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걱정되는 것은 오직 당신의 안위 뿐입니다. 아이들의 말처럼 아빠가 계신 곳, 그곳이 땅 속이든 하늘이든, 그 어딘가에는 더 이상의 아픔도 고통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어딘가를 보며 생각합니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저를 지켜봐 주실 당신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한 때 신이라는 조물주를 향했던 기도라는 혼잣말이 어느 샌가 아빠에게 속삭이는 마음의 귓속말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편지가 이렇게까지 늦어질 줄 몰랐어요. 열심히 편지를 쓰고 아빠 앞에서 부끄러운 민낯으로 읽어드리고 싶었던 마음은 평생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 되어 버렸지만, 글로써 마음을 전하기로 했던 약속은 지키고 싶어 용기를 냈어요.
벌써 일 년이 지났어요. 일 년 전 오늘, 전 아빠와 마지막으로 눈을 맞추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아빠의 얼굴을 뵙고는 살짝 상기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열심히 두 번째 편지를 적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아빠는 그 날 밤을 넘기시지 못했죠. 저도 다음 날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고요. 오죽 힘드셨으면 그러셨을까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야속하고 속상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단 한 줄도 편지를 쓸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삐딱해져 버렸거든요. 하늘과 땅에 계시는 신이라는 모든 신들에게 기도를 드렸는데, 제 기도는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으셨으니까요. 텔레비전을 보면 기적같은 일이 잘도 일어나던데, 왜 우리 가족에게는 기적은 커녕 작은 희망조차 주어지지 못했던 걸까요.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 돌보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의욕도 없고 무기력한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몸은 바삐 움직였지만 영혼은 안드로메다에 가 있는 느낌이었어요. 아빠가 보시기에는 한심하셨겠지만 그 때는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해요.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원망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지는 거예요. 마를 새 없던 눈물샘은 나도 모르는 사이 안정을 되찾고, 단단하고 냉담하기만 했던 감정의 벽도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빠와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조마조마한 가슴을 부여잡고 병원으로 향하던 바로 이 시간, 엉망진창 내 맘대로 제사상을 차려 놓고는 아빠를 그리워해 봅니다.
제사라기 보다는 아빠께 주전부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까요. 아빠가 생전에 좋아하셨던 오징어랑, 제가 좋아하는 곶감이랑, 마침 집에 사과랑 배도 있었고요. 저희 집에 있는 접시 중에 제일 비싸고 예쁜 접시에 담아 작은 다과상을 준비해 봤습니다.
저, 잘 지내고 있어요. 요즘은 정신도 좀 차렸는지 하루하루 바쁘고 알차게 보내는 중입니다. 철없고 실수투성이인건 여전한데 아빠가 걱정하실만큼은 아니니, 이제 마음을 놓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어른이 되고 나서 한 번도 제가 어른 같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는데, 지난 일년을 보내면서 아주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시간날 때마다 종종 편지 드릴게요. 오늘도 눈물 한 바가지 쏟고 편지를 쓰려니 벌써 다음 편지가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