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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zzy Jun 22. 2021

참으면 병 돼

언젠간 내게 참깨! 라면.

라면을 끊은 지 3개월 째. 별 무리 없이 참고 있다.

오늘만 라면 먹자,는 측근의 설득에도 안 넘어갔다.

외식을 할 때도 최대한 짬뽕집을 피해 다닌다.

컵라면을 습관적으로 먹던 내가

라면을 끊어간다는 게 스스로 신기해,

조금 더 버티고 있다.


술은 끊은 지는 올해로 10년이 됐다.

친한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즐기는 편이고

술이 약하긴 해도 적당히 들어갔을 때의 기분을

좋아했던 터라 

어떻게 참을까 싶었지만 그게 벌써 10년이다.

술자리에 있어도 술은 안 마시는 덤덤한 사람이

되었지만 누군가는 내게 술을 안 마시고도

덜 깬 사람 같다 했다. 술 대신 기분 먹는 사람이니

그런 말도 일리는 있다.

그래서 라면도 석 달이 삼 년 되고 십 년 되고 그럴 것 같다.

라면은 안 먹어도 라면은 되게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

라면 안 좋아하는 사람을

사실 우리 주변에서 찾기 어렵긴 하다.  국민 분식.


사회적 인간으로 라면과 술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극기훈련이지만.

각종 위염, 두통, 식도염, 전정신경염,

기분파로서의 후유증 등을

겪다 보면 참는 고통을 택하는 편이 더 낫다.

애초에 불균형에 대한 대가였을 것이므로

다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라,

어쩌면 지금의 인내가 아니라

미리 많이 써버린 어떤 것에 대한 과거의 대가라는 생각도 든다.

라면도 너무 많이 먹어서

그 총량을 거의 채웠으니 이젠 줄이라는 것이고,

음주도 인내하지 않고 기분파로 확 들이붓다가

절제를 상실한 대가로 얻는 금주라든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 많은 폭주가 20-30대 초에 몰려있는 걸 보면

확실히 체력이 받쳐줄 때와 아닐 때가 구분이

되는 듯하다.

몸이 역효과를 내는 순간에, 결국 선택을 하는 것이니깐.


몇 달 째 체기로 고생한 나는 밀가루나 커피 등을 끊어 가는 중이다.

그리고 묘하게도

여러 날 참았다가 다시 손을 대면

커피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확 당기진 않는다.


밀가루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건 삼립 크림빵이었다.

동그랗고 두 쪽으로 되어

가운데 흰 크림이 가득 발린 빵.

슈돌 벤틀리 번지점프 편에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담력을 드러내었던 아가 벤틀리가

지상에 착취한 뒤,

바로 엄마를 보고 싶어하며 먹은 빵.

얼마나 맛있어 보이던지...

어느 날 나는 가까운 이와 터미널 편의점에서

밥 대신 우유와 삼립 크림빵을 사서 먹었다.

정류장에서 먹는 크림빵! 낭만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웬 걸. 진짜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크림빵의 엄청난 매력은 결국

생각 속에서 더 강했고,

나로선 너무 먹어본 맛이고

심지어 이제는 이별해도 되는 맛이었다.

귀여운 벤틀리에게는 새로운 세계의 맛이

이미 나이 든 내게는 그냥 시중의 무수한 빵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때 비로소 그 유명한 다이어트 명언,

옥주현의 어록 중 하나,

이미 먹어본 맛이라는 게 뭔 의미인지 와닿았다.

벤틀리는 뭘 먹어도 다 맛있게 먹는다. 크림빵 소중히 아껴 먹는 벤틀리. 역시 삼립 크림빵은 갈라 먹어야 맛있지.

https://youtu.be/q3R_nwwP82w

크림빵 맛나게 먹는 윌리엄과 벤틀리. 윌벤져스 ♥



그래도 다시 먹으면 예전처럼 맛있을 것이라

기다려지는 밀가루 라면은 있다.

바로 참깨라면.

나는 참깨라면을 맛보다는 기분으로 먹는다.

예전에 연극팀에서 날을 새는데,

그 날 밤을 새던 팀에서 그 라면을 먹었다.

당시 참깨라면의 존재를 전혀 몰랐던 나는,

그날 이후로 참깨라면을 편애하게 됐다.

연극하는 그 밤이 그리운 날 참깨라면을 먹곤 했다.

연극하는 이들의 어떤 집념어린 마음과 부지런한 몸 상태를

꽤 좋아했던 나는

나도 연극을 한다는 정체성은 없이,

연극하는 이들을 동경하는 입장에서

같이 일하곤 했는데

참깨라면을 먹던 밤 문득 나도 일원인가,

라는 생각을 했고 그 마음이 참깨라면을

보면 떠오른다.

그 당시 고양의 어느 카페에서 밤을 새며

작업이 이뤄졌고 날이 새면 곧 관객이

들어올 시간이었다.

나는 관객을 만나기 직전까지

작품을 손보고 연기를 다지고

일 분 일 초 더 나은 것을 위해

갈고 닦는 연극인들이 멋지다고 여겼다.

그때 역할은 영이었던 것도 같고 크레딧은

드라마터그으나 거의 노 액션.

의 기억서 나의 행동은 삭제되고 없는데

기분은, 기억하면 고단하고 노곤하나 레던 상태로.

날을 꼬박 새었다.

다음 날 날이 새고

친구들도 관객으로 왔을 때

그들은 처음 겪어 보는 새로운 배경에

낯선 거리감이 반, 초심으로 돌아가 신세계를 만난 듯한

맘이 반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연극인의 살롱에 초대 받은 기분이라고.

친구들 마음도 나와 조금 다르지만

비슷했던 것 같다.

내게 참깨라면을 먹으며 야간 작업의 변해가는

작품을 보며 설레었던 마음은,

거리감은 없었지만 처음 접한 하얀 크림빵 크림이나

참깨라면 사각 계란, 참깨스러운 느낌였다.


새로운 것에 매료되길 은연 중에 원하던 상태에서

만난 이들이 연극인들이었다.

물론 더 시간이 지나 보니

연극인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절대 묶을 수 없고,

나는 그저 나의 연극팀을 좋아했단 깨달음으로

귀결되었지만.

고쳐가고 고쳐가며 수련해가듯 작품을 대하는

그밤의 설렘은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참고 참다가

너무 라면이 먹고 싶는 날은,

연극인의 정신을 스스로 기리는 음식으로

참깨라면 컵라면을 지정했다.


목표로 하는 몸무게가 되면 먹어야겠다.


나의 사랑...? 참깨 라면 . 참지 마세요 ~ 참으면 병 돼! 늘 깨달음을 주는 나의 사랑 벤토리.



https://youtu.be/6rG-nuk1Gqk

슈돌 눈물의 깨옥춘 편. 보고 또 보는 중독성클립. 이 영상을 알고 나면 딱 한 번 본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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