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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Nov 11. 2020

시간

기억의 모퉁이

SBS 불량주부 OST 삽입곡 <시간> 윤종신 작사


좋은 공연을 보면 용감해진다.

사실 근거는 없다. 그저 추정할 뿐이지만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나는 공연,

마음을 동요시킨 작품을 만난 후엔 

설명이 불가능한 용기가 생긴다.

그리고 앞뒤 잴 것 없이 과감해진다.

노력의 문제도 아니다.

직감을 믿었던 것인지

어떤 차원의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느 해인가, 연극을 보는데 옆자리에

인기 감독이  작품을 감상하고 계셨다.

지하극장에서 공연이 끝나고

모두 계단을 걸어 올라가던 중,

감독님을 쫓아가 사인 요청을 하곤 말씀드렸다.


이 작품의 주제의식도 예전 감독님 영화와 같은 맥락에서

제겐 의미가 있었어요.

창작욕구는 억누를수록 올라오고

사회적 제약은 오히려 독이 아니라 득이 된다는 거죠.

감독님 영화를 볼 때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감독님은 웃으며 맞다고 답해주었고

행복하게 살라는 문구를 사인 옆에 붙여 주었다.


행복하세요 사인


또 어느 해인가는

대학로 극장 거리를 걷는데

어느 골목에서 좋아하는 연극 배우가 동료들과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친구랑 길을 걷던 중 불쑥 달려가,

정말 바람처럼 달려가

팬입니다! 제가 배우님을 좋아해요!

저번 작품 OO을 너무 감동적으로 봤어요.

하이톤으로 말했다.

쑥스러움 없이, 그 순간 왜 그럴 수 있었는지

지금은, 에너지가 다운 되어 못 그럴 것 같다.

그때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간 덕에 개인 연락처를 받고

종종 배우의 연기 이야기,

연기자가 마주치는 일상과 고민에 대해 듣곤 했다.

그리고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근황토크를 나눴다.

한번은 그 배우가 연기를 떠나 잠시 금융 관련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가 다니게 된 회사의 금융 재테

관련 책을 받으러 대학로에 나간 적이 있다.

그날밤 그 책을 가방에 넣고 집에 들어가는데

혼자 너무 먹먹하고 슬퍼서

배우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답도 나오지 않는 질문을 두고,

그저 속상할 뿐이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일정 연령대 예술만 한 작업자는

사회와 괴리될 수도 있으니

창작자도 일반적인 생활 일터를 경험하면

그게 다 연기의 기반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도 했다.

연기를 하지 않는 입장에서도

왜인지 사회 어느 구석이라도

연기와 분리된 곳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며칠 전 안 보는 책들을 좀 걸러서 

헌책과 재활용 폐휴지로 구분해 버리면서,

배우 사인본 재테크 책만은 책장에 잘 꽂아뒀다.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다 읽지 못했으나

소장본으로 열정 강한 배우의 상징으로

고이 모셔두고 있다.

그리고 그 배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현장으로 돌아왔고,

다시 그 배우가 나오는 연극을

밤마다 보러 간 적이 있다.

일주일 간 짧게 소극장에서 했는데,

2인극에 무대도 단촐한 실험극이었다.

배우들이 자신의 심리를 신체로 표현해가며

뭉개질 만큼 많은 대화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극이었는데,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뿐만 아니라

멜랑콜리한 공연 정서가 어쩐지 나와 맞아서

밤마다 각기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갔다.

그 극이 얼마나 좋은지 소개해주고 싶어서였다.

다행히 친구들도 취향이 비슷했던 탓에 공연에

만족해 했고, 매일 늦은 밤 한 시간 짜리 그 연극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일일드라마처럼 주말만 쉬고 주중에 계속.

결국 공연은 막을 내렸고 재공연도 하지 않았지만

시월의 마지막 주를 그 공연과 함께 했던 해가 종종 생각이

난다. 각 가을마다 다른 공연의 기억이 있고

그 해들이 나름의 이유로 다 소중하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어떤 기억의 기준을 갖고 살 것 같다.

물질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나 상처, 좋은 일, 아픈 일

그 종류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어릴 적엔 학교 입학, 졸업이 기준이었고

어른이 되고서는 알바나 회사 기준.

그만두었을 때는 또 이직 기준.

그런데 공연을 좋아한 해부터는

누구의 공연을 어떤 시간에 보았는가를 기준으로

그 해를 기억한다.


그리고 어떤 공연은

정확히 날짜나 시간까지 기억이 나서,

그 날이 다가오면 그때 기분이라든가 날씨,

사람들과 나눈 대화 등이 떠오른다.


공연을 보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좋아하게 됐다.

그런데 아쉽게도 적은 사람들은 싫어하게 됐다.

이상하게 싫은 사람 기억이 좋은 사람 기억을

누를 때가 있다. 웬만하면 좋은 쪽은 간직하고

싫은 쪽은 기꺼이 버리면 좋은데

그건 시간의 힘이 필요하다.


가끔이라도 싫었던 기억이 안 잊히면

일부러라도 좋은 기억을 통해

상쇄시키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던 배우는 종종  음악 선물을 주었는데,

그 중  

김도향이 부른 '시간'이라는 곡이 있다.

윤종신 팬이라서 익히 아는 곡이었으나

그 곡을 선물 받을 땐

마치 처음 들은 곡인양, 난생 처음

알게 된, 인생 최초 영접 곡인양 좋아했다.

드라마 배경음악이기도 했지만

윤종신이 직접 부른 버전이

김광민 피아노 연주와 함께 발매돼 있다.

가사는 연륜이 좀 묻은 사람이 회상하며

들려주는 분위기이지만

나이가 어린 사람이 들어도

어떤 분기점들, 추억의 근원, 변화의 시점 등을

떠올려 보기 좋은 곡이다.


'나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난 어디로 돌아갈까'


'그 모든 걸 이뤘다면

난 정말 행복했을까.

아님 또다른 고민에 밤을 지샐까.'


가사 하나 하나 모두 와닿지만

마지막에

후회마저도

'내가 흘러갈 세월'이 가려줄 것이란

위로가 특히 좋아, 이 곡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좀 더 용기를 내어 과감히 발을 디딜 순간들을

마주치고 싶어진다. 어차피 다 시간이 해결해줄 양이라면

우리는 좀 과감하게 행복해져도 좋다고,

노래가 묘하게 나를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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