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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다가오는 오래된 노래를 연이어 듣는다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가요

by 레아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 손엔

외로운 동전 두 개뿐"



박보검의 칸타빌레에 윤종신이 출연했다. 1990년 데뷔곡부터 히트곡까지 여러 곡을 불러주었다. 몇 번을 본지 모르겠다. 집중해서 보기도 하고, 거실 청소할 때 티브이에 틀어놓기도 하고, 그저 BGM으로 수차례 들었다.

출연 의상이 (위아래 상의 모두) 청청인데, 박보검도 청청이다. 서로 둘이 맞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친한 친구 중 윤종신 라스 시절 뒤늦게 입덕한 팬이 있는데, 그 친구가 윤종신 좋아한 계기는 독특(?)했다. 옷을 잘 입어서라고? 스타일리스트가 '일잘러'라며, 패션센스를 언급, 윤종신이 입고 나온 옷은 다 좋단다. (내 경우엔 윤종신 입덕 계기를 무조건 묻는다. 사회 생활 도중 윤종신 팬인 이를 만나면 동질감과 궁금증에 무조건 묻는다 ^^) 둔감했던 나도 그제야 알아채고 윤종신이 출연하면 옷에 먼저 눈이 가기도 한다. 원년 장수 팬이다보니 뭘 입어도 멋있지?! 뭔들?! 이런 모드였지만, 친구 덕에 이젠 옷도 멋있다.

그러다 박보검 칸타빌레에서 예전 영상을 보여줬는데, 예전에도 옷을 참 잘 입었구나 싶었다. 90년대 윤종신 앨범 재킷을 열심히 모으던 때가 있었다. 그게 아마 지금 K-POP 팬들이 포카 모으는 것과 비슷하지 싶다. 앨범 재킷에 있는 사진들이 하나같이 분위기 있고 특유의 느낌이 있었다. 멜랑콜리하고 고독한 분위기랄까. 안성준 사진작가가 구현한 건데, 그 사진들이 나같은 유랑자들에게는 여행의 꿈을 심어주기도 했다. 훗카이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훗카이도를 꿈꾼다거나 그런 식이다. 지금도 직장 컴퓨터 앞에 윤종신이 삿포로 눈길을 달려가는 뒷모습 사진을 붙여 놓었다. 그 사진이 묘하게 숨통을 트여 준다. 일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그 사진을 보면 명상 효과처럼 차분해진다. 그시절 사진의 의상도 다 완벽하다. ^^

윤종신 구즈 중에서는 아무래도 뿔테가 또 제일이다. 99년 뿔테를 산적이 있다. 안경을 잘 쓰지 않서 오래 착용하진 않았으나. 일부러 기능성보다 미적 취향을 반영해 구입한 테라 기억에 남는다. 갈색 불테였다. 검은 옷에 자주 끼고 다녔다. 가끔 그때의 뿔테를 떠올리면 설레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한 물건에 대한 애착이 겹친다.

그리고 직접 관련한 물품은 아니라도 삐삐가 기억난다. 윤종신 곡으로 매번 교체해 녹음했다. 나는 삐삐의 시작과 끝을 같이 한 세대다. 요사이 어떤 우울한 주말, 좋아하는 책 <바이하트>라는 희곡집을 전체 다 녹음해서 친구에게 보내주었다.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준다는 게 어색하지 않은 세대다. 그 기저엔 삐삐가 있다. 혼자 녹음하고 전달하고, 또 답이 오면 거기에 더해 또 녹음한다. 그렇게 오가던 삐삐 메시지, 가끔 라디오나 카세트오디오의 노래를 틀어 함께 보낸다. 이젠 그게 팟캐스트를 지나 유튜브로 확장했다. 모든 사람이 미디어 주인이 돼버린 시기를 계속 변화해 가며 겪고 있다.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어 녹음하던 그때부터 휴대폰 녹음 렉버튼을 눌러 목소리를 녹음하기까지, 정말 30여 년이 흘렀다. 90년대로부터 2020년대까지 ... 그 사이 세상의 기기와 환경은 변했지만 그 마음들은 여전한 게 아닐까. 박보검의 칸타빌레를 보면서 문득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연결한 정수는 무얼까 떠올려 봤다.

그 질문의 답은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누군가를 그리고 어떤 대상을, 그리워하고 아끼는 마음. 그럴 때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는 그 시기를 기억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었다. 툭 건드리면 어디서라도 그때의 기억이 나온다. 오래된 노래, 지금의 노래, 새로이 다시 녹음된 노래, 그 안에서 나는 풍성한 기억을 가지고 산다. 희미해져서 안타까운 기억도 있고, 더 생생해져서 괴로운 기억도 있고, 수만가지 기억 안에서 나를 재구성해 간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고 헤매는 건 결국 미래의 나를 더 알차게 세우려는 것일 테니, 결국 노래는 나를 과거와 지금, 먼 훗날을 연결하는 고리가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Bxv5NKE35v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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