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 첫 번째 편지
병마와 싸우시는 아빠께 드리는 막내딸의 고백
사랑하는 아빠 보세요.
얼마 만에 쓰는 편지일까요. 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썼던 어버이날 편지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사실 그 편지도 엄마, 아빠 두 분 모두께 드리는 편지였으니 어쩌면 아빠께 쓰는 편지는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어요.
편지를 쓸 때 항상 고민되는 부분이 호칭이에요. 평소에는 '엄마, 아빠'라고 부르면서 편지를 쓸 때는 왠지 '어머니께, 아버지께'라고 써야 될 것만 같거든요. 그러나 막상 적고 나면 너무나 어색한 편지가 되어버리고는 했죠. 교과서처럼 상투적이고 가식적인 느낌이었어요.
오늘은 그래서 '아빠'라는 호칭을 쓰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래야 제 진심을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치 아빠께 직접 이야기하듯이요. 물론 아빠를 닮아 무뚝뚝한 성격 덕분에 이렇게 말 대신 글로 전하게 되었다는 점은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뚱딴지같이 웬 편지냐고요? 갑자기 살갑게 굴어 오글거리신다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잖아요.
편지를 쓰기까지 오랜 시간을 고민했어요. 그렇지만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하나였습니다. 늦기 전에 저의 진심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요. 아빠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숙고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이기적인 생각이더라고요. 아빠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결국은 제 자신을 스스로 만족시키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글은 두 가지가 다 가능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아빠께 조금이나마 기쁨이 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아빠 옆에서 이 편지를 직접 읽어드리고 싶은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요? 아버지를 뵙지 못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은 것 같아요. 다시 뵐 수만 있다면 아빠 손 꼭 붙잡고 있을래요.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전화로 밖에 아버지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답답했어요. 그래프의 수치가, 엑스레이 결과가 아빠의 몸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하고 계신지 알려주었고 저희는 그저 기도할 뿐이었지요. 아빠의 몸이 조금만 더 버텨주시기를, 아직은 때가 아니기를...
아무 일도 없는 듯 뻔뻔하게 일상을 살아내고 있어요. 강심장이라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지더라고요. 아이들이 배고플까 밥을 챙기고, 집안 곳곳을 치워야 하고, 밤이 되면 잠을 자고요. 저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기적인 제 모습이 참 싫습니다.
혹자는 아픈 가족이 원하는 것은 다른 가족들이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라는데 제 생각에 그건 잘못된 말인 것 같아요. 입장을 바꿔 만약 제가 아픈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면 전 솔직히 배가 아플 것 같거든요. 제 생각이 너무 짧은 걸까요?
이런, 글로 쓰는 편지인데도 쓸데없는 이야기가 너무 길었지요? 어렸을 때도 그러더니 이놈의 습관은 바뀌지를 않네요. 편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만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말았습니다.
앞으로의 편지는 아빠와 저의 이야기예요.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말, 부끄러워 전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려고 합니다. 아빠가 기억하지 못하시는 일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더 잘 알고 계시는 일들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냥 아빠와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왜 그동안은 하지 못했을까,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고마움을 깨닫는 것일까 아쉬울 뿐이에요.
생각만 하던 편지를 드디어 이렇게 쓰게 되었네요. 시작하는 편지라 그런지 가슴이 벅차고 기대가 돼요. 마지막 편지를 쓰는 그날까지만이라도 아빠와 함께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빌어봅니다. 아빠, 힘내세요, 사랑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