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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트레인저
<1. 안녕하세요. 2.Hello>
by
레아
Apr 5. 2021
횡단보도를 건널 때였다.
신호등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저만치
서
문득
쇠로고가 방향을 천천히 바꾸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바람개비보다 느리게 돌아가며
시선을 끄는 벤츠 표시였다. 핸들을 본뜬 것인지 삼위일체의 종교적 뜻일지 궁금해져
신호등 앞에서 검색해보기도 했다.
땅, 바다, 하늘을 아우르는 최고의
엔진을 뜻하며
창립자가 꿈꾸던 바를 별의 세 꼭짓점으로 형상화한 것이란다.
지금처럼 단순명료해지기까지
몇 차례 월계수나 메르세데스 알파벳 등이
그 안에 들어왔다 나가기도 했다.
도시를 걷다 보면 뜻밖의 구조물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땐 잠시 이 공간이 시내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초대 받는 문이 열리는
듯
하다.
헬로우 스트레인저.
지하철 역 이름 중엔
1호선 신이문역과 7호선 이수역이 있는데,
그곳은 이름이
지금과는 다른 출구, 새로운 물길 같아 좋
다
.
그런 역이름 느낌의 형상들이
불쑥 나타나는 순간이
있다.
며칠 전엔 백화점 옆을 걸어가다가,
도심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
미니 건담처럼 자리잡은 부속물이 시야에 잡혔다.
역시 인사를 건넨다.
팔이 긴 우아한 자태로.
잠실 롯데타워 맞은 편 미세먼지 속 거대로봇
길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조형물도 반갑지만
미술관 밀폐된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꿈꾸게
만드는 구조물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로 감사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0> 제2전시실 김민애 작.
최근에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2020 전시장에서
구경한 김민애 작가 작품이 그랬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처
음에
열
린 건 청각이었다. 빌리조엘의 더 스트레인저가
흐
르고 있었다.
적막한 가운데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순간 시간이 몇 십 년은 뒤로
흘
러갔다.
티브이 광고에서 이 멜로디가 참
많이 쓰였다.
전시장을 나와서도 계속 노래가 생각났다.
며칠간.
그리고 눈에 들어왔던 건 층고 높은 공간,
시원해뵈는 유리창,
천장 아래 띄엄띄엄 꽂힌 미사일 형체의 구조물이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거대한 펜들.
마치 어릴 적 다락방에서 느꼈던 기분 같은 것?
가장 소중한 것들만 추려놓고 무언가 꿈꾸는
어린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고,
어른이 돼서는 설레는 극장 느낌이 따라오기도 했다.
혹은 내 방에 이토록 몇 가지만 남기고
모두 버린다면 무엇을 추릴까, 하는 물음도 했다.
작가가 설치해놓은 목재 구조물과 초록 인조 풀밭
앞에선
몇몇 공연이 보고 싶어졌다
.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에 설치된
김민애 작가의 작품들을
둘
러보다
짧고 강렬한 개인적 여행에 잠겼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 퍼포머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글을 쓰거나 낭독을 하는 등,
온갖 향연이 일어날 법한 장소처럼 느껴진 까닭이다.
특히 오른편에 놓인 이동할 것만 같은 흰 구조물과
그 위로 커다란 학처럼 자리잡은
것
들은,
처음에 말한 대로 거리에서
무
심코
마주치는 돌발적 설치물처럼 보였다.
기분에 따라 좀 달리 다가오는 것들.
마음을 투영해볼 수 있는 대상
들
말이다.
그저 투박한 쇠 막대기로 보일 때가 있고
바람을 가르며 고요를 부추기는 장치로 보일 때도 있고.
그렇게 시간마다 다르게 비치는 대상들처럼.
날아갈 듯 감춘 듯 저멀리 있는 것들이
외부빛과 어울려 숨통을 트이게 했다.
코로나19로 예약제이다보니 주어진 시간 동안은
온전히 작가의 공간을 빚질 수 있
었
다.
며칠 동안 더스트레인저가 맴돌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 작품 <1. 안녕하세요 2.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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