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

나를 알아줄 단 하나의 사람

by 레아

가끔씩 타인의 의지로 기분을 풀고 싶을 때가 있다.

온전히 나의 의지가 아니라, 그저 쓸려가는 덕에

어느새인가 모든 것이 편안해진 것만 같은 착각.

그건 어쩌면 그저 헛된 기대에서 비롯된 집착일지도 몰라.

그렇더라도

그 마음을 잊기란 쉽지 않잖아,

혼잣말로 위로할지라도 말이다.


뮤지컬 <랭보>는 폴과 랭보의 한때,

서로 긴밀히 교류하였으나

갈라서고 말았던 찬란한 비극의 순간을 그린다.

랭보는 자신의 시를 알아줄 자를 고대했고

폴은 시적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고뇌한다.

그런 그들이 만나 각자의 빈 구석을 채운다.

랭보는 기성의 세계를 비웃을 만한 패기와 재능이 있었고

폴은 그의 에너지에 기대어 충동적인 생에 매료된다.

매너리즘적 탈출구를 친구를 통해 얻고

그 친구 또한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한다.


두 사람의 찬란한 한 때를

지난 겨울

정동화의 랭보, 김재범의 폴로 관람했다.

둘은 어떤 극적 만남의 순간과 기다림을

너무 섬세히 드러내어

계절이 흘러도,

극중 두 주인공이 첫 조우하는 순간과

서로의 빈자리를 반추하는 장면을

계속 떠올리게 만든다.

랭보 포스터

폴이 낯선 신인의 편지, 랭보 습작 시를 받아들고

랭보를 초대하는 서신을

발송하고 랭보가 그에 대한 화답으로

파리로 달려가는 장면.

무대 양 끝에 있던 폴과 랭보가

서로 시공간을 겹쳐

"시간이여 어서 나에게로 오라"

"내 마음 구원해줄 동반자여"

라는 가사를 노래한다.

뮤지컬을 보고 나면 입속에 맴도는 특정 구절이 생긴다.

맨 처음 랭보를 보았을 때

한동안 시간이여 어서 나에게로 오라, 라는

멜로디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만큼 그 둘이 만나던 시간이 내 안 어딘가 박혀

내가 사랑했던 이들을 생각나게 했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한 사람 때문에 행복할 수도 있고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한 사람 때문에 불행할 수도 있다.

분명 같은 사람이건만

그 사람의 시작과 끝은 다른데

어쩌면 다행인 건

시간이 무르익으면 그 두 감정이 희석되어

내려 앉는 잔여물이나 떠 버리고 마는 부유물이

생기고 그게 새로운 생의 집약된 에너지가

된다는 점이다.

랭보와 폴은 서로를 알아본 데 심취해

감정과 재능을 단 시간에 쏟아내지만

결국 그 시간의 취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갈라선다.

폴은 랭보의 호기에 상처받고 그가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고뇌하고

랭보는 폴의 비겁함이 시에 대한 예의가 아님에

화가 나고 그의 구속적 일상에 진저리친다.

그리고 서로가 사라진 자리, 일상에서

또 시를 매개로 각자를 그리워한다.

미워하지 못한 채 원망하지도 않고

복잡한 감정으로 떠올리기만 한다.


폴은 랭보가 자신을 떠나 아프리카에서

남긴 작업의 흔적을 보며

그가 진실로 노동을 대했던 태도에 감탄한다.

랭보는 폴이 출간한 시집을 읽으며

친구가 삭인 울분과 열등감을

먼 자리에서 위로 하고 자신도 위로 받는다.


영화 이클립스로 이미 유명한 작품이지만

뮤지컬에서는 수려한 시의 문장과

고뇌의 단어들이 배우들의 노래로 흐르면서

그 안에서 관계에 대한 질문을 찾게 만든다.


진실로 힘이 되었던 순간,

폭발적인 감정을 재처럼 남긴 사이.

그게 과연 그때만 아름다웠던 것일까.


랭보 시를 읽으면 이제 자연스례

정동화와 김재범 두 배우가 부르던

멜로디가 겹쳐 떠오를 것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정동화 랭보가

세상에 대한 치기를 어찌할 바 몰라 분출구를 찾아

헤매는 외골수 천재 소년의 모습이 각인되고

다시 보았을 때는 김재범 폴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무력하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간절히 애쓰던 외로운 노인 같은 시인이 남았다.


그 고독한 소년도 노인도

어디 멀리 있는 것 같지 않고

내 안에 그리고 과거 어딘가 살아 있는 듯

기억된다.

추운 계절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보고플

뮤지컬. 랭보


랭보와 폴이 처음 만나는 장면. 운명적 교류가 잠재됐던 시간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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