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그대에게

라이브 대신 스크린

by 레아


코로나 19로

실제 무대를 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극장의 스타들이 나오는 티브이 영상물을

아끼어 때때로

골라 보고 있다.

연극, 뮤지컬 등의 배우 연기를 눈앞에서 보다가

영상 매체를 통해 보면

마치 가까운 친구를 보는 양 반갑다.


요새 보는 드라마는 2018년 봄날 티브이엔에서

방영했던 '시를 잊은 그대에게'이다.

병원 물리치료사들의 일상을 담은 코메디컬 드라마로,

의학 병동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배경으로

매회마다 각 인물의 관계나 일적 변화를 보여준다.

코믹한 요소가 강하고

몇몇 인물들이 대놓고 몸개그나 웃픈 장면들을

연출해 시청하다 종종 짠하게 웃게 된다.

김재범 배우의 출연작이라 보기 시작했다.

병원 내 개성 강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첫 회부터 주인공 보영(이유비)을 못살게 구는

가볍고 얄미운 선배 김시원으로 등장한다.

자기 일을 대놓고 떠맡기거나

면전에 대고 정 떨어질 만하게 말하는 등

사사건건 밉상으로 행동하는데,

3회 차 중반을 넘어가며

가장의 고충을 토로하는

현실적이고 짠한 인물로

변해간다.

직장에서, 맞벌이하는 부인을 위해

카드 영업을 능청스레 대신하는 장면부터

스르르 김시원에 대한 얄미움이 풀린다.


일단 무대에서 엄청 빛나는 인물로만 보다가

진상 캐릭터로 나오는 게 충격적이나

대개의 무대 배우들이 강렬한 연기로

영상 매체 문을 열었던 걸 고려하면

최대한 망가지는 연기를 보여주니 정겹고,

허공 속의 우아한 극장 대사들과 대조돼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드라마 대사를 읊어주는 게 흥미롭다.

물론 광기나 비탄, 희열 등의 감정도 기존에 보았으나

그마저도 무대에서는 거룩하게 표현되기 때문에

대놓고 얄밉게 느끼도록 만드는 생활 연기는 낯설고

적응이 안 되다가

초반 회차 관람 끝에 금세 정이 들었다.


드라마는 시를 감상하는 좀 다른 형식이라

기존에 못 본 화면도 선물이다.

매 회 주요 시 한 편이 말미에 배우들 배경에

깨끗한 폰트로 깔리는데 한 줄 한 줄 뭉클하다.


3회차 김재범, 이유비, 이준혁 옆에 게재된 시 구절은

김용택 시인의 '참 좋은 당신'으로

지금 힘겨운 봄을 보내는 코로나 19 형국에도

위로가 되는 시이다.


일 연은 주인공의 심경을 대변하다

다음 연으로 넘어갈 때

버스 안 퇴근길 김재범 배우의 장면에 투영된다.

가정의 번뇌와 직장의 힘겨움 사이 고뇌하는 자연인.

그에게 이 구절이 깔린다.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


내적 성장과 웃음을 보일 수 있는,

고통을 통과한 빛!

그런 빛을 만들고 또 보고 싶은 봄밤 시청하기 좋은 작.

지지난해 작품이나

이 드라마는 2020 사회적 거리두기의

지금 사람들이 보며 힘을 낼 만한 내용이다.

어딘가 조금씩 다 까다롭고 이상한 인물들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이 사랑스럽고 재미나고,

무엇보다

시로 마무리되는 잔잔한 여운도 강력한 보너스다.


P.S. 김재범 배우를 보기 위해 공연 앞자리를 구하는 건

부지런한 팬이 아니면 불가능에 가깝다.

티켓 예매일에 창이 열리자마자

1분이 채 안 되어

시야 좋은 좌석은 모두 팔리기 때문이다.

무대 눈 앞에서 보기 힘든 연기를,

드라마로는 언제든 가능한 시간에 볼 수 있다는 게

라이브에 편향된 이로서는 행운일 뿐.

현재 백암아트홀에서 공연되는

연극 <아트>에 출연 중이시다.

전 세계 코로나19가 하루 빨리 잠잠해졌으면.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빅피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