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제들

신념을 지키는 길

by 레아

"가는 길이 사악하다."

구마의식을 마친 김신부가 최부(사)제에게 건넨 말이다.

뮤지컬 <검은 사제들>을 보는데,

이 대사에, 뭉클했다.


작품은 동명의 영화를 뮤지컬화한 것으로

노령의 악귀가 달라붙은 영신이를 구하고,

대참사를 일으킬 기운을 없애고자,

김신부와 최부제가 주변 역경과 자기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퇴마를 감행하는 이야기다.

엑소시즘 소재는 잘 들여다보지 않는 개인 습관 탓에

넘길 뻔 했는데, 지인인 영상감독의 추천으로 보게 됐다.

그로테스크하거나 무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인간애 위주로 작품이 나와

인물들이 전하는 '인간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는 인류애에 감흥 받아 볼 수 있었다.

특히 악귀를 쫓는 의식을 마무리하고

그 영혼이 깃든 돼지(돼지 뭔 죄야, 불쌍해)를 한강에 수장해야 해서

최부제가 밖으로 나갈 때,

가는 길이 사악하다, 고 염려와 당부를 보내는

그 대사가 참 마음에 들었다.

영화를 아직 안 봐서 그 안에도 나오는 대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작품의 전체 메시지를 축약하는

한 문장으로 다가왔다.

비단 퇴마만이 아닐 것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달성하고자

하는 어떤 지점에 도달하거나, 혹은 남이 뭐라 하

자신의 신념(억지가 아닌 어떤 양심적인 면)을

지키는 게 쉽지 않다. 그 안에선 온갖

오르막길이 펼쳐지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지켜내야 하는 것.

그 대상이 좋아하는 물질이나 사람,

무형의 가치관일 수도 있.

지키기 위해선 과감히 맞서야 하는 것들.

극 중 인물에게는, 신부로서 느끼는 악의 뿌리,

어릴 적 겁이 많아 동생을 지키지 못한 죄의식,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또 관객인 내 쪽으로

토스되면 극복하지 못한, 혹은

지금도 여전히 해결하고자 발버둥 치는

심적 결핍과 갈증일 수도 있다.

작품은 그런 집념과 번뇌를 끝까지 해결해가는 사투를 다루었고,

그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이미 어려울 것임을 알고 있기에,

"사악하다"는 여운으로,

알지만 가야만 하는, 해결해야만 하는

미션을 주는 말이, 애정어린 덕담처럼 느껴졌다.

"가는 길이 사악하다"

그러함에도 당신은 해내야 하고, 해낼 수 있다고.

그렇게 들렸다.

정말 주체가 타인을 믿어주는, 포기하지 않는

강한 믿음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그러고나서 신부가 울음을 터트릴 때도

극중 인물이 너무 안쓰럽게 보였다.


두 신부가 서로 만나고 일을 거행하고

영신이를 구하고 그 과정의 면면들에서

의심하고 믿는 과정들이 연달아 등장하는데,

가장 재미있던 장면이라면

악귀를 쫓고자 신부님이 양 옆에 서 있고

가운데 박수무당들이 나와 굿을 하는 장면이다.

마치 옛날 소설 30년대 김동리의

'무녀도'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는데,

아들은 화가 출신의 목사, 어머니는 무녀.

그 둘의 갈등과 굿판 장면이 소설에선 대립이라면

김신부와 무당은 서로 몸조심하라며

걱정할 만큼, 듀엣같은 존재로 나온다.

무당이 신부에게 몸에 악귀가 너무 많이 붙어 있단

식으로 걱정하자, 우리 일 하는 사람이 다 그렇지,

하며 심드렁하게 말하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멋있는 장면이라면. 최부제가 램프라고 해야 하나,

아마도 의식에 쓰이니 이름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램프 안에서 포그가 가득 나오는 가운데,

라틴어 기도문을 외우며

그가 무대로 천천히 등장해 노래를 부를 때였고,

나는 이 시점에서 내가 참여했던 연극에서

댄서들이 사제복을 입고 춤추던 연습 장면과

등장신이 같이 떠올라 더 애정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제복의 경건함이 배우의 포즈와 만나

한결 어둔 무대에서 근사해보일 수밖에 없기도 하고.

목소리 좋은 배우(김경수)의 낭랑한 톤이

우아하고도 시적으로 다가왔다.


(앰비규어스컴퍼니의 춤이 대중적으로 뜨면서,

여러 군데서 패러디를 했는데,

성당에서 제작한 시민영상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것도 사제복 효과가 플러스된 듯도 했다.

https://youtu.be/mZvnJfcriO4

범 내려온다 춤 패러디 양천성당 편

게다가 베테랑 신부와 초짜 신부가

둘 다 약간 '꼰대'스럽다고 인정할 정도로

영 딱딱한 성격으로 초지일관 하는 모습에,

그 캐릭터도 웃겼다. 평소 안 웃기던 사람이

은근스레 웃겨서 뭔가 좀 더 요상하게 웃긴

느낌? 신부라는 직업적 특성 탓에

그렇게 형성된 건지, 영화 속 캐릭터도 궁금해졌다.


어릴 적 성당을 다녔던 나는

외국인 신부님과 수녀님을 보며 자랐다.

우리 성당은 처음 생길 때 멕시코에서 지원을 받은 곳이라,

매번 외국 사제님들이나 수녀님들이 발령을 받아 오셨고,

새로 부임하실 때면 꽃다발도 드리고

반겨드리며 성당 분위기가 들썩였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처음으로 한국인 신부님을

보게 되거나 평화방송에서 신신우(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라디오 등을 듣게 되면서

말투도 수더분하고 뭔가 능청스러운 분들을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어린이일 때 나는, 천주교 신부는 다 외국인인 줄 착각했다.

사투리 구사하고 허허 거리는 분위기 한국 신부님을

접했을 때 충격이란!

검은 사제들의 등장 신부들을 보면서,

바로 그때의 인상들이 떠올랐다.

레이저 총쇼를 하거나, 수사님들이 공부 대충 하거나,

그런 자잘하니 희화화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조금 웃겼다.

예전에 대학시절 학원 알바를 할 때

내가 가르치던 아이 중, 부모님이 신부님을

시키려고 신학대를 준비하던 학생이 있었다.

감수성도 세고 아는 것도 엄청 많고

가슴에 담아둔 열기가 강한 친구였는데,

이 아이가 사제가 되면 어떻게 참고 살까,

혼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검은 사제들을 보고 있자니,

신부님들도 결국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다(?)

느끼며, 단지 인간을 믿는 신임의 세계가

남다르겠구나 생각했다.

요즈음 '악 vs 더한 악'?의 대립으로만

설정된 작품들이 우위인데,

오랜만에 '선 vs 악'의 대립을 풀어가는 작을 보니

도리어 신선하기도 했다. 작품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종교인만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이들도

'가는 길은 사악'하나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포스트코로나에도)

그런 마음의 시간들이면 좋겠단 생각이,

무대 인물들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쯤 들었다.

https://youtu.be/KR4TXRKVnwE

뮤지컬 검은 사제들 코멘터리 영상 _ 네이버 라이브 티브이







P.S 코로나 방역으로 엘리베이터 운행이 정지되면서

지하 4층 , 3층 무대부터 지상 1층까지

관객들이 오르내리며 관람했는데

야트막한 언덕을 넘는 듯 길게 올라가는 모습이

넘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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