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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 폴부터 뚝섬 스벅까지
8 천보.
by
레아
May 3. 2021
목적 없이 한적한 거리를 떠오르는 것은 떠오르게 놔두고
되도록 시간도 의식하지 않으려 하며 그저 걸었다.
"앞으로 여덟 시간은 더 걸어야 되겄제?"
내 뒤를 걷던 어떤 낯선 아저씨가 동료에게 말했다.
포복을 줄여
뒤
로 가 그들을 보니
바람막이 점퍼에 레깅스와 반바지를 갖춰 입은,
전문 도보인 같았다. 1시간 가량 걸은 뒤, 한강 지점에서 마주친
이들이다. 그들은 걷기만이 목적인 듯, 하루 종일
걷는 모드로 내 옆을 스쳐갔다. 언젠간 저들처럼
하루 종일 강변을 걷는 것도 시도해 보고 싶기도 했다.
바로 첫마음 반칙.
지난주 일요일 멈춘 지점, 건대입구역 폴바셋부터
시작해
뚝섬역 서울숲 스타벅스까지 8천보를 걸었다.
다음에 시작지점은 다시,
스벅 서울숲점으로 삼을 생각이다.
건대입구역 폴바셋
주말 이른 오전, 건대입구역 근처는 꽤 한가했지만
소음은 심했다. 주변 건설현장들이 일요일에도
공사를 하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니
예전 예식장 자리다. 스타세프 유입으로
건물 가치 상승도 같이 홍보되고 있었다.
건설이 한창인 지역 로데오 입구로 가기 전,
이마트, 롯데백화점, 반디앤루니스로 가는 에스컬레이터
방면에 먼저 들어섰다.
예전 연극 프로덕션에 참여할 때 도시 시리즈의
건대 편 영상을 찍었던 곳.
추억이 떠올라 잠시 내려갔다.
에스컬레이터 운행 전 시간이라
계단으로 내려갔는데,
철 지난 뮤지컬 포스터, 벤허와 영웅본색이
붙어 있었다. 몇 해 지난 광고 포스터를 뒤로
하늘 사진을 몇 장 조금 찍었다.
그 시절 도시 시리즈에서 만난 이들이
다들 더 작업이 잘 풀리길 하는 염원의 샷으로.
언젠가 연극팀 배우가 상업 광고를 찍고
그 돈을 받았다며 건대 근처에서 먹을 것을 산 적이 있다.
그때 고마웠던 기억이 났고, 나도
스스로에게 행복한 결과물을 내면
주변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고 싶어졌다.
먹자골목으로 접어들까 하다
그곳은 친구들 기억이 워낙 많은 곳이라,
기억량이 덜한 길목으로 들어섰다.
종종 옷을 사러 들렀던 로데오 거리.
가장 좋아했던 브랜드는 제시인뉴욕.
지금은 옷가게는 별로 없었다.
제...뉴도 사라졌다.
맞은 편에 백화점도 있고, 거의 의류 상권은
사양인 듯했다.
스포츠 매장들도 많이 사라졌고,
남은 아디다스는 폐업 전 행사를 하고 있었다.
나이키만 그 자리 그대로였다.
남은 옷가게들이 반가워 연거푸 사진을 찍었다.
택시 회사 자리는 컨테이터 박스 상가로 변한 지도
몇 해 지났고,
그곳 길을 지나다 우연히 제시 랩 공연을 본 기억도 났다.
야외 무대 위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그 맞은 편에는 예전 미술학원 이름을 딴 건물이 있었다.
아마도 그 미술학원 관계자가 사업을 확장하고 건물을
올렸거나 리모델링한 듯도 했다.
그 길목은 끄트머리까지 군데군데 카페나 식당이
계속 새롭게 생겨나고 있었고,
골목 끝에선 영동대교 방면으로 틀어 걸었다.
다리를 건널 요량으로 꺾었는데,
가다보니 시장이 나와 다시 새벽 시장으로 진입했다.
일요일 장사를 준비하며 튀김 요리를 준비하는 이,
빵굽는 이, 떡 진열하는 이 등 먹을 거리 집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뭔가 살까 했다가 코로나 시기라 밖에서 먹기도 뭐해,
아무 것도 사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사소한 군것질도 영향을 받으니,
소비자 주머니 여는 게 정말이지 어려운 때다.
시장은 총 세 군데로 나뉘었고
일차 시장을 지나 이차로 접어들고,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삼차 시장으로 갔다.
트로트 인기인 영탁이 부착된 사진이 많이 보였다.
시장을 통과해 다시 오른쪽 대로로 꺾으면
바로 다시 한강이다.
건대입구 초입에 전방 1000미터 한강 표시가 있는데,
직진해도 갈 수 있다. 나는 우회한 것.
한강에 진입하니 마라토너들이 많았다.
처음에 말한 하루 종일 걷는 순례자들도 보였고,
몇몇 함께 같은 옷을 입고 달리는 이들도 자주 등장했다.
아마도 언택트 마라톤 참가자들인 듯 싶었다.
며칠 전, 제각기 뛰는 서울마라톤 신청을
하
려다
하루 안에 접수자가 다 차서 바로 마감돼버려
접수를 못했다 . 따로라도 뛰겠다는 이들이
그토록 붐비는 데에 놀랐는데,
역시 주말 오전 한강은 마라톤과 사이클링 즐기는
이들로 인파가 붐볐다.
성능 좋은 자전거들도 옆을 계속 쌩쌩 달려
다시 조용한 골목으로 접어들고 싶어,
뚝도청춘시장이 표시된 입구로 나가버렸다.
직진하자 활어시장으로 특화 중인 재래시장이 나왔고,
매장들을 지나쳐 횡단보도를 건너
성수역 방면으로 걸었다.
구운몽 주인공 이름과 같은 교회에서 왼쪽으로 틀었고,
직진해서 기마경찰이 있는 곳을 지났다.
좀 떨어진 곳에서도 말 사육장 냄새가 났다.
도시와 이질적인 말발굽 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말들은 보이지 않았다.
마방!
거기서 쭈욱 앞으로 걷다가 삼거리에서
색연필 회사를 만나 사진을 좀 더 찍고
평소 손님이 붐비는 카페를 지나
연무장길로 나섰다.
역시 공장 사이사이 카페 골목.
건물 통째로 개조한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었고,
그 가운에 어느 신발 가게에서
ㄹ이 실종된, 가수명 하림공방 상호명을 보고 간판을 찍었다.
그 옆 내 인생 뮤지컬 제목을 지닌 나인과 함께.
이상하게도 자음이나 모음이 자연스레 삭제된
혼란스러운 글자를 보는 일은 재미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또 역시 음운이 사라진
가구 전시 안내판 글자를 보고 또 반가(?)운 양
사진을 남겼다. 어디로 갔을까. 사라진 글자들.
이정재 표지 데이즈드사와 카페 골목을 끝내고
의도인지 우연인지
들어선 곳은 뚝섬역 부근 성수아트홀.
오!마이라이프무브먼트씨어터 무용단체가
몇 해 간 상주단체로 입주해 있는 반가운 극장을 지났다.
지역구마다 그 산하에 공공극장들이 있는데,
그 안에서 무용단이나 연극, 전통예술 단체들이
주기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시기를 보낸다.
뚝섬역 쿠팡 물류센터 맞은 편에도
공공 도서관 등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빌라들과 동네 슈퍼, 식당 사이에
티나게 위치한 공간, 좀 정겹다.
극장 밖에 벤치가 놓이고 작은 정원이 꾸며져서
진입 문턱이 더 낮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나쳐 갔다 . 앞에서 그저 멍하니
휴식을 취하다 문득 공연을 보러 들어갈 수 있게.
우연한 방문객들을 이끌 통로가 돼줄,
벤치나 평상이 있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초봄 공연장에 들렀을 때
누군가 이 공연은 뭐죠? 지금 볼 수 있나요?
동네 사람인 듯한 모습으로 호기심을
품은 걸 본 적이 있는데,
내 표를 주거나 팔고 싶었다.
그렇게 갑자기 문득 불쑥 보았다가, 무용팬이
될 확률도 있으니까.
성수아트홀을 끼고 돌아 직진하니
간판 글씨체가 예쁜 요가 학원이 나왔고,
그 골목 끝 윤경양식당에서 왼편으로
직진해 아인슈페너를 마시러 갔다.
그런데 오전 영업 전이라 비엔나 커피집은
문을 아직 안 열었고,
좀 더 가서 스벅에 안착,
디카페인 라떼 하나를 시켰다.
그때가 8000보 가량을 걸은 때였다.
처음엔 목적도 걸음수도 챙기지 않으려 했다가
괜한 만보 욕심이 생겨,
머그잔에 담았던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교체하고
서울숲으로 진입했다.
커피를 마시며 한량 모드로 공원을 몇 바퀴 돌자,
만보가 되었고 성동구민체육센터 앞
따릉이를 타고 귀가했다.
자전거를 타기 전 생각했다.
샛길 미니숲이 많아졌으면.
넓은 공원도 좋지만
공원 옆문 입구를 나서 골목 끝에서
주민들, 운동하러 나온 아주머니들이 어느 작은
길에서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 길을 따라
걸었는데, 작은 숲 샛길이 나온 것이다.
으슥할 수도 있을 길을
꽃과 나무를 심어 정비해 완벽한 산책로로
만들어 놓았다. 그 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샛길에 끌리는데,
어두컴컴할까, 외질까 좀 망설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익숙히
왕래하고 작은 숲으로 조성돼 있다면
발을 디디는데 소소한 만족감 같은 게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길 끝에서 만보를 채웠으나
다음 회차 첫 발은 여유로이 8천보로 마무리한
스벅 시점에서 디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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