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정지된 듯 움직이는,
무용 풍경
by
레아
Jan 13. 2021
신년 토론회를 보던 중
화면이 다섯 부분으로 분할 편집된 순간,
그 프레임에서 문득 현실감이 사라지며
극장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둘씩 나뉜 팀에서 양 편에 각각 얼굴이 들어 있고
중앙에 사회자가 있다. 출연진은 각자 얘기를 하느라 그 안에 떠도는 말만 가득하고
어느 쪽으로도 시간이나 발언권이 더
치우치
진 않았다. 앵커는 왜인지 잠시 침묵하고 있었다.
그때의 시점은 마치 사회자가 주인공이고,
그는 관찰자와 방관자 사이 어디쯤에서
언어적 소요와는 아득히 멀어지는 이미지로 다가왔다.
시사 토론회 몇 초가 문득 창작물의 작가적
그림였다.
나머지 넷은 분주히 겹쳐 말했고,
우왕좌왕 테이블 위로 떠도는 말은 너무 많아
모든 말이 도리어 다 사라져버린듯한 풍경이었다.
게다가 찬반으로 양분된 패널
1,2,3,4는 저마다 다른 방식의 말하기를 고수한다.
1은 주로 기존 법령과 신법 등의 원칙 기반으로 말하고,
2는 그가 전직으로 경험했던 조직 테두리에서,
3은 언론이슈와 세간의 구어를 섞어,
4는 학계와 외국사례를 주요소로 근거를 삼는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입법자, 전직 검사, 논객, 교수). 그리고 이들과 다소 분리된 앵커 0은
관점은 있으되 질문으로 재편집된 의견을 바탕에 두고 공기를 정제해 논쟁의 자리를 깐다.
원칙과 경험, 소문과 이론, 번외편의 관조 혹은 관찰... 1,2,3,4,0은 어떤 주의 주장을 펼쳐 시선을 모으는 장이나 일상에서 흔히 맞닥뜨리던 단면,
입장
차이가 두드러진
갈등과
소요의 장면처럼
기억에
남았다.
얼마 전 키드피벗 무용단의 <검찰관> 이란 작품을 본 적이 있다. LG 아트센터에서, 코로나19로 기획공연이 취소되면서 온라인 관람으로 판매했던 작이다.
그 작품에서 특히
인상적인 춤이 있었다.
극의 끄트머리쯤 이르러 'Kill the comedy'라는
대사가 리듬감 있게 반복되고,
무용수가 위협적이고 힘있는 포즈로
움직일 때 나머지 출연진들이
그가 올라간 테이블을 밀면서 미끄러질 듯 춤을 춘다.
전체 장면 중 그 춤이 기억에 남은 건,
유명 작 패러디 같았던 점도 있지만,
코미디적
상황에 어그러지도록 진지한 포즈였던 탓이다.
대사에 움직임이나 춤을 모두 입힌 무용작이었는데
19세기 초 러시아
고골의 검찰관을 크리스탈 파이트 안무가와 조너선 영 작가가 무용극으로
재편집했다.
영어와 한국어의 호흡이 달라
움직임으로 변환되는 대사들이 의미를
증폭시키는지 감추는지 한 번의 관람으로 와닿진 않았지만 비판 대상이 두드러지는 풍자적 정서는 흥미로웠다.
누구나 강하게 의지를 드러내고 싶거나
거짓을 감출 때 과잉 포즈가 생기는데
그게 전문 무용수들 동선이 되고 보니
복잡다단한 혼돈의 그림을 만들었다.
내용은 마을 관리와 주변인들이
국가 하급 직원을 비밀리 파견된 감찰 고위직으로 오해해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부패한 관료사회와
관계자들의 세속일화를 압축하듯 춤으로
보여주는데
, 움직이는 순서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인간 심리가 더 강조된다거나
코미디를 끝내라 움직이던 무용수 춤은
,
모두의 혼란에 거리를 두는 포즈 같았다.
홀로 테이블 위 춤추던 모습이 관조의 그림였다.
주변 소요를 흡수해 판단을 유보하는 몸짓.
대사는 명료하나 움직임은 이를 또 흐트러지게 했다.
고요와 떠들썩함이 춤에선 정반대로도
다가올 때가 많다.
강하게 쉴 새 없이 움직이나 정지된 듯,
멈췄으나 흐르는 듯.
무용의 테이블 춤 킬더코미디는, 끊이지 않는 토론 중 몇 초의 센터 침묵과 겹쳐 혼란에 거리감을 두는 복합적인
춤으로 기억에 남았다.
키드피벗 무용단 홈페이지 <검찰관> 작품 사진
키드피벗 홈페이지 kiddpivot.org
검찰관을 보다 가장 끌리던 장면
keyword
무용
생각
9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레아
직업
크리에이터
움직임을 기록합니다. 몸과 마음, 그리고 발자국
팔로워
35
제안하기
팔로우
작가의 이전글
과일, 악기, 그림책
아마데우스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