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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별 Aug 12. 2022

내 마음의 벽

브리타 테켄트럽의 그림책 '빨간 벽'을 읽고


  내 머릿 속에는 또다른 내가 있다. 그녀의 생김새는 나와 다를 바 없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다.

  팔짱을 낀 채 나를 감시하며 일거수일투족 참견을 한다. 어찌나 간섭이 심한지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다.

 

내가 귀를 막을 기세라도 보이면 보란 듯이 몸을 크게 부풀려 머릿 속을 가득 채운다. 내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못된 심보다.

그녀는 지독한 완벽주의자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작은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특히 잔소리가 심하다.


  실수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개인적인 일부터 공적인 일까지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너는 그것밖에 안되느냐.' , '해 봤자 안된다.', '네 주제를 알아라.' 등등. 마치 나의 불행을 즐기는 것처럼.


 그녀를 피해 도망치려고 해 본 적이 있다. 사실 도망이라기 보다는 외면이었다. 보고도 못 본척하고 들어도 못 들은 척하다 보면 혹시나 나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헛수고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곧  나이기에 나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 머릿속 마음의 벽은 바로 나 자신이다. 뛰어넘으려 해도 안되고 숨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정면승부다.


  이도저도 안된다면 정정당당히 그녀와 맞서는 수밖에 없다. 대신 그녀와 싸워 이기려면 나만의 무기가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믿음이라 생각한다.


  흔들리지 않는 나 자신을 향한 믿음.


  오늘도 나는 그녀와 한 판 붙었다. 새해를 맞아 부푼 마음에 이것저것 온라인 스터디를 시작했는데 아직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가 큰 것이 문제였다.


  그녀는 나를 압박했다. '그러게 능력도 안 되는 걸 왜 시작을 해서 사서 고생을 하냐' 한다.


  그래서 보란듯이 오늘 그 걱정을 뒤집어 주었다. 부지런히 오늘 할 일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 내일 것까지 미리 끝냈다. 할 말이 없어진 그녀는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어디 구석에 숨었는지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


  언제 그녀가 다시 나타나 활기를 칠 지 모르겠다. 나 또한 흔들리지 않는다고 자신할 순 없다. 그렇지만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거나 넘을 필요는 없다. 그저 올라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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