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를 꿈꿀 때,『무진기행』
일하던 중에 문득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나요? 경쟁사회에서 치열하게 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은 ‘떠나고픈 마음’의 원조 격인 참고 자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960년대, 산업화 초기의 사회인 감수성이 드러나는 작품이기 때문이죠.
가상의 도시인 ‘무진’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안개나루’ 쯤 되겠군요. 말 그대로 안개가 자욱한 바닷가 소도시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밤하늘의 별보다 많은 빌딩 숲 불빛으로 가득 찬 대도심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죠. 무진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모티브로 쓰이기도 했지요. 너울대는 안개 너머 흐릿한 사물을 상상해 봅시다. 어쩐지 신비해 보이죠?
안개가 신비로운 이유는 그 너머에 있는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것이 확실해야 하는 숫자와 데이터의 시대에 살고 있죠. 어떤 분이 <무진기행>을 보고 자기도 안개 너머로 사라지듯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한 말이 떠오르네요. 좀 지쳐 보이는 비즈니스 캐주얼차림의 직장인 참여자였죠. 거칠게 축약하자면, 직장인이 출근해서 하는 일은 숫자를 잘 다듬는 일이지요. 예상 매출액, 생산 수량, 목표 수치, 고객 데이터… 써놓고 보니 참 숨 막히는 숫자의 향연이군요.
그런데 숫자는 이미 우리 개인의 삶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숫자로 축약된 인생은 명료하다 못해 막막할 정도죠. 연봉과 수입, 자산과 부채, 카드값과 통장 잔고, 나이와 혈당 수치, 키와 몸무게, 카톡 친구 숫자와 인스타 팔로워 등등. 이렇게 숫자는 분명 우리 삶을 확실하게 만들어주지만, 가끔 숫자가 우리에게 확실한 폭력을 저지른다고 느낄 때면 도망치고 싶어지더군요.
여기서 한 가지 의문 제기가 가능합니다. 과연 1960년대의 삶과 2020년대의 삶이 같을까요? 숫자와 안개라는 단어로 뭉떵그리기엔 한국 사회가 반세기 동안 너무 많은 역사를 이룬 건 아닐지요. 그런 맥락에서 사실 저는 이 책의 유통기한이 다 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새천년’이라는 말도 낡은 말로 여겨지는 2020년대, 과연 1960년대에 나온 ‘무진기행’이 과연 유효한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는 책일지….
특히나 이 책으로 모임을 할 때는 MZ세대의 막내 격, Z세대인 90년대~00년대 출생자도 몇 명 참석한 만큼 걱정이 앞섰습니다. 세대 간 갈등이 심화 중인 요즘, 이분들은 부모의 부모 세대 시절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련지요. 당장 바로 앞에 앉은 X세대(70년대생) 참여자와는 소통이 가능할까요?
어쨌든 모임은 시작됩니다. 지금 모임 참여자 중 최연장자와 최연소자는 50대 회사 부장님과 20대 취준생입니다. 사회 생활에서는 서로 수평적으로 대하기 무척 어려운 연배 차이죠. 실제로 젊은 직원들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며 고충을 토로하는 중년 모임원도 본 적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서는 서로 평등한 모임원입니다. 참여자들은 각자 성인 대 성인으로 서로 존중하며 존대합니다. 불필요한 개인 정보는 밝히지도, 묻지도 않고 책과 대화에 집중합니다.
서른 즈음, 한창 사회생활 중이라는 모임원이 감상평을 남깁니다. “남자들이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구려요.” 존댓말을 해도 어쩐지 하대 같고, 반말하는 건 너무 자연스럽게 여긴다는 겁니다. 술자리에서 노래를 시키는 것도 이해가 안되고요. 걱정했던 부분이지만, 솔직한 감상이라 오히려 고맙기도 합니다. 1960년대 인물들의 대화를 Z세대가 바로 공감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어요.
비판은 좋습니다. 다만 현대의 관점으로 과거의 상황을 무작정 심판하는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면 좀 곤란합니다. 아무래도 다양한 감상이나 의견을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됩니다. 일단은 첫 발언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비판에 동조하는 분들 두세명이 불편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을 겨냥해 책에 집중 포화를 가합니다. 이 시점에서 고전은 그저 낡고 죽어있는, 빛바랜 무언가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때 중년의 한 참여자가 대답합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죠? 제가 첫 직장 다닐 때는 회식 분위기가 소설 속 분위기와 비슷했어요. 억지로 노래 부르는 일도 참 흔했죠.” 온건한 감상에 상대적으로 젊은 참여자가 되받습니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요즘도 여전히 문제가 있어요. 제가 다니는 회사에도 불편한 일이 있었고요.” 슬슬 개인의 경험으로 대화의 물꼬가 트입니다. 이 쯤에서 <무진기행>은 아득하게 먼 역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개인의 경험과 생각이 부딪히는 토론의 장으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참여자들은 안개 속에서 길을 찾듯이 토론에 임합니다. 용기 있게 발언하고 조심스레 반론에 나섭니다. 요즘도 차별 문제가 다 해결된 게 아니라는 의견, 주인공의 태도에 대한 비판, 시대상에 대한 솔직한 묘사가 불편했다는 감상과 오히려 좋았다는 감상 등을 서로 주고받습니다.
시간이 지나 토론이 무르익지만, 의견 차이가 완전히 좁혀지지는 않습니다. 이건 오히려 건강한 일입니다. 토론은 각자의 개인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는 영역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단, 서로의 의견을 보존한 채, 공존의 길로 나아가려면 무언가 더 필요합니다.
그때 가장 어린 참여자, 00년대 이후 출생한 취준생 모임원이 골똘히 생각하다 입을 엽니다.
"저는요, 젊은 여자 선생님, 하인숙의 마음이 어쩐지 공감이 갔어요. 답답할 거예요. 저도 종종 다른 곳의 삶을 상상하고 그랬거든요.”
희뿌연 안개가 조금 걷히는 느낌이 듭니다. 2000년대에 태어난 MZ세대의 막내뻘이 시대 배경 상 1930년대에 태어났을 등장인물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떤 이들은 기어이 책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진정성 있는 감상은 울림과 비슷합니다. 그 울림에 공명하듯, 여러 참여자가 공감하며 말을 이어나갑니다. ‘다른 삶’을 상상하고 말하며 사유를 확장시켜 갑니다.
나아가 어째서 여성이 다른 삶을 상상하기 위해 남성에게 의존하는 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사회였는지, 그런 시대적 상황을 짚어봅니다. 현대의 가치관으로 편리하게 과거를 심판하고 재빨리 답을 내려버리지 않기 위해서, 고전을 깊이 헤아리고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여러분 각자의 무진은 어디인가요?” 대화의 막바지, 누군가 던진 질문에 어쩐지 자리에 활기가 돕니다. 모든 참여자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자기가 지쳐버렸을 때 떠나는 장소를 공유하기 시작합니다. 나만 아는 경주의 아늑한 도서관, 동해 바닷가, 한적한 미술관, 문 닫고 방구석, 퇴근길의 혼술바 등등. 나는 어떨 때 지치고, 어떻게 자신을 돌보는지 각자의 무진을 말하고 경청합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어려운 말이 있습니다. 본래 다른 시대에 있어야 할 사회적 요소들이 같은 시대에 공존하는 걸 의미하죠. 아리송하니 좀 더 풀어볼까요?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동시에 있지 않던 것들이 동시에 있는 사례는 생각보다 흔합니다. 가령 서울이라는 도시는 어떤가요. 조선시대에 지은 궁궐과 성문이 시가지 곳곳에 특유의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산업화 이후에 지은 높다란 빌딩과 아파트가 우뚝 서서 건축물의 숲을 이루죠. 그 근처에 새로 짓는 건물들은 IoT와 자동화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건축 공법으로 뼈대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 건물들 사이사이로 식민지, 해방, 전쟁을 거친 세대와 산업화, 권위주의 정권을 거친 세대, 그리고 민주화와 기술혁명 가운데 태어난 세대가 서로 지나치며 걸어갑니다. 이들이 가진 고민은 누가 주로 들어주나요? 바로 무속인, 심리상담사, 대화형 AI입니다. 이 모든 존재가 서울이라는 도시에 공존합니다.
그런데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개념은 원래 에른스트 블로흐라는 독일 철학자가 당시의 사회적 충돌과 갈등, 퇴행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입니다. 서로 다른 시대의 사회적 요소들이 모여 있는데 조용할 리가 있겠어요? 당시 독일 뿐만 아니라 한국처럼 고도발전한 국가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하지요. 요즘 우리 사회는 사회적 갈등으로 늘 시끄럽습니다. 실제로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개념 중 자주 인용되는 개념을 꼽자면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높은 순위를 차지할 겁니다. 그런데 이 개념이 <무진기행> 모임과 무슨 상관이냐고요?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조금 낯선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봅니다. 20세기를 지나온 세대와 21세기만이 현재였던 세대가, 고전 텍스트와 현대의 질문이 한자리에 동시에 모였습니다. 이질적인 참여자들은 서로 좀 어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책을 통한 해석과 경험, 질문과 경청, 사유와 토론으로 서로의 거리를 좁혀갑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로 공존합니다.
한 공간에 책, 사람, 세대, 질문이 모두 어우러지는 경험은 특이합니다. 사람 눈에 총기가 돌듯, 공간 자체에 빛이 감도는 느낌이 든달까요. 그런 공간은 숫자가 지배하는 익숙한 공간이 아닙니다. 낯선 공간 속에서 책은 새 순간을 얻습니다. 다양한 사람의 대화가 풍성히 영글면 죽어있던 책도 되살아나고, 다시 생명을 얻은 책은 다시금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게 우리는 책을 통해 일상 속 새 장소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텍스트의 안개 너머 여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 내 속의 무언가는 분명히 바뀌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