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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zzy Nov 01. 2021

혼잣말

다시 처음 그자리로

인간 실격 류준열(강재 역)의 혼잣말 

귀 기울여 반복해 듣게 되는 글귀가 있다.

애정하는 장면에 깔리는 독백이다.

인물이 한 인물을 회상하며

그간의 대화나 결정적 만남의 장면들이

교차 편집돼 흐른다.

이 독백을 마치면 그가 긴 단발을 자르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잠자코 현실과 기대 사이에서

시간정리하는 헤어커트 이발신.


"아주 오랜만에 아무 이유 없이

돈이 아닌 어떤 것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돈도 아니고 이기고 지는 것도 아닌

작고 이상한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

처음 만나는 세상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무슨 기대를 했던 걸까요.

어디서부터 잘못 걸어온 걸까

마음을 따라 반대편 방향으로 열심히 걸어가 보았지만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단 한걸음도 가까워지지 못하고

한걸음도 멀어지지 못한 채

다시 처음 그 자리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이 대사는 딱히 주인공의 사랑이라고도

말하기에 모자라면서도 벅고 아린,

한편으론 음울한,

다른 자신에 대한 발견. 위안, 기대, 실망 등이

모조리 드러난 말들이다.


돈도 아니고 이기고 지는 것도 아닌 마음의 흐름.

그 말이 처음엔 설레었고 다음엔 아

지금까지 어느 순간엔가 간직하다 사라진

마음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고 이상한 마음,

그건 타인과의 접촉해서 발화되기도 하고

사람 아닌 어떤 것들, 좋아하는 노래라든가 영화,

라이브 공연의 어떤 분위기 속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그 마음을 이어가고 싶는 마음에

욕심을 부려보기도 하고 포기해보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면 또 결국 제자리이다.

조금은 다른 위치의,

그래도 견디는 에너지를 조금은 얻은 제자리라고

그렇게 위안해 보아도

사실 어쩌면 그냥 그대로 없던 자리인지도 모른다.

본래 무의 마음에서 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자리,

그런 무정형과 빈 공간의 심장이,

류준열 독백과 하동균 혼잣말

노래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계속 혈관의 펌프질을 하려면

'사라지고 없는 꿈 같은 이야기'를

들러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못는 팽팽한 긴장의 공기에서.

그게 또 삶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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