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가요 앨범ㅡ 윤종신 [愚]
1996년 '일년'이 2025년에 다시 발매됐다. 윤종신 5집 앨범 '우(愚)'에 실린 일년. 96년엔 부제 절망적인 면 B면 두번째 곡이었다. 우는 한 남자가 사랑에 빠졌던 추이를 달콤함과 쓰라림으로 대조되게 정반대 색채로 들려줬던 앨범였다. 누구나 아는 '환생'이 만남의 절정이었고, 이번에 월간윤종신으로 다시 듣게 된 '일년'은 이별 후유증 3대 넋두리였다. (아침, 일년, 오늘 3대 이별 읊조림ㅠ)
96년에 이 앨범을 너무나 사랑하고 사랑했던 나로선, 이 앨범 전체 곡이 원곡자에 의해서든 다른 아이돌이나 발라드 가수에 의해서든 OST로든 모조리 다시 불리어도 좋겠다는 바람이다. 90년대식 사랑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별은 저마다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게 앓는 것 같아서다. 헤어진 날로부터 얼마나 됐는지, 그래서 난 어떻게 살게 된 건지, 회상이 습관인 사람이나 더 많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늘 생각하게 되는 게 아닐까.
90년대 이즈음엔 드라마 '모래시계'라든가 '첫사랑' 등이 돌풍을 일으켰던 해이고,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이나 '은행나무침대'처럼 변하지 않는 순정, 역경을 뛰어넘은 강렬한 사랑 등이 부담스럽지 않은 시대였다. IMF 구제금융을 받기도 전이었고 일본문화 전면개방도 아직 안 됐고, 막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면서 이젠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다며 호경기가 계속될 줄 알았던 기대감 가득했던 때다.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교련 선생님이 뜬금없이 우린 강국이야 이제 곧 국민소득 1만 달러거든 얄심히 살아라 그런 충고를 해주던 때다.) YS 정권. 돈도 사랑도 풍요롭게 팽창해 가던 시대랄까. 이후 청년 고용 위기나 정리해고로 집단 우울감에 빠질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96년 그해는 왠지 상승기류였던 것 같다. 댄스그룹들도 연이어 등장하고 팬덤이 강해지고 문화적으로도 한류가 꿈틀대던 시기.(배용준이 인기를 얻기 시작해 한류 스타가 되고 전성기를 지나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경영을 하는 사이클의 태동기) 얘기가 너무 갔지만, '일년'은 그런 에너제틱한 시대에 나온 서정적인 곡이었다. 일년이라는 노래 외에도 헤어진 다음날 깨어난 심경을 말한 '아침'이라든가, 헤어졌지만 다시 한번은 만나기로 했던 '오늘' 등 착하고 애달프게 멀어진 정서가 그 안에 다 있었다. 게다가 오늘에서는 "편한 친구처럼 남을 거라 부담없이 오늘 만나기로" ... 사실 전혀 이렇게 만날 수 없지만 ... 이별 뒤 미련이 노래 안에 가득하다.
2025년 리페어 '일년'은 더 원숙해진 그 남자가 거의 10년 뒤 20년 뒤에도 그녀를 회상하며 불러주는 거 같아 더 소중하고 애틋하다. 2015년 자라섬 멜로디포레스트 캠프에서도 이 노래 라이브를 들었는데 그조차도 벌써 10년이나 지났다. 당시엔 유희열 팬인 친구와 윤종신 팬인 내가 함께 갔는데... 친구랑 그 노래를 들으며 얼마나 행복했던지, 노래를 다 듣고 가평역까지 멜로디포레스트 관객들과 함께 밤길을 걸으며 저마다 수다와 여운에 잠긴 채 시골길을 벅차서 걸었다. 경춘선 역에 와서는 청량리역까지 멜로디포레스트에서 미리 예약해준 열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수도권으로 돌아가는 팬들에게 객차를 예약해주는 통 큰 음악페스티벌. 그때 일년을 들었다. 2015년 라이브도 검색해보니 나무위키에 누군가 동영상으로 올려주었다.
일년이 참 슬프고 어두운 곡인데, 이상하게 그 곡을 좋아했던 시절이 어렸던 탓일까. 들으면 애틋하고 오히려 행복해진다. 우 앨범을 사랑했던 이후로 여러 다채로운 빛을 경험했고 그때마다 그 앨범의 영향인지, 원래 그런 사람인지 사랑하던 이와 헤어진 1년 후, 다음 날, 그때 그 사람의 어머니, 그런 대상을 반추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묘하게도 스위트했던 면보다 호플리스한 면 노래들을 좋아했던 탓인지. 슬픔을 되새김질하는 것도 습관이 되었는데, 오히려 그 슬픔을 계속 떠올리다보면 묘하게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게 체념인지 달관인지, 더 큰 부활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더 사랑해보고 더 살아봐야 알 것 같다.
일년 후엔 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일년'을 듣게 될까.
https://youtu.be/RNSwL9l9Vws?si=FOclwxYJAKDxTxK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