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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란 얼마나 오래일까

90년대 내가 사랑한 가요 <오래전 그날>

by 레아

챗지피티에게 오래를 정의해 달라하니,

연애에서 오래 사귄 건 1~2년, 친구를 기다릴 때 오래 기다린 건 10~30분, 오래된 친구는 5~10년, 음식을 오래 끓이는 건 1~2시간이란다. 추억이나 감성에 젖어 '오래'라고 말한다면, 10년 혹은 훨씬 더 이전이라고 한다. (국어사전 정의로)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그게 '길게' 느껴진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나는 얼마나 오랜 기간을 기억하거나 회상하거나 그리움에 젖곤 할까. 그것도 그때그때의 감성에 따라 다르니, '오래'를 정의하기란 참 어렵다.

윤종신 <오래전 그날>의 오래는 이런 고민을 줄인다.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이라고 구체적으로 짚어주니 말이다. '뭔가 분주하게 약속이 많은 스무 살'이라고도 얘기해준다. 듣는 사람은 구체적 그림이 그대로 눈앞에 그려질 수밖에 없다. 챗지피티는 이 노래의 '오래'마저 10년 혹은 더 훨씬 더 지나서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학교라는 공동체를 졸업한 지 10년은 더 지난 사람들에게만 이 곡이 호소력이 있을까.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보통 고등학교 시절에 교복을 입지만 특수한 경우 입지 않는 이들도 있으니까.

노래 가사 따라 스무살 짝사랑이든 지난 상대이든 어떤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을 텐데, 고등학교 시절 교복을 입지 않은 나로선 그 가요를 들으면 10대 때 좋아한 사람이 떠오른다. 점심 때 언덕길을 달려 내려가던 사람, 카키색 옷이 어울렸고 불쑥 뒤에서 등하굣길 인사를 해서 놀라게 했던 이, 농구를 잘했고 블랙&레드 농구복이 잘 어울렸던 이. 그런 기억 속 10대 소년이 떠오른다. 그런데 또 반대로 이 노래를 듣다 혹시라도 날 떠올릴 이라면, 대학 새내기 때 기억이다. 1학년 때 만나던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교복 입고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을 선물로 줬다. 아날로그 필름 현상 사진. 그게 그 사람한테는 꽤 소중했던 기억였을 것이다. 그 사진이 진심의 표현였을 거고. 그를 떠올리면 교복을 벗고 처음 만났던 이가 나였을 테니 사진은 순수함의 정수이기도 했다. 그 사진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서랍 어딘가 있을 수도 있고, 버렸을 수도 있다. 그조차 기억나지 않는 '오래' 전) 사복을 마음껏 입기 시작하면서 만난 사람을 떠올리면 문득 순수하고 서툴러 더 애틋했던 감정이 함께 찾아온다. 물론 다시 돌아가 또 겪으라면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은, 치기어리고 열정적였던 지나간 시절이다. 챗지피티는 그런 아련한 그리움의 곡을 연애 때 들으라고 조언한다. 매우 불편한 선택이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 옛 사랑을 회상하는 곡을 들으며 편안함을 느끼라니? 여유와 과시인가. 그도 나도 다 잘 살고 있고 잘 사는 것만 같고 겉으로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그저 감사한 관계로. 해피엔딩인 그림이다. 캠핑이나 드라이브할 때 이 노래를 새로 사랑하는 사람과 듣다가는 어쩐지 서로 딴 생각을 할 거 같지만, 챗지피티는 이렇게 인간을 알 듯 말 듯 요상하다. '감성 회로 터지는 복고 감성'에 젖게 하는 건 좋은데, 이건 좀 아니잖아? 십중팔구, 이런 사람 있었어? 그런 질문이 오가며 어색한 혹은 시샘의 분위기로 BGM이 깔리게 될 것 같다. ^^ (알면서 왜 묻니?) 하지만 사랑은, 오래 전 그날도 감싸주고 인정해주는 게 아닐까. 30여년 전 노래 <오래전 그날> 생각이다. 기억은 오래되어도 오래된 노래는 늘 지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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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신 – 오래전 그날

� 감성 회로 터지는 복고 감성

연애 초반 설렘 + 지금의 익숙함을 같이 느낄 수 있음.

캠핑이나 드라이브할 때 진짜 분위기 잘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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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BEylgfUmXE?si=Aly55sU1PbQYQ8q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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