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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Jul 07. 2021

해변 무드 송

우리 여기에서 그냥 확 살아버릴까

'언덕에 누워 바다를 보면

빛나는 잔물결 헬 수 없지만

눈만 감으면 떠오는 얼굴

뵈올 적마다 꼭 한 분이구려'


김영랑의 <언덕에 누워>라는 짧은 시 전문.

지하철에서 시요일 어플로 무심코 아무 시나 눌러

읽곤 하, 오늘 시선을 잡아끈 건 시였다.


물결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가운데

그래도 사람은 그 한 분이 떠오른다니!

그 마음이 여름 저녁 애잔하게 다가왔다.

"꼭 한 분이구려."

당신에게 그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묻고 있는 듯.

바다와 사랑하는 이를 부르는 시였다.

김영랑 생가가 있는 전라남도 강진도 살짝 가보고 싶어졌다.



창비의 시요일 어플. 시를 휴대폰으로도 읽고 싶은 이라면 편리하다. 매일 하루 시가 배달되고 유료로 이용하면 창비 시선과 옛날 근대 시들과 고시조들도 읽을 수 있다. 1년 3만원.


시를 읽 문득 며칠 전 <내가 바라던 바다>에서

윤종신이 부른 <해변 무드송>이 떠올

유튜브에 검색해 보니

방송사 채널에서 버전, 방송 버전, 재편집 버전

세 가지로  서비스되고 있었다.

처음 방송에서 이 곡을 조우했을 때 느낌을

남기려 최대한 시청 당시 버전으로 먼저 듣고 킵해두었다.


https://youtu.be/5KtiPO1uNYg

바라던 바다 해변 무드 송 방송분

https://youtu.be/ZJRRTNwzrYI

합주 버전

요사이 JTBC 새 예능에

바다를 배경으로 바를 만들고

그 안에서 노래도 하도 음식도 하고,

바닷속 쓰레기를 줍는다든가 바다사랑 캠페인도 함께 보여주는

멀티 해양 프로그램이 등장했는데,

포항 바닷가 야외에서

바 주인인 윤종신이 <해변 무드송>을 라이브로

불러 것. 무려 20년 전 2001년 곡이다.

석양 배경에 이동욱이 서 있으니

그 자체로 뮤직비디오 한 장면 같았다.

오래 전터 여름이면

좋아하던 노래를 만나 반가웠다.

해변 무드송은 사랑하는 이에게

바닷가에서 들려주는 내용인데 

"우리 여기에서 그냥 확 살아버릴까'라는

사랑의 도피 행각스러운 이 구절을 편애한다.

다른 건 아무것도 없고 오직 둘만 보는

그 상황이 로맨틱한 가사와 멜로디에

그대로 담겨 있다.

이천 년 대 초반에 발표된, 해변무드송이 들어있는

앨범은 곡 리스트 전체가 여름을 부른다.

그 중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를 끌었던 곡은

팥빙수이고,

마치 성시경 팬들이 콘서트에서

최고의 댄스 뮤직은 모다! 미소천사 외칠 때

윤종신 팬들도 콘서트에서

최고의 댄스? 뮤직으로 스탠딩 해 열광하던 곡이

팥빙수와 내 사랑 못난이였을 정도로 (?)

흥겨운 팥빙수가 그해 여름을 강타하고

뒤이어 십 년 후에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베이커리 빵집 광고에서도 주목받은

노래로 등극한 바 있다.

고속도로 로맨스도 피서길에 인기를 끈,

여름 라디오 선곡에서 빠지지 않는 곡이다.


개인적으로는

<보고 싶어서(rainy version)>를 가장 좋아해,

그 곡은 왠지 나만 소유하고 싶은,

나만 알고 싶은 그런 노래들 중 하나다.

여름 장마철이 끝나고

가을이 되기 전

지독한 사랑을 끝내려는, 그래도 끝나지 않을 그리움을

부르는 듯 빗소리가 계속 들리는 곡이다.


<수목원에서>도 명곡인데,

이 곡 안의 주인공이 정말이지

사랑스럽게 느껴져 애정하는 노래다.

뭐랄까, 평범한 소년 청년에서 싱어송라이터가

되어버리는 과정 안에 있는 남자가

그 곡 안에 사는 느낌이다.

실연을 당하고 수목원에 갔는데

아줌마들처럼 수다 떠는 새들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대와 거닐던 숲 속 길을 으면서

애써 태연하게

"혼자 걷는 이 기분 아주 그만인 걸"

노래하는 마음이

뮤지컬 마지막 장면처럼 다가온다.

사랑은 끝났지만 어쩌지 못해 방황하는 이가

그 사랑을 혼자 회상하며 숲에 들어서고,

를 둘러멘 채

그 안에서 노래를 쓰고 있는 모습,

모든 것이 종료된 뒤 창작을 하고 있는,

수목원 속 싱어송라이터의 뒷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가사 채집을 위해

수목원에서 들리는 소리와 공기 흐름에 귀를 열어둔 채

또 새로운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나 500일의 썸머 조셉 고든 래빗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런 소년기 잃지 않은 마음 여린 남자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어디서 들어도 짠하고 귀엽고 공감가고,

뭔가를 만들며 사는 예전 회사 친구들과

대학시절 수다 떨던 국문과 남사친들과

시기시기마다 만나는 어느 창작자들의

과거 모습을 보는 것 같고 그런 특별한 곡이다.

들을 때마다 다르고

또 긍정적으로 다가와 에너제틱한 곡으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곡이 수목원에서이다.

https://youtu.be/HgfsoSZLWVg

수목원에서. 원곡과 다른 라이브 버전들도 좋지만 특히 지난해 코로나 시기 뜬금라이브 숲 속 버전이 또 심히 위로가 되어 아끼는 클립.


너무 오래되어 기억은 가물가물이지만

왠지 이 앨범의 콘서트를 대학로에서

본 것만 같다. 2001년 그해는 아니고

좀 지나서인 것 같은데,

그 앨범 콘서트를 왠지 가수가 해주었던 것만

같은 기억이 혹은 착각이 든다.

위치는 대학로 아르코 극장 길로 올라가

씨제이 건물 같고

지금 창작 뮤지컬 많이 하는 공연장.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를 지나

좀 시간을 띄우고 이 앨범 곡들을 계절의 휴식처럼

들려주었던 것만 같다. 다른 콘서트인가.

전곡을 라이브로 들은 것만 같은 기분?

이 앨범 노래를 너무 들어서

기억의 왜곡인지도 모르겠다.

힐링이란 단어가 사회적으로 유행하기도 전에,

계절을 보내는 찌꺼기들을 치유하는 노래들로

가득찼던 앨범이다.


오랜만에,

내가 바라던 바다, 해변무드송을 들은 뒤

어김없이 성큼 여름이 온 것을 더 더 느꼈고

10년 전, 아니 20년 전(이라니! 헉) 여름 앨범 전곡을 다시 레이리스트에 담았다.

여전히 보고 싶어서 레이니 버전이 제일 좋지만

나머지 곡들도 다 끌다.

만일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이 그려진다면,

영랑 시인의 간절한 바다 언덕배기 마음처럼

그 한 분 그리운 날

다시

이 앨범 내 인생 BGM으로 써야겠다.

우리 여기에서 그냥 확 살아버릴까,

기분에 취해 말해버리고도 싶은

혹은 싶었던 마음,

여름 바다 노래에 흘려 보내며.

https://youtu.be/eriYyJl8sXA

해변 무드 송 배경 전체 출연진 편집 모드



2001년 명반, 해변무드송이 들어있는 앨범 전곡 리스트



역시 여름마다 나처럼 찾아듣는 이들이 있다. 여름 한가운데를 지나 초가을까지 계절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멜론의 댓글들 중 일부. 리스너들의 절절함들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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