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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May 11. 2021

체세나

로사스

새벽 4시 30분에 시작했던 공연을 

저녁 7시 20분에 영상으로 보았다. 

2021년 5월 2일 일요일 19시 20분.

'로사스 무용단'의 <체세나>.

2011년 '아비뇽 페스티벌' 공연 축제 

교황청 명예의 뜰에서 라이브되었던 실황 무용을,

엘지아트센터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선보였던 작으로 접했다.

사전 정보 없이 극장에 들어섰고,

무용이 시작되며 끝나는 순간까지,

그곳에서 벗어나기 싫을 정도

일종의 경건함과 평온함을 동시에 느꼈는데,

같이 본 이는 "무용으로 예배(미사)드린 것 같다"

는 표현을 썼다.

무용을 보면서도, 다른 장르나 의식과 비슷한

기분에 잠길 때가 있는데,

친구의 표현에 적극 공감했다.


체세나는 14세기 말 이탈리아 체세나에서 벌어진 대학살을 뜻했고, 안무자는 당시 배경과 연결된 10곡을 골라

춤으로 해석한다.

'서방 교회의 대분열'에 관련한 성악곡들이 배경이 되었고

자막으로 노래의 글귀나 해설이 잠언처럼 깔린다.

실제로 춤을 추는 이들 중 일부가 계속 노래를 한다.

중세 시대 다성음악 아르스 숩틸리오르.

14세기 프랑스 아비뇽, 파리, 스페인 북부를 중심으로

나타난 기교적 장르라고 한다.

성부 간 다른 박자, 변박, 불협화음 등이 특징이라고.

그곡들을 흐름으로 성악가와 댄서들이 한데 춤을 춘다.

목이 굵고 조금 덩치가 더 있는 이들이

성악가 같았지만 사실 구별은 무의미해 보였다.

움직임과 목소리가 어우러져

어떤 것이 춤이고 노래인지 분간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소리무용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무용수들이 모두 성악가처럼

소리를 내는 줄 알았다. 19명 중 13명이 댄서였다.

나머지 6명이 성악가. 함께 소리를 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우리 나라의 전통 공연을 좀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관람 내내 들기도 했다.

중세나 근세의 고려, 조선의 특정 사건들이나

의식을 다루는 음악과 움직임. 그런 데도 마음이 쏠렸다.

최근에 본 5.18 관련작들도 떠오르고, 그랬다. )


어두컴컴한 새벽녘 무용수들이

특정 시간 대의 사건과 음악을 해석해

저마다 춤을 추는 장면의 감흥은 깊고 경건하게 다가왔다.

특히 내가 좋았던 것은 성악 외에도

무용수들에게서 나는 소리,

운동화가 바닥에 부딪히고 미끄러져 나는 음이었다.

제의에 참여하듯 검은 옷들을 입고 새벽녘

춤을 추기 시작했으나,

운동화는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 등

밝은 톤들이 가득했고, 그 운동화가 바닥에 끌려 나갈 때마다 나는 소리가, 역사라는 거대한 물길 위에

개인의 번뇌나 힘을 느끼게 해줬다.

사실 어떤 의미를 다 떠나서

새벽녘 운동화 소리의 리드미컬한 흐름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면면이 춤이 좋았던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뒤따라 오는 다른 소리마저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과거 농구장 코트 소리, 농구화와 공이 바닥에 튕겨

나는 달각거리는 음도 음악에 섞일 때

좋아했는데, 그때 기억도 겹쳐났다.

이 작품을 나 역시 같은 새벽 4시 30분에 보았으면

어땠을까.

새벽이라는 시간을 유난히 편애하기에,

그때 무용수들의 음악과 움직임을 보았다면,

좀 더 특별한 감각을 경험했으리라 싶었고,

관람 후

친구에게 새벽녘 보았던 다른 공연, 미래극장에

대해 조금 떠들었다. 한 장면도 놓치기 싫을 만큼

집중하게 만드는 새벽의 힘.

나는 소리에 감흥했고 친구는 빛에 더 감흥한 듯했다.

나 역시 공연을 보기 전 극장 로비에서 석양을 보았고

그 강렬함이 극장 내로 이어지기도 했다.

돌아가는 길

이천년 대 중반 줄곧 듣던 마이앤트 메리의 모던록

4시 20분이 듣고 싶어졌다.

분침과 시침이 겹치듯 표현했다는 가요.

4시 30분에 시작해 동 틀 무렵의

조금씩 깨어가는 빛과 공간, 춤을 보여줬던

로사스 작품을 본 여운을, 공연 시각을 기억해 놓고 싶었다.


https://youtu.be/xjCFD4y4l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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