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그시절 사랑했던 가요
https://youtu.be/LdeLSug_0nA?si=aBJ6rMYceLkIHITf
사회생활에서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저렇다. 누군가 이런 판단을 호기롭게 21세기에도 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출장 중 만난 어떤 이가 여성은 본론부터 일하려 하고 남성은 노는 와중에 일을 만들어 낸다며, 후자가 낫다는 차원에서 혹시 말실수 한 거냐며 허허거렸다. 사람을 세대별로 성별로 출신 학교별로 지역별로 ... 이런저런 이유로 쉽사리 분류하는 사람을 여전히 자주 만난다. 그럴 땐 안이 늘 불편하다. 하지만 굳이 표현하진 않는다. 그런 주제로 상대에게 따지면서 얼굴 붉히기 싫어서다. 예전엔 일일이 반응하던 일들을 어느 시점부터는 그저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말아버린다. 물론 가치판단을 두고 타인의 입장에서 왜일까 떠올려보거나 반박하던 숙고하던 습관을 점차 버린 이유일 수도 있다. 잘 털어버리는 면에서는 좋은 것이겠지만, 사고하는 능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면에선 단점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에서 고압적이거나 예의없는 태도로 일하는 사람을 맞닥뜨릴 때 떠오르는 97년도 노래가 있다. 디제이 디오씨의 ‘디오씨와 춤을’. 가끔 노래 제목을 까먹으면 꼭 <밥 잘 먹어요>로 검색하기도 한다. (이래저래 인생에서 밥 잘 먹는 게 중요 ^^)
노래가 너무 대중적인데 동시에 급진적이다. 시간이 흐르면 옛날 노래가 될 법도 한데 여전히 현재 진행형 같기만 하다. 누가 뭐라든, 인생을 즐기라는 메시지의 힘이 강해서일까. 여름 베스트셀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바지를 입고 학교나 회사를 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기도 하고, (내가 보수적인 조직에 속해서인지) 옷차림에 대한 자유도 여전히 제약이 많아 보인다. 한여름 사무실 반바지를 입은 직원은 수를 꼽는다. (취향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하고 춤추고 싶을 때 춤추는 그런 자유로운 곳조차도 물리적인 무대를 제외하고는 없어보이기도 한다. 회식 술자리 빼고는 춤을 추고 노래를 어울려 부르는 생활 분위기를 찾기 쉽지 않다. 예술계에는 보편적인 일이지만, 거기를 벗어나면 평생 춤 안 추고 평생 노래 안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또 그 물리적 무대조차도 사실 완전한 자유의 공간은 아닐 것이다. 개인의 엄청난 절제와 그 사회만의 보이지 않는 어법이 있을 테니 말이다.
좀 더 자유로워지는 것, 나는 나대로 사는 것, 상관이 필요 없는 삶, 이러한 극한의 자유는 사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아는 자질이나 책임 하에서나 나올까 말까 한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춤을 추고 싶을 때는 춤을 추라는 흥겨운 여름의 댄스곡이 더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실현해 보지 못했기에 동경하는 마음이랄까.
여름이면 어김없이 라디오에서는 이 곡이 흐른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는 모든 남녀는, 학생은, 어른은, 아이는, 어떤 직업은... ‘이래야 한다’의 강압적 당위를 단숨에 날리는 속시원한 서두다.
어떻게 살든지 간에 다 자기 몫의 매력은 있고, 그게 어떻게 발현되든 그건 그 개인의 자유다. 세파에 너무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즐거운 삶을 결심할 땐, 디제이 디오씨의 ‘디오씨와 춤을’이 증인이 되어준다. 악동으로 신나게 데뷔했던 그들의 노래가 지금껏 숨통을 튀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