 묻자 에이미가 쏘아붙이는 대사다. 그레타 거윅은 이 대사를 슛이 들어가기 10분 전에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편하게 앉아서 결혼이 경제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말하지 마, (결혼은) 그러니까.” 조는 소설 속 주인공을 결혼시켜버리지 않으면 출간하기 힘들다는 출판업자에게 말한다. “I suppose marriage has always been an economic proposition, even in fiction." 심지어 소설 속에서도 결혼은 경제적인 선택이라는. 그레타 거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여성, 예술 그리고 돈”에 대한 영화라고 밝힌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매들의 우정, 또는 여성과 사랑 등으로 작품의 주제를 떠올리는 반면에 말이다.


<자기만의 방>을 쓴 버지니아 울프는 ‘왜 위대한 여성 작가가 없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한 생각을 묻자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왜 위대한 여성작가가 없느냐, 가 아니라 왜 여성들은 계속 가난했는지라고 물어야 한다고. 자기만의 방은 경제적인 자립을 의미한다고. 방은 공간이 아니라 돈을 의미한다고. 루이자 메이 알콧은 당대 에머슨과 교류하던 저명한 철학자 아버지 아비스 브론슨 알콧과 아비 메이 알콧 사이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이상은 높았으나 그는 경제적으로 돈을 벌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그냥 가난한 게 아니라 찢어지게 가난했다. 알콧이 일찍부터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 그녀는 글을 쓰기 위해서 다른 일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삯바느질, 교사, 간호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녀가 양손잡이가 된 것은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린 오른손이 경련이 오거나 피가 나더라도 나머지 한 손으로 밤새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마법의 망토(scribbling suit)를 두르고 다락방으로 올라가 글을 쓴 것도 잉크를 묻히고, 피가 묻어도 되는 ‘작업복’을 갈아입는 것이었다.


이상적인 아버지에 대한 알콧의 심정은 양가적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이상과 알콧 가족들의 고난(Bronson’s visions and the Alcott family’s hardships)”을 주제로 풍자적인 글을 쓰려고 계획했다. 제목은 “불쌍한 가족(The Pathetic Family)” 또는 “이상의 대가(The Cost of Idea)”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시작하며 그 계획을 철회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상적인 실험을 다루는 대신 그를 남북전쟁에 보내버리고 마치가 자매들이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충실한 딸(dutiful daughter)이 되는 동시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예술가(rebellious fantasist)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나 몰라라 하는 무능하고 허울뿐인 가장이 아니라 자신의 힘이 닿는 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 진짜 가장이 되었다. 그녀가 문학적으로 가장 많이 타협했을 때는 첫째 언니가 어린 조카 둘을 남기고 죽었을 때, 그리고 여동생이 아이를 낳다가 죽었을 때이다. 평생 죽어라 일하고 글 쓰고 (물론 경제적인 성취를 이루긴 했으나) 독신으로 살다가 죽은 루이자 메이 알콧. 영화 오프닝에 “I’d have a lot of troubles, so I write jolly tales.”라는 알콧의 인용구에 처음부터 왈칵 눈물이 쏟아졌던 이유는 아마 그런 그녀의 삶의 무게가 한순간 닥쳐왔기 때문일 것이다.


루이자 메이 알콧의 손을 떠난 작은아씨들은 무신경한 편집자들의 손과 출판업자의 의도에 따라 조금씩 지속적으로 개작되었다. 전통적인 규범적 어머니가 아니었던, 또 다른 조와 같았던 엄마 마미는 단정해지고, 조보다 키가 작았던 로리는 훨씬 더 매력적인 남성으로 변신했다. 지금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정숙한 <작은 아씨들>이다. 펭귄 표지는 ‘가위’를 모티프로 디자인을 했다. 직접적으로는 소설 속 조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잘라야 했던 에피소드에서 가져왔을 것이고, 은유적으로는 소설이 겪어야 했던 에디팅의 수난을 상징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알콧의 엄마인 아비 메이 알콧도 당시 규범적인 여인상에서는 좀 벗어났던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알콧의 할머니는 그녀의 딸, 그러니까 알콧의 엄마에게 “There are some natures too noble to curb, too lofty to bend”라곤 했고, 그레타 거윅은 그 대사를 마미의 입을 빌려 조에게 준다. 자신의 거친 성질을 다스리지 못하는 걸 고민하는 조에게. 세상의 말괄량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명대사가 아닐 수 없다. 남자애들이 거칠면 ‘아이들이 크면서 다 그렇지’라고 하지만 여자애가 거칠면 ‘커서 뭐가 될래, 그러면 시집 못 간다’부터 별의별 소리를 다 듣는다. 나는 그게 하도 억울해서 분이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자애들이 그러면 사내다운 것이고, 여자애가 뛰놀면 가정교육을 못 받은 것 같은 분위기? 알콧은 사랑과 예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I believe a woman can & ought to have both
if she has the power and courage to win them(love and art).
A man expect them, and achieve them.
Why is not a woman’s life to be as full and free as his?


그리고 예술은 끊임없이 누군가로부터 영감을 받아야 하는 천재의 그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묵묵히 노동으로 일구어내는 성취라고. 19세기적 예술관에 전면적으로 반대입장을 취하는 알콧의 지점은 뮤즈를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남성적 예술관과 전면적으로 다른 입장에 서 있다. 그리고 누가 그저 그런 소녀들 이야기에 관심이 있겠느냐고 체념하는 조에게 에이미는 다시 똑 부러지게 일갈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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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complained, Who will be interested in a story of domestic struggles and joys? It doesn't have any real importance.
And Amy said, Maybe we don't see those things as important because people don't write about them.
Jo said, No, writing doesn't confer importance, it reflects it.
Amy said, Writing will make them more important.
Jo surprised at her saying, When did you become so wise?
Amy answered, I always have been, you were just too busy noticing my faults.


<작은 아씨들>에 대한 단상을 쓰다가 영화 이야기가 길어지고 말았다. 루이자 메이 알콧에 대한 정밀한 리서치가 바탕이 된 할리우드 영화였고, 그 리서치의 한복판에 펭귄 시리즈의 서문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다음 나오는 읽기 목록을 샅샅이 뒤져 읽어서 그런 영화가 나온 게 아니었을까, 그레타 거윅의 인터뷰들을 샅샅이 훑어본 후의 결론이다.


언제가 가슴을 울리는 베스의 대사.


You're a writer.
Even before anyone knew or paid you.
I am very sick and you must do what I say.
Do what Mamee taught us to do.
Do it for someone else.


조금은 느리더라도, 조금은 게으르더라도, 약속을 향해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단 걸 다시 한번 상기하게 만드는 베스의 당부. 그리고 영화를 능가하는 원전의 활달한 기운이 좋은 펭귄 시리즈의 <작은 아씨들>. 조금 늦었지만 베스의 당부를 떠올리며 몇 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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