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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Nov 26. 2020

닫히는 문의 순간들

결말은 몰라

어젯밤 꿈.

책장에서 흑백으로 뽑은 사진 몇 장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평면 인화지에서 세 인물이 나와

컬러로 변해 움직였고,

어느 한때 내가 보던 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그 셋은 어느 운동장에서

농구를 했고 바닥은 녹색. 스테이디엄의 조명은 노란색.

어린 청년으로 분해 뛰고 있었고, 

공이 튀길 때 들리는 특유의 툭툭 소리도 첨가됐다.

나이 든  나는

 늙지 않은 그들을 바라 보았다.


가끔, 아니 자주 인물과 배경, 이미지 강한 에피소드성

꿈을 꾼다. 물론 흐름은 뒤죽박죽이지만,

특정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사람들이 다른 이로 변하기도

하고, 그러다 사건도 배경도 변한다.

한공간과 시간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사람들이  안에선 한데 모이고 모험을 한다.

그게 기분 좋은 잔상과 여운을 남길 때도 있고,

강력한 악몽이 될 때도 있다.

두려운 꿈은 잊고자 적지 않고 간직하고 싶은 꿈만

메모해두거나 다시 그림을 떠올려본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적은 것과 전혀 무관하게

꿈의 이미지들도 산발적으로 파편적으로 떠다닌다.

심지어 왜 기록해두었던가,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나열돼있고

휘발성이 생겨 버리고만다.

기억은 정말이지 제멋대로이나,

그래도 강하고 긴 편린들은 존재한다.


얼마 전 꿈을 그리는 어느 화가가 쓴 편지 인쇄물을

읽다가 그의 그림을 찾아 보았다. (책명.예술가의 편지.)

악몽이랄 수 있는 환상이었는데,

그는 그 그림으로 순간을 잡아

 시기의 내면에 억눌린 욕망들을

외면화한 듯 보였다. 초현실주의 작가의

그림을 연도별로 찬찬히 보다,

이후 그의 그림에 영감받았다는

또 어느 디자이너의 검은 드레스를

우연히 찾아 보게 됐다.

보그 잡지에 소개된 디올 의상 사진이었다.

양 어깨가 엄청 넓고, 거의 까마귀라 할 수 있는

검은 깃털같은 레이스가 겹겹이 달린

가운 같은 옷이었다. (by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기억이 확장된 찰나를 표현한 것처럼 다가왔고,

이번 달

어느 전통 무대에서 보았던

폭이 넓은 대형 블랙 원피스가 겹치기도 했다.


꿈과 기억이 지속되거나 사라지고 다른 이들과

엉키고 풀리는 과정은

당시에는 뒤죽박죽 혼란스럽다가도

어떤 결과물이 되고 보면

나름의 질서를 잡고

타인에게 심적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요사이 공일오비의 신곡

<닫히는 문의 순간들>을 틀어놓고 잠들었다가

나는 과거 어느 시절에 보고 싶은 이,

의식적으로는 그립지 않은데

왜인지 무의식적으로는 보고 싶었던 것 같은 이를

꿈에서 그것도 멀리서 만났다.

평면에서 입체로 흑백에서 컬러로 변하는 이미지로.

아마도 노래 뮤직 비디오를 보고 가사가 좋아

귓속에 맴돈 것이

영향을 미친 듯 했다.

노래를 듣다 보면

기억과 시간을 재편집할 수 없는 서글픔 같은 게 느껴지는데,

문이 닫히기 전 되감기하고픈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멀어진 친구나  이별한 이와의 순수한 시간.

그런 게 생각났다. 점점 생활 이외의 것을 챙기는 게

부질없어질 때 그나마 시시콜콜 서로를 말하는 게

흥겨웠던 어느 자잘한 시간들.

나로선 연애라든가, 공연장 대화라든가 창작진과의 미팅

그런  장면이었고

헤어진 이의 지금 일하는 모습이 좀 겹쳐 떠올랐다.

게다가 최근엔, 무용 장면을 실시간 정지 사진으로 재편집해서

동시상영하는 전시형 무용, 그라운드 제로 프로젝트(전혁진)×오중석의 <소멸>이라는 작품과,

노동하는 이를 위로하고 세계와의 연결고리를 찾는

한국무용 <제2>라는 작품을 본 뒤

더더욱 기억과 사람, 일하는 풍경  등에 대해

어떤 순간들이 연결지어 생각나고 그 느낌이 꿈에 반영되곤

했다. 순간멈춤으로 남겨놓고 싶은,

어느 시기의 문이 닫힐 때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황급히 달려가 그 문을 있는 힘껏 정지시켜

붙잡고 싶은 때, 그때의 사람은 누구일까.

회환과 희망이 겹쳐 닿는 곳은 어디일까

 '결말은 몰라'

닫히는 문의 순간들 뮤비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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