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다면'
https://youtu.be/rWMZ1zobg2E?si=sYrin7KYz1rjlpgj
곡을 한 곡씩 끊어듣지 않고 앨범별로 들을 때 이점은,
마치 시집 한 권을 한 편씩 아무 시나 골라읽지 않고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읽은 기분과 비슷하단 건데,
시집을 그렇게 한 권 주욱 보고 나면 시인이 보인다.
작중 화자의 입을 빌린 시인은, 아마도 이런 사람이겠구나 떠올려보고 공감이나 발견 속에 '긴' 독자로 남는다. 가요도 마찬가지다. 90년대 테이프로 음악을 들었던 세대는 한 명의 음악을 앨범별로 들었다. 플레이를 하고 스톱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상은 끝까지 테이프가 돌아간다. LP나 CD도 그랬다. 주욱 그렇게 듣다 보면 전체 앨범이 통으로 기억에 남는다.
좋아하는 가수의 다음 앨범을 기다리는 건,
때론 연재소설 읽던 느낌이었다.
요사이 앨범을 한 번의 호흡으로 주르륵 듣고 있다. 예전에 좋아한 것들을 위주로. 듣다보면 아, 맞아. 이런 노래를 내내 듣곤 헸지,라는 기억도 나고 또 다시 들어서 새로운 느낌도 갖게 된다. 앨범 하나를 완성하는 데 들였을, 가수와 제작진의 노고가 시간을 되짚어 내게도 전달이 된다. 왜 이 곡을 타이틀로 했을까, 차례는 왜 이렇게 배치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하고! 옛날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듯 즐겁기도 하다.
앨범 곡들을 차례대로 듣는 게 카세트 플레아어나 씨디 플레이어 등이 부여한 역할이었다면, 라디오나 TV 음악프로그램은 단발성으로 유명한 곡들을 사연 분위기나 디제이 멘트, 그날의 방송 콘셉트에 따라 끊어듣는 재미를 주었다. 이젠 아예 쇼츠로 곡의 일부분만 듣는 식으로까지 바뀌었다. 이러단 1분이나 30초짜리 곡도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멜로디에 가사를 얹은 형태로도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초 단위로도 귀를 끌리게 하는 게 인간의 감성으로 소화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긴 하다. 미세하게 동물적 감각으로 들을 수 있는 천재 귀라면? 아주아주 시끄러운 곳에서라도 거기서 틀어놓은 노래는 감지할 수 있지만 그걸 감상이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긴 하다.
그렇다고 음악을 직업적으로 내내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닌 사람이 그 노래를 이해할 만큼 들을 수 있는 청취 시간이나 공간, 기기는 무엇일지 내내 궁금하다. 올해는 내 방 한 쪽을 음악과 영화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섹터로 구분하려고 한다. 그래서 암막커튼과 스피커, 모니터 등을 모던하게 배치해 복잡한 생각 없이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놓은 공간 경험의 장들이 많이 생기고 있고, 그런 데에 가서 감상해도 좋다. 어디를 가든 홀로 있든 결국 그 갈망은 '집중'이다.
한 앨범을 주르륵 감상하는 게 누군가의 이별과 사랑, 성장을 이해하면서 나를 들여다보게 되듯, 한 공간에서 딱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것도 디지털 디톡스이자 그 디톡스를 지나 숨어있던 나를 만나고 또 앨범에 존재하는 또 다른 타인의 매력을 만나게 하는 일일 것이다. 예전에 들었던 노래들이 다시 들어도 또 좋은 건, 나는 변했지만 그 노래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여서 받는 위안일 수도 있지만, 변한 자아로 듣는 노래가 또 나와 같아서 평행선를 그으며 노래도 시간에 따라 달리 들려서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