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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zzy Aug 01. 2021

그대 떠난 뒤

샐러드를 앞에 두고

Sara Zine

이란 잡지를 만들고 싶을 때가 있었다.

사라라는 미래적 가상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이 사라진 옛 점포들의 길을

찾아나서는 이야기. 리즈로 발간.

사라진 추억의 가게들을 기억에서 끄집어 내어

그때의 사적 정서를 남겨놓고 싶은 마음 탓이었다.


오늘 홀로, 그리고 친구와 잠시 서촌을 걸으며

사라진 안에 넣고 싶던 점포가 떠올랐다.

먼저는 '가가린'.

서촌에 있던 독립책방이었다.

눈이 내려 바닥이 빙판길이 되었던

겨울에 처음 그곳을 들렀던 적이 있다.

쌓인 눈을 퍽퍽 밟으며 부츠를 끌고 걸었다.

경복궁 역 사거리에서

자하문로 쪽으로 걸어올라가면

코닥 필름 가게가 나왔고,

오른편 큰 길로 꺾어 들어가면

가가린이 나타났다.

노란 불빛을 풍기며

조용한 공간에 책 카트가 불쑥 보이는

이질적 느낌을 드러내던 책방.

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설렘의 공간였다.

가가린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허진호 감독의 90년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심은하가 한석규의 사진 가게를 쳐다보는 듯한

분위기로,

호기심과 두근거림을 불러일으키던

마음이 떠올랐다.

노란색 회원 페이퍼 카드에 번호를 부여받고

회원으로 가입했다.

책방의 개인 넘버, 낭만적이었다.

친절한 직원들이 세심히 손님을 응대해 주었고,

늘 음악 소리가 들렸고

헌 책과 독립잡지들, 여러 팬시 구쯔들을

조용히 살펴볼 수 있었다.

어느날엔가는 유희열 라디오 멘트만 흘렀고,

실험음악 난해한 선율이 공간을 채우기도 했다.

서점을 나와서는 항상 경복궁 담길을 따라

광화문까지 혹은 인사동, 안국역까지

종로를 걷고 또 걸었다.

아마 처음이라서 더 정이 들었을 것이다.

이후 예쁜 독립 서점들이 많이 생겼고,

또 눈길이 가는 곳들이 나타났지만

가가린 첫 방문의 겨울날 설렘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안에 친구와 만든 무크지를 팔기도 했고

점포가 사라질 땐 되돌려 받기도 했다.

낯선 이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해준 그 서촌의 책방이

우주와의 접점을 지녔던 유리 가가린 이름과

그 마음처럼 내게도 낯선 것들에 열린 마음을

선물해 주었다. 물리적인 공간은 사라졌을지언정

종이책과 잡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서촌 어딘가에 고이 품어놓고

지금도 살고 있는 것 같다.


여름 국지성 폭우가 내린 저녁 무렵,

비에 젖어 걷는데 가가린이 떠올랐다.

운동화도 양말도 모두 흠뻑 젖고

우산을 썼지만 옷도 에코백도 다 젖었는데,

전혀 신경쓰이지 않고,

그저 그 기억을 불러주어 고마웠다.

길이 깨어준, 사라진 게. 가가린


서촌을 걸어 광화문으로 가선

친구가 자주 가는 샐러드 카페에 갔다.

샐러드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그 자리가 예전에 자주 가던 햄버거집과 술집

언저리라는 게 생각이 났다.


그 술집에서 비 오는 날

낯선 이와 두번 째 만남에서 서로

벽을 허물고 자연스레 친해진 적이 있었다.

누군가와 어느 순간 불쑥 친하게 버린

날들의 기억은 특정 향과 거리, 음악 등이

매개가 되어 세세히 장면이 떠오른다.

점포 이름에 레드가 들어가 있어서

그 붉은 색이 상대와 꽤 어울리는

빛깔이란 생각에 그 시절 가게 이름을

보면서 웃던 기억이 났다.

꿈이 참 많던 이.

그 안에서 서로 대화가 통해,  밤새

쉴 새 없이 얘기를 나눴다.

먼저 얘기하라며 배려를 했다가,

다시 끝없이 ... 각자 할 말이 넘쳐

시간이 가는 것을 잡아 두고 싶었다.

순간이 영원히 팽창되는 느낌.

소울메이트대화는 꿈, 인생, 열정 이런

관념적인 단어들로 번져

평소 다른 이와 대화가 되지 않았으나,

이 사람과는 대화가 된다고

여긴 단어들을 두루 펼쳐 두곤

끝없이 사적 얘기를 나었다.

금 밤에서 토로 넘어가는 새벽 

동이 틀 때까지 얘기를 다보니

우리는 시간이 적돼

연인이 되어 있었고 시간이 흘러 헤어졌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

그가 그날밤 얘기하던 꿈을 이룬 것을

어느 기사 단신에선 발견하곤

신비한 소름 경험.

어느 분야에서 외국의 상을 받고 싶어했는데

해외에서 수상한 소식다.

상으로 인정 받지 않아도 어느 시기

멋있는 이였지만 그런 뉴스의 보상도

의 보너스 같아서,

남이 되었으나 남의 자리에서도

그밤의 대화떠올리며 축하 주었다.

우리가 만난다면 서로 어떻게 될까,

를 얘기하 기대에 가득 찬

그 밤과 새벽은, 사람은 사라기억은 희미해져가도,

이렇게 불쑥 떠오른 날이면

어딘가 편에 저장해놓고 싶은 그림 된다.

사람들은 떠나도 늘 그 사람들의

설레던 첫 기억은 의식에 남아 별안간 나타난다.


여전히 대화에 대한 갈구가 심한 편이고,

사랑이나 우정이란 에이와 비가 만나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혹은 초월하는 우주적 발화와 성장이라는

생각을 고수하는 까닭에,

비오는 날은 가끔, 그런 소울메이트적 시간 그립다.


살면서 얼마나 형식적이며 피곤하고,

게다가 자본주의적인 미소에 으레껏 거쳐야 하는

뻔한 말들을 더 많이 주고 받게 될까.

그 사이에,

딱 어떤 사람과만 나눌 수 있는 대화,

그 사람이라서 통하는 대화를

만난다면, 그만큼 소중하고 간절한 일도

없는 것 같다.

독백같은 대화가 아닌,

타인의 말이 내 안으로 들어와

인지 나인헷갈리고, 어느 더 좋은 누군가의

말이 되어버리는 듯한 기분,

거리를 좁혀도 늘려도 채우고 싶은 말

넘치는 순간...

결국엔 침묵조차도 무언의

진심어린 말들을 풍성히 지니게 된다.


그런 게 샐러드 식사 한 끼에서

그 식당의 위치를, 문득 창 밖을 보다

떠올랐고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윤종신 프로듀싱, 빛과 소금 원곡, 조정치 편곡,

장범준 리메이크 노래) '그대 떠난 뒤'를 들었다

원곡도 리메이크곡도 서로 달라

또 좋다.


서촌 길과 광화문 샐러드 한 끼가 부추긴 노래.

그대 떠난 뒤.


늘 노래를 들을 때

궁금해지는 건

왜 하얀 얼굴로 그대를 만날까, 이다.

그 백짓장 같은 얼굴은 행여 가장 순수

꾸밈없고 편안한 ,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기에 그랬던 건 아닐까.

그저 하얀 낯빛의 물리적으로

아름다운 이였을 수도 있고...


작사가님의 하얀 얼굴로 그대를 만나리,

분위기를, 노래를 들을 때마다 떠올려보곤 한다.




https://youtu.be/Ux_eV7o7myI

2019년 월간 윤종신 4월호. '별책부록' 서른 특집 중 장범준 편. 빛과 소금의 노래. 그대 떠난 뒤 리메이크.

https://youtu.be/cdK2Nxmfc5I

빛과 소금의 그대 떠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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