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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향, 김동률 콘서트 <산책>

90년대, 유년기 음악의 정원으로부터 지금까지

by 레아

박준 시인의 '설령'이라는 시에는 "우리의 목소리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닮아간다"는 시구절이 나온다. 시집을 펴보다가, 이 구절을 보곤 2025년 김동률의 <산책> 콘서트가 떠올랐다. 25년 11월 콘서트를 본 뒤 그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나의 지향이 그 콘서트의 느낌을 향하고 있었다.

콘서트 후유증을 누군가들은 '율망진창'이라고 했다.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온 상황. 나쁜 의미는 아니고 그럴 지경이라고. 동교동의 음악 청취 공간 틸트(tilt)에서 '율망진창'을 언급하며 김동률 콘서트 셋리스트를 틀어준다기에 거기도 연가를 내고 다녀왔다.

산책 콘서트는 월요일 밤 다녀와 화요일에 휴무를 잡았고, 청취회는 토요일 휴무를 앞두고 금요일에 휴가를 썼다. 전략(?)이랄까. 김동률의 노래를 듣고 나면 밀려오는 감정을 스스로 해결할 시간이 필요하고, 그 감정을 사내 오피스 생활로는 감당할 수 없을 거라 예견했고, 그건 맞았다. 사무실에서는 '황금가면' 정도로만 타협할 수 있을 뿐, 김동률의 노래를 사내에서 들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거니와, 또 좋은 노래를 이성의 날을 세우는 공간에서 떠올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번에 콘서트를 다녀와서는 왜 이렇게 공연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까. 그 공연은 내게 어떤 실체가 있었을까? 잡히지도 않는 공기 중 노래에 왜 그렇게 빠져들었을까 떠올려보았다. 라이브를 듣던 시간에서 스스로 멀어지지 않으려는 의지도 강하게 작용했다. 올해 특히 김동률 노래를 너무 많이 들어서, '올해의 곡'으로 멜론이 '산책'을 꼽아주기도 했다. 그저 그 세계에만 머물고 싶었다.


출퇴근길에 내내 김동률 노래를 듣고 어제도 오늘도 들었다. 멜론에서 팬 온도지수 99도까지 찍었다.(멜론에서 얼마나 많이 듣는지를 온도로 알려주는 것) 김동률 곡 많이 들은 사람 순위 상위 1퍼센트란 뜻인가보다.

이 기록은 윤종신 팬지수로 보유하고(?) 있었는데, 콘서트에 다녀온 뒤 김동률 팬지수도 99가 되었다.

기록 순위? 이런 데에 크게 관심 없던 터이지만 올해 내내 들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청취에 대한 기분은 뭐랄까, 뿌듯함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듣고 100도 되겠다 이런 건 아니다. 그저 무언가를 강제로 하지 않는 행위 중에, 내가 진짜 좋아서 자연스레 하는 일이 음악 청취구나 실감했다.

김동률 콘서트에 다녀온 후로는 한동안 음악 관련 과외라도 받고 싶다고 생각하며 월급을 살폈고, 이거저거 뒤져보기도 하고, 성인 대상 피아노 레슨 학원도 찾아보았다. 과거 김동률 유튜브 출연본도 역순으로 찾아 듣고 있는 중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온통 김동률 과거 라디오와 TV 출연 클립이 되어버렸다.


왜 그토록 좋았던 걸까. 연말이 되어 또 잠자코 떠올려보았다. 그저 노래와 퍼포먼스 자체가 좋았다는 것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노래가 좋은 거야, 마치 숨쉬기처럼 어릴 적부터 김동률 노래를 듣고 자란 거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왜 이토록 좋지? 내내 듣고 또 들어도 왜 좋지?

예전엔 김동률의 노래는 대신 울어주는 마음이라, 슬플 때만 찾아듣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굳이 슬프지 않아도, 노래를 듣는다. 슬픔이란 감정을 소비한다기보다, 슬픔 자체가 아름다운 창작물로 전환되는 그 에너지와 가수를 존경해서였다. 어딘가 노랫 속 주인공들은 온통 어둡고 ‘고독한 항해’를 계속해 가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말도 잘 못하면서 , 고백을 하는 와중에도 나중엔 이런 말 하지도 않겠다고 못을 박는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하더라도, 너무 물러서는 게 아닌가. 그렇게 늘 머뭇거린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하면서 또 망설인다.

그 어쩌지 못하는 순간, 그게 사랑이면서 예술인 것만 같다.

좀 더 내게 와닿도록 안달이 나는 마음, 만족할 순 없지만 그 만족에 가닿기 위해 또 돌아보고 돌아보고 고치는 마음, 노래가 내게 환기하는 마음은 그런 거였다. 김동률 콘서트를 다녀온 이후, 운동과 글쓰기를 매일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 직장 업무가 고되고 몸이 너무 피곤해서, 이런 핑계를 잘 안 대고 있다. 인생은 내가 선택하고 하기 나름이다란 다짐을,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가수를 통해 하고 있다. 20세기 말 듣고 또 듣던 음악을 지금 21세기에도 여전히 듣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심지어 더 좋아졌다. 이게 바로 작업자가 자신의 작품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할 일이구나, 너무 감동했다.

산책 콘서트 도중 김동률의 세세한 편곡 안내가 엄청난 폭풍처럼 마음에 와닿았다. 저런 모습, 너무 멋있다. 그냥 쾅! 또 반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 뭔가 너무 거창하지만, 그랬다.

나도 어느 시기를 내내 돌아보거나 그리워하거나 되새기며 거기서 어떤 깨달음을 얻으려는 사람인데, 그게 나를 나아가게 되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에 있긴 하지만, 그리고 지금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어떤 시절 이루고자 갈망했던 것, 마음에 깊이 남은 것, 미래에 이루고 싶은 것, 그런 꿈들은 이 지난한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많이 있다. 조금씩 조금씩 바꿔 나가고 갈고 닦으면 내가 바라던 나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아직 조바심이 나고 열망이 강한 건, 그래도 꿈이 있다는 거구나! 콘서트 때는 듣지 못했지만, 카니발 <거위의 꿈>처럼, 나도 꿈이 있다는 자각이 강하게 다가왔다.

요사이 김동률 외에도 윤종신, 이승환, 윤상, 김현철, 이현우, 김광진 등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내내 좋아하는 가수들의 무대를 라이브로 보았다. 어릴 땐 이들이 이토록 길게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칠지는 알지 못했다. 가수이면서 동시에 학창 시절 등학교, 야간자율학습 시간, 유일한 탈출구 가이드이자, 미래의 판타지를 이끌어주던 아티스트이다. 지금도 여전히 일상의 숨 쉴 틈으로 존재하는 가수가 무대를 위해 노래를 위해 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도 위안이 된다. 더불어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그런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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