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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zzy Jul 02. 2021

다작 작가

피카소 열정의 반만이라도

사랑하는 이에게선 빛이 난다.

눈빛도 남다르고 낯색도 특별하다.

그 빛 안에서 환희를 맛보고 번뇌도 오간다.

사랑에 빠진 자의 특별한 색의 향연을

피카소에게서 보았다.

<피카소 into the myth> 탄생 140주년 특별전에서

시선을 잡아끈 건, 피카소가 그린 자신의 아이와,

그의 전성기 때 나타난 파트너였다. 마리테레즈.


피에로 복장을 한, 그의 아들은 신비스러웠고

중년에 그가 만난 연인은 매혹적이었다.


피카소 전시 티켓에도 마리가 프린트돼있다.

요사이 의상실이나 매장에서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을 법한 패턴의 옷을 걸친 채.

손톱도 입술도 모자 리본조차도 가히 사랑꾼 면모다.

피카소의 눈에 비친 모습일 테니 더더욱

작가 시선에서 유혹적으로 그려진 듯하다.

대기자 수만 400명을 넘는 경이로운 전시, 피카소전

소위 `기 빨리는' 전시였다.

전시장 안팎에 줄이 빽빽하게 늘어서있고

내부에도 관람객이 그득 차서 물밀듯 밀려다녀서인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는

피카소의 일대기를 연대순으로 작품별로

관람하다보니,

한 사람의 넘치는 열정이 과하게 흘러넘치다 못해

압도하고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붓 터치도 너무 과감하고

도예를 할 때도 손을 팍!팍! 힘줘가며

돌린 것 같고

나이 대마다 다른 이를 사랑할 때도

거의 자기 시선을 온전히 듬뿍 다 줘버릴

정도로 사랑에 빠진 이 같았다.

실물 사진은 또 얼마나 여유롭고 단단해 보이던지.

피카소 혹시 운동 마니아 아냐, 하는 궁금증까지

들 정도였다.

나이가 들다 보면 점점 연애 욕구도

사라질 법한데 피카소 옹께서는 절대

그러지 않으셨다.

사랑! 사랑! 사랑! 거의 호탕하게 외치며

사랑만이 살 길! 설교하듯

여러 여인들을 그리고 빚으셨다.

회화로 도예로. 작품이 끝이 없다.

의도한 것은 아닐 터인데도,

피카소 전시의 다섯 번째 세션이

제일 압도적이었다.

그 방의 부제는 '피카소와 여인'이었다.

그의 나이 40대에 만난 10대 여인뿐 아니라

피카소 하면 떠오르는 입체주의 작품 모델들이

그 방에 있었다.

이번 전시는 회화만이 아니라,

조각이나 도자기, 유화, 판화 등도 망라돼 있는데,

시대 순으로 볼 수 있어서

그가 젊을 때부터 중년, 노년에까지

어떤 방식으로 창작하며 손에서 붓과 연장을 놓지 않고

작품에 빠져 살아왔는지,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촬영은 금지 돼 있는데,

전시장 입구부터

"나에게 미술관을 달라, 나는 그 방을

가득 채울 것이다"

라는 자신감에 가득 찬 진술은,

연이어 나타날 방들의 신호탄으로,

첫인상부터 뇌리에 남는다.

다작에 대한 그의 믿음이 발산된 문장이다.

마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용맹무쌍 이순신이 13척으로 300척을 물리치는

명량의 기세처럼,

(왜 갑자기 이게 떠올랐지?그런 시원스러운 기개로!)

한 사람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으로

5천 여 점 이상을 남기며

피카소는 불가해할 정도의 작업 일지를,

그림에서 느껴지는 열정이라면 그럴 만 했겠다 싶은

이해까지 합쳐친 채로 이번 한국에 도착한

110여점을 관람하게 된다.

특히 젊을 때 첫 결혼 시기 즈음,

사실주의 작품도 그려내는데,

이건 뭐, 그의 적수 혹은 그의 새로운 화풍을

경계했을 법한 평범한 업계인들에게

야, 나두 이런 것도 잘 그려,

실험만 잘 하는 게 아니야, 옛 화풍도 원래 잘해~

안 하는 것뿐이지,

그러면서 다시 자기 색채대로 돌아가는

느낌이라 뭔가 엄청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 파트는 두 번째 섹션

<질서로의 회복, 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에서

느낄 수 있다.

여섯번 째 세션에서는

한국에 잘 알려진, <한국에서의 학살>이

전시돼 있다.

여성과 소년의 냉담하고도 일그러진 표정들이

슬퍼 보인다. 피카소 노년에 그린 작으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게르니카와 시체안치소와 더불어

반전 3대 걸작으로 통한다.

피카소는 우리나라 시기랑 비교하면

흥선대원군 시절부터 박정희 시대까지,

강화도 개화기부터 군사정권

시기까지 살았던 이다. 엄청나게 먼 듯 하면서도 가까운

시대를 관통한 사람이었다.

"그림은 단지 집안 장식을 위한 것은 아니다"

라는 어록을 남기며 생애 노년에 인류애로

작품을 남기며 죽지 않은 날선 감각을 드러낸다.

동시대에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싶어도

일제시대에 군부정권에 이래저래

핍박 받았을 한국 작가들 생각이 왠지 겹쳐서

피카소 전시 다음에는

한국 근현대 작가를 총망라했다는

시대전을 봐야지 하는 생각이,

피카소 전시장을 나오며 들었다.

피카소의 폭발하는 열정에 감탄했으나 동시에 한국

작가들은 같은 시기에 좀 안됐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는데,

사실 작가가 무슨 시대나 세계 탓을 해,

그냥 그 순간에 현실을 뚫고 세계를 관통하는 우주를 보면

작가이지, 란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한국 120년을 총망라했다는 근현대 전시를 다음에 이어 볼 생각이다. 피카소 전을 보다가 떠오른 국내 작가전

친구와 400명 대의 대기자를 기다리며

한예종 서초캠과 예술의 전당,

현대무용단 건물 사이를 오가며

순번을 기다렸고

다행히 50명씩 빠르게 줄어

아주 길게는 기다리지 않고

한 두시간인가 뒤에 들어갔다.


대기자들 관람객들도

우리나라 피카소 팬이 이렇게 많아,

라든가

코로나 시국 맞아, 라든가

(정작 저마다 다 곳에 모인 사람이지만)

그 놀라운 인산인해 광경에 를 내두르며

같은 얘기들을 하는 게

대기 복도를 오가며 들렸다.

정말 놀라웠다. 그렇게 긴 줄을 기다려 보기는

로마 바티칸 궁전 이후 처음이었다.

프랑스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을

가도 그 정도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가족 단위, 남녀노소, 수녀님, 학생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피카소 전시장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남부터미널 5번 출구에서 예술의 전당 앞에 도착하는,

마을버스도 거의 피카소 관객을 채우고 태우고 비우느라

왕복하는 느낌도 받았다.


피카소가 "전시장을 달라,

나는 그 안을 가득 채울 것이다",

호기롭게 말할 때 그 역시

그 안을 채울 이들이 관람객이라는 것도

알았을까? 무덤에서 웃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랑꾼 피카소가 떠올랐다.


가끔 열정이 달리고 삶에 시큰둥해질 때

한 두 점씩 피카소 그림을 보며

그 놀라운 에너지를 나도 좀 나눠주세요,

뚫어져라 감상해야겠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피카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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