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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Jul 08. 2021

가시나무

여러 겹의 마음, 멀리서 보아야 할 마음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나희덕,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그늘이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어두운 사람을 만나

상대가 점차 밝아지는 것에 은연중 끌리는 편이고,

그게 나로 인함이길 바라던 습관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고독한 이들을 보면

좀 더 능동적으로 가까이 가게 되곤 했다.

그런데 내 에너지가 셀 때는

거의 상처를 안 받는데

내 에너지가 결핍돼 있을 땐

어둔 사람 곁에서 쉽게 상처 받는다.

사랑에도 총량이 있어,

받은 만큼 넘치는 시기에 무한대로 베푸는 것 같고

부족하고 모두 써버렸다 느낄 땐

고립되는 느낌이다.

어느 순간엔가는 그늘에 끌릴 적이면

나도 그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 가 버린 걸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어떻게 한다 해서

어둔 이의 어떤 감정들을 거를 수 없다는 사실도

결국 인정하게 된다.

정작 나 자신이 어둡다는 느낌이

들 적이면 아예 누구에게도 기대지

다.

가까운 친구조차도 그 순간엔

멀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야 곁으로 먼저 다시 다가간다.

아주 오래전에 읽던 시를 어느 책에서

우연히 다시 발견하고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라는 구절이 뭉클했다.  시 안의 사람은 읽긴 읽었나 보다.

나는 여전히 읽지 못하는데...


어릴 적 이 시를 좋아했을 땐,

아마도 나와 좀 달라서 이 시를

여러 번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다시 보니,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는 건

그의 심심한 모습, 꽃빛이 다

꽃잎이 다 떨어진 저녁의 모습이라는 걸,

이 시가 알려주고 있었다.

그늘에 끌리고 그늘 속으로 들어가려던

내가 ,같은 그늘 속에서 멈춘 것도

어쩌면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사소한 깨달음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다시 누군가의  에너지에

기대어 어둠을 벗어나고픈

그런 여러 겹의 꽃들도,. 아직 미성숙한 인간이라

바라게 된다.


이 시를 보고 떠오른 노래는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갠적으로 라이브로 처음 들은 건

예전 펜싱경기장 공연장에서 들은 조성모의 가시나무다.

두 버전이 유명한 옛날 노래.

내 안으로, 타인 안으로 너무 많은 나가

들어있단 인식이 들 때 선곡할 만한 곡이다. 이해할 수 없음에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 관계라는 맘을 건넨 노래.

https://youtu.be/POu_1kHWNC8



https://youtu.be/cZ0WdcX0v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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