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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Jan 10. 2021

"잘했어요"

"건강해요"

<좋니>가 '놀면 뭐하니?' 겨울 노래로 소개되면서 방송 직후 포털이나 멜론 인기 검색어에 계속 상위로 랭크됐다.

언제 연애를 끝내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노래를 찾아듣는 시기가 다르니, 정말 좋니는 사시사철 노래일 테지만,

윤종신이 붉은 체크 두툼한 남방 입고

방송 직후 멜론 검색어 순위

통나무집 모닥불 데코레이션 앞에서 부르니,

저절로 겨울이다.

티비에서 흘러 나오는 좋니를 듣던 중,

놀면 뭐하니 겨울 노래가 좋니, 나이라면

내게 윤종신 겨울 노래는 어떤 곡일까 떠올려 봤다.

바로 생각난 노래는 두 곡.

하나는 <너의 결혼식>, 또 하나는 <잘했어요>였다.

너의 결혼식은 90년대 초 곡인데,

그해 겨울 라디오를 틀면 너의 결혼식이 나왔다. 어둡고 슬픈 분위기 당대 히트곡였다.몰랐었어,로 시작되는 띵곡. 밤새 라디오를 틀어놓던 습관이자 의무 때문에 1992년 겨울과 1993년 초입은 그 노래를 틀어놓고

방학을 보냈다. 정석원 작곡, 박주연 작사 노래인데, 공테이프를 사거나 렉버튼을 누르던 날들이 많던 밤이다. 기억 속 여전히 남은 장면이라면,  윤종신이 라디오에서 박주연 작사가를 칭찬한 일이다.

가사에 이렇게 '부케' 라는 단어가 들어간 건

평범하지 않단 평을 했다.

 왠지 그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부케'와 '웨딩드레스', '촛불'을 섞어 그림처럼 그려지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결혼식에 가서,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이의 드라마가 떠올랐다.

10대 팬으로선 순정만화 남자주인공 테마와도 같았다.  시기가 조금 차이가 나지만, 넥스트의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해>라든가 김정민 <슬픈 언약식>, 김경호 <금지된 사랑> 같이 이뤄질 수 없던 사랑 앞에 끝까지 가겠다는 노래들이 좋았다. 사랑의 도피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엘비라 마디간>이나 김혜수 <첫사랑>, 유덕화 <천장지구> 같은 류의 영화에도 빠져 있던 때였다. 윤종신 노래를 계속 듣자 친구는 내게 너는 슬픔을 소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더 시간이 훌쩍 지나

사랑했던 이의 결혼 소식을 듣는 나이에 이르렀다.

그때 갑자기 다시 찾아 들은 윤종신 곡이 <잘했어요>였다. 이천년 인기곡 애니가 들어있는 명반

'헤어진 사람을 위한 지침서' 에 실려 있다.

너의 결혼식에는 부케라는 명단어가 들어 있다면 잘했어요에는 건강 덕담 명어구가 들어 있다.

앨범 제목 때문에 전체곡을 플레이했다가

'잘했어요' 한 곡만 마이클 잭슨 Love never felt so good과 함께 한겨울 12월 무한 반복해 들었다.

(마이클 잭슨 곡은 사랑 충만 곡이나

 우는 목소리 같아 대신 울어주는  같다.

가사 중 in and out of my life가 나오는데

 들락날락 정신 없는 심경일 땐 들으면 위로가 된다.)

<잘했어요>는 하림 작곡, 윤종신 작사 곡이다.  

몰라도 되었을, 남의 비밀을 알아버린 듯한 기분였다. 사랑했던 사람 결혼 소식을 는 건.

친구를 만나 털어놔도 맛집에 가서  인기메뉴를 먹어도

공허해졌다.

눈물이 나면 부끄럽고, 쉽사리 풀리지 않는 감정.

이상하게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어느 시기 가장 사랑했고 더 길게 아껴온 이를 낯선 이에게 빼앗긴 심리였다.

 그런 어린 심경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시점에,

  <잘했어요> 는 어떤 말보다 더 강한 효과를 냈다. 가사 하나하나 너무 와닿고 그 노래에 실어 감정을 버릴 수 있었다.  잘했다고 체념하고 보내주면서도 네가 잘못된 선택이길 바란 적도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 마음.

원망과 인정의 자기 위안이 반복되는 노래.

특히 마음을 울린 가사는 마지막 구절. "건강해요"였다.  그가 너무 미워도, 잘 살았으면 싶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마음에 절취선을 그은 노래말이 "건강해요"였다.

 잘했어, 그래 건강해.

떠난 사람에게 진심으로 건네는 인사 같았다.

어느 정도 나이를 지나면 대화의 시작과 끝은 건강과 관련되었다. 아픈 데는 없니, 운동은 하니, 건강하니.

 대화의 일부분이 그렇다. 가까운 이의 건강이 곧 자신의 행복과 직결된다. 그런데 이젠 옆에 없는, 과거 그 사람의 건강마저, 오지랖 넓게 걱정된다면

영락없이 '찌질한 '모습이나,

 어쩐지 떠나버린 사람에게 말하는 '건강해요'만큼 서글프게 들린 가사가 없었다.

"잘했어요"는 사랑했던 이의 소식에 흔들렸던 겨울을 지나 청승에서 벗어나게끔 도와준 고마운 곡이다.

또 들으면 내가 아둔하게 느껴져 피하고 싶은 곡이다. 그럼에도 가장 아끼는 이상한 곡.

이별은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는데 그 포기의 순간을 잘했어요가 부추겼다.

기억을 내려놓는 순간의 절정으로 다가온 노래다.

사적인 겨울 이별에 해탈을 끌었다.

결혼 후 소식은 우연히라도 마주칠까 개인 소셜을 폭파하다시피 닫고 차단하며 혼자 난리를 치다

평정심을 찾았다. 그래도 건강해요 인사는 언젠가 어느 순간 그 사람과 마주치면 건넬 수 있는 말이다.

얼마나 좁아든 후회와 허탈한 시간이 다 묻어있는지 얘기하지 못할 거리에서 

그저 '건강해요' 마무리가  다 담는다.

서둘러 멈추는 진심의 말. 사랑했던 기억은 그냥 시간이 보내주는 것이지 의지가 보내주는 건 아니었다.

<너의 결혼식>, <잘했어요>, <좋니>...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후 감정 조절이 전혀 안 되는 사람이 반복해 듣다 보면, 조금은 더 일찍 일상을 되찾을, 이별 뒤끝의 명곡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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