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뚝섬 스벅에서 신사 빽까지

씻고 바유

by 레아

다른 이의 추억을 들으며 나의 기억을 합성

뚝섬부터 신사까지 걸었다.

지난 주 멈춘 서울숲 앞 스벅부터.

이번엔 함께 걸을 이를 불러 대화하며 걸었다.

스벅에서 간단히 바나나 케이크와 음료를 먹고

(스벅 신제품 중에 가장 맛있다고 느낀 바나나.

요새 꽂혀서 자주 먹는다.)

저녁 7시 경부터 걷기 시작해 9시 반 경

신사동역 사거리 빽다방 맞은 편에서 멈춰,

함께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그렇게 걸은 만 보. (2000보 정도 초과)

성수동부터 신사동까지

걸을 만한 거리를 간추려본다.


"서울숲 주차장 방면 식물원 ~ 한강 전망대 ~ 뚝섬 유원지

~ 성수대교 ~ 압구정 현대아파트 앞 대로 ~ 압구정역

~ 세로수길 ~ 가로수길 ~ 신사역 사거리 (1만 보)"


일단 서울숲 주차장에 들어섰다.

이곳은 같이 걸은 와이씨가 공연 준비하며

안무가와 댄서와 낙엽을 주웠던 곳이다.

공연장에 쓸 소품.

무용수들이 춤을 출 때 극장 바닥에 가득 깔렸던 낙엽.

그때의 공연 <춤신>이 기억 나, 낙엽 주운 거리에

가보고 싶었다.

춤신에선 춤 대가들이 한 명 한 명 등장해

자기 춤을 선.

대중친화적으로 노래는 가요.

관객 일부는 무대로 올라가

동그랗게 수건 돌리기 하듯 앉아서

공연을 보았.

무용수와 관객이 밀착해 한데 감상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때 무대를 채웠던 가을 낙엽 줍던 자리를

직접 찾아갔는데 마침 석양 무렵이라

그 길 위에 해가 또렷이 빛을 쏴주었다.

와이씨는 사진을 대조해가며 그 길을 찾았는데,

서울숲 식물원 근처 초입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사진 속에는 갤러리아 포레 건물만 있고

아크로서울포레스트와 디타워는 올라가던 중이었다.

(대림산업의 이니셜일 테지만

요사이 새 건물 오피스텔이나 고층 주상복합들이

알파벳 이니셜로 이름을 짓는 게

왠지 삭막해 보였다.

지타워 디타워 에스타워... 길에서

볼 때마다 무취무향의 이름에 정이

안 간다는 생각도 좀 들었는데

느낌이 그렇건 말건 17년 1평당

4750만원으로 당시 최고 분양가 건물.

SM도 청담에서 뚝섬으로 이사온다는 그곳.)



언덕길에서 후편으로 내려가니

남산타워가 저멀리 한 눈에 보이는 숲길이 펼쳐졌다.

데이트코스로 추천할 만한 석양길이었다.


그곳에서 사람이 뜸한 언덕길로 다시 올랐다.

와이씨도 나도 으슥한 길을 꺼리던 터라,

망설이기도 했지만

한강으로 진입하기 위해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이 뜸해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갑자기 나타난 시꺼먼 돌하르방에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인적 드문 숲길에서.

이 곳을 주욱 따라가니 오른편으로 문이 하나 나왔고

다시 그 길로 접어들어 공원 뒤편으로 갔다.

한강으로 가는 초입이다.

잘 찾아야 한다.

또 난데없이 나타난 엘리베이터.

뜬금없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산책로였다.

와이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문이 열리면 이국으로 통하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도깨비 캐나다쯤 되려나.

엘리베이터를 오르자 석양을 찍으러 나온 이들이

몇 눈에 띠었다.

전망대 다리 아래에는 두 커플이 쉬고 있었다.

우리는 노을을 보고 다시 반대편 다른 엘리베이터

강변북로 259 승강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이번엔 또 어디로 가는 거지?

한강이다.

처음 걷는 길이라 설레었다.

단 수많은 날파리 나방? 깔데기? 떼는 참아야 한다.

걸으며 거의 몸부림에 가깝게 몸을 털며 다녀야 했다.

벌레를 가르며 걸었다.

손을 양 밖으로 뻗으면 주욱 길이 나뉘었고

손에 벌레 닿는 느낌을 만끽(?!)하는

처절함이라니.

우리는 서둘러 한강을 빠져 나가려고

걸었다.

단, 노을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명소다.

데이트 코스로도 이쁘다.

사진과 같이 널따란 장소가 있고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쪽에 계단이 있어,

그 계단에 앉아 쉬면 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다 본 한강, 엘리베이터 전면

엘리베이터에서 또 다음 엘리베이터를 향해

벌레를 피해 직진, 성수대교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다리 초입부터 끝까지 걷기 시작.

성수대교 붕괴 사건의 기억에 대해 얘기했고

이곳을 지날 때면 아름다운 풍경들이 미안해지곤 했다.

동시대 사고 기억들은 그토록 오래 트라우마로 남는다.

학창 시절 아침 수업 시간 난데없이

창 밖으로 헬기 등이 떠가는 풍경이 펼쳐졌고

다리가 무너졌다고 했다. 교실 티브이 뉴스를 켜두고

모두 놀라 뉴스를 보았다 . 근처 학교 등굣길에

사고가 났다는 얘기를 들으며 모두 황망했던 기억.

그런데 또 몇 해 채 지나지 않아

또 서초 사는 사람은 다 나오라며,

야간 자율학습 시간 담임은 학생들을 불러냈고

교무실에 다녀온 아이들은

백화점이 무너졌다고 했다.

부실과 편법의 건설 비극으로 기억에 박힌

성수대교를 오늘 처음 걷는데,

역시 머리 위로 헬기가 지나갔고 그때가 기억났다.

다리 위를 건너는 이들은 꽤 많았는데

어떤 이가 나무 이파리를 가지째 들고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서 너무 무서웠다.

함께 걷던 이도 같이 느꼈다.

성수대교를 건너서는

둘의 추억이 함께 있는

구 오!마이라이프무브먼트 씨어터 스튜디오로 향했다.

성수대교 끝에서 압구정역 현대 백화점

맞은 편 골목으로 들어서 걸었다.


가는 길에 와이씨가 맛있는 커피숍과 중국집,

음식점을 많이 추천해주었다.

그 중에선 나도 안무가, 연출가, 출연진과 첫 미팅 때

함께 먹었던 짜장면, 그 집도 있고

회의하던 카페들도 있어 간판을 찍었다.

신사동 짜장맛집 대가방
세로수길점 투썸. 커피빈.

기획자 와이씨가 추천해준 카페와 맛집 그리고 음악클럽.

이코보크, 한추, 컬렉션 라운지 ...

컬렉션 라운지는 생일파티를 했던 곳이라고 했다.

안에 들어가 보고 사진 찍고 밖으로 나왔다.

음악 소리가 쾅쾅 울려 살짝 설레었다.

클럽보단 카페 분위기가 강했다.

한 잔의 추억의 줄임말. 한추. 너무 가게가 잘 돼서 확장 또 확장. 고추 튀김 내음이 지나는 길에 확!
이코복스 커피

여러 가게들을 지나 직진해 드뎌

무용단 스튜디오가 나왔다.

몇 해전 자리를 뺐는데도 여전히

간판이 걸려 있었고

리멤버 글귀와 함께 존재.

반가운 마음에 로고를 사진에 남겼다.

지하로 내려가자 무용단 예전 작업실.

굳게 닫힌 줄 알았는데

혹시나 열어보니 문이 열렸고

그 안에 이전과는 다르게 개조된 공간이 펼쳐졌다.

지금은 어느 무용팀이 쓰는지

복도식 공간을 밀폐해 문으로 닫아 두었다.

입구만 구경하고 있는데,

발레를 하는 듯한 여성 두 명이 등장해

밖으로 나왔다.

연습실인가요? 물었는데 대답이 없다.

와이씨는 현대무용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발레나 탭댄스를 하는 사람 같다고 했다.

연습실을 나와 근처 가게들을 둘러본 뒤

가로수길을 지나 신사역으로 향했다.

대화에 집중하느라 풍경은 그다지 보지 않았으나,

그 길이

좋아하는 프로.

뉴퀴즈온더블록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코로나 이전

가을 남자로 구제 버버리를 사입던 길이라는

생각을 잠깐 하고 지나쳐 갔다.

신사 사거리까지 걸어오자 거의 만 보가 되었다.


걸으며 최근 프로젝트나 현재의 고민 등을 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무용을 하다가 기획을 하게 된

와이씨의 선택에 대해 어떤 연유인지

요새 어떻게 활동하는지 들으려고 했는데

친하다 보니 소재가 널뛰기 뛰듯

뛰어서

결국 우리의 마무리는 바나나가 되었다.


갑자기 와이씨가

바나나 우유 광고를 봤느냐 했고

나는 마침 어젯밤 집에 들어가던 길

저멀리 버스 광고판에서

씻고 바유를 보고 저게 뭐야?! 하고

경악했던 기억을 말했다.

주지훈이었다.

코로나 19에 어울리는 카피인데

멀리서 본 광고는 매우 컬트적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웃겼다.

우리는 슈퍼에서 네 개짜리

바나나우유를 사서

두 개를 마시고

두 개는 내가 가져왔다.

와이씨가 선물로 준 것.

그리고 우리집 앞 카페에서 사서 맛있게 먹은 쿠키를

기억해, 성수아트홀 로비카페에서 샀다는

흑임자 쿠키를

와이씨가 내게 선물로 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자전거를 타고 바나나 우유와 쿠키를 곱게

들고 가면서 문득

불쑥 집 앞에 찾아와 바나나 우유를

주기적으로 사 주던 친구가 생각이 났다.

내가 무슨 바나나우유 피실험자냐.

그러면서도 저절로 결국 습관이 되어

바나나우유를 보면

자동반사적으로 그 사람 생각이 난다.

오늘의 산책은 결국 바나나 케이크로 시작해

바나나 우유로 끝나고 말았다.


슈퍼에서 들은 노래도,

바나나우유 씨엠인 줄 알고

광고가 나온다 했는데,

그게 아니라

뭐뭐 하나봐 하나봐 해봐

그런 '보아'라는 어미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가사였다.

결국

오늘 테마는

땡땡땡 해보아~ 해봐~ 유.

다음 주에는 다시 빽다방부터 시작해'바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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