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파 짝사랑의 아이콘
안녕? 혹시 이별 후유증으로 도저히 몸이 안 움직이고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느껴져? 정상이야. 그럴 땐 억지로 힘내지 마. 오늘은 너랑 같이 이불 속에서 울어 줄 형을 모셔 왔어. 바로 가곡의 왕이자 짝사랑의 아이콘, 슈베르트야. 이 형은 사랑 때문에 마음도 몸도 병을 얻을 만큼 지독하게 아파 봤거든. 슈베르트 형이 알려 주는 이별 후유증 극복법, 딱 세 가지만 기억해.
슈베르트는 첫사랑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가난해서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에서 결혼 허가를 안 내줘서 강제로 헤어졌어. 또, 제자였던 백작 영애를 짝사랑할 땐 신분의 벽 때문에 고백 한 번 못 해 보고 속만 태웠지. 돈 없고 빽 없어서 사랑을 놓쳐야 했던 그 억울함, 상상이 가? 이 형의 인생 역작 <겨울 나그네>는 바로 그런 지독한 상처 속에서 탄생했어. 연인에게 차인 남자가 한겨울에 정처 없이 떠돌며 부르는 24 개의 노래야. 첫 곡 밤 인사(Gute Nacht)부터 아주 작정하고 우울을 때려 박아. 당시 슈베르트가 친구들 앞에서 이 곡을 처음 선보였을 때 다들 노래가 너무 우울해서 당황했을 정도였대. 근데 슈베르트는 "난 이 노래들이 세상 그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고 했지.
슬플 땐 신나는 노래 듣지 마. 그건 감정 기만이야. 차라리 슬픈 노래 들으면서 감정의 바닥을 찍고 와. 원래 바닥을 확인해야 그걸 지지대 삼아 다시 치고 올라올 수 있는 법이니까.
사랑이 떠나면 인생의 목적지가 사라진 것 같지? 슈베르트 형도 그랬어. 하지만 그에겐 사랑보다 더 큰 북극성 같은 존재가 있었는데, 바로 베토벤 선배였어.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위대함에 경외심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하면 베토벤 선배처럼 위대한 음악을 나만의 색깔로 쓸 수 있을까?'를 평생 고민했거든. 실제로 베토벤이 죽었을 때 슈베르트가 직접 장례식 운구 행렬에서 횃불을 들었고 '베토벤 선배 옆에 묻어 달라'라고 유언을 남겼어. 결국 지금 둘은 비엔나 중앙 묘지에 나란히 누워 있지. 죽어서까지 동경하던 사람 곁에 남다니, 이 정도면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덕후 아니냐?
너도 연애 말고 니 가슴을 뛰게 하는 다른 목표를 찾아 봐. 그게 덕질이어도 좋고 공부나 취미여도 좋아. 사랑은 배신해도 니가 쌓아온 열정은 널 배신 안 해.
슈베르트 형은 사실 엄청나게 가난했어. 자기 피아노 한 대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도 형이 굶어 죽지 않고 명곡을 쏟아낸 비결? 바로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라는 모임 덕분이야. 요즘으로 치면 '팬들의 덕질 살롱'이자 '상부상조 커뮤니티'였지. 친구들이 돈 모아서 방 구해 주고, 악보 내주고, 밤마다 술 사 주며 "야, 슈베르트! 니 노래가 최고야!"라고 응원해 줬거든. 슈베르트 곁엔 화려한 연인은 없었을지 몰라도 그의 재능을 믿어 주는 화가, 시인, 가수 친구들이 항상 북적였어.
이별하고 혼자 동굴에 들어가지 마. 니 가치를 알아주는 친구 한두 명이면 충분해. 걔네들이랑 떡볶이 먹으면서 전 애인 욕도 좀 하고 웃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상처에 새살이 돋아 있을 거야.
슈베르트 형은 비록 31 살이라는 짧은 생을 마쳤지만 그가 남긴 600 곡 넘는 가곡들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어. 사랑은 사라졌어도 그가 남긴 예술은 영원한 거지.
야, 그러니까 슬프면 실컷 울어도 돼. 슈베르트 형의 <겨울 나그네> 한 바퀴 정주행하고 내일은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