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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May 12. 2021

모처럼

나가 보았네

<침몰하는 배에서 함께 추는 춤>이란 작품을 감상한 적이 있다. 지난 달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선보인, 정희승 작가의 작품이었다. 홈페이지 소개에서 제목에 강렬히 이끌리어

그 작품을 보기 위해 찾아갔다. 전시장 들어서자마자 사진들을 볼 수 있었고 몇 걸음 걸어서 한 블록 정도 지났을 때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문장들을 무작의로 읽을 수 있는, 엽서를 발견했다.

센스 있는 위치에 정겨운 문장들.

글자들을 좋아하다 보니, 사실 그 엽서들을 뽑는 데 재미 들려 이 엽서, 저 엽서 코멘트를 읽었는데 사진과 매칭된 문장이었고, 마치 퀴즈 맞히듯 아, 저 사진 관계자가 한 말이구나, 떠올리며 물끄러미 사진을 들여다 보곤 했다. 대부분 작가적 자의식이 강한 이들이었고, 작업에 대한 코멘터리였다.

"말을 많이 너무 계속"하다 보면

"왠지 언어가 실패하고"

"다른 국면" 접어든 심정이라거나,

"밀고 당기면서 미니멀해지다가

이제는 없어지는 지경"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고,

후자의 말은 물리적 근육, 마음의 근육에도

비유적인 문장으로 느껴져 오래 남기도 했다.

(그래서 그 문장을 들고 갔다.

미술관 1인당 한 장 허용. 미안요. 2장 챙겼어요. ㅜ)

"미니멀해지다가 없어지는 지경"을 읽고 돌아서는데,

발견한 근육 운동 줄 당기는 사진도,

시지프스 신화처럼 계속 반복하며 버티지만

굴러가야 하는 삶처럼 다가왔다.

여러 타인들의 작업적 고민이나 번뇌가 드러나는

글자들, 사진들을 보며 보이지 않는 이들과

침몰하는 배 위에서 춤을 추었다.

제목에 끌리어 제목대로 심경이 쫓아갔다.

전시장에선 내내 음악이 흘렀는데,

우리가 어릴 적 한글을 익힐 때 배우는

리리리자로 끝나는 말은, 그 노래가

영어로 선우정아의 음색으로 반복되었다.

목소리 자체가 워낙 몽환적이라,

주문을 외우는 듯한 노래였고,

동요를 주술문처럼 읊조리는,

그 경계와 간극이 멋었다.


요사이 선우정아의 '모처럼'을 내내 듣다 보니

미술관 전시가 같이 떠올랐다.

월간 윤종신 4월 호에서

하림 윤종신 곡을 선우정아가 편곡해 불렀는데,

완전히 다른 노래가 되었다.

춤처럼 흘러가던 문장과 사진 사이에서,

동요 기억의 곡을 알 수 없으나 알아 가고 싶은,

타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배경이 되었던 목소리를,

너무나 좋아하던 곡의 배경으로 가까이 또 내내

듣다 보니, 함몰이었던 배가 다시 떠가는 배로

느껴질 정도이다.

특히 모처럼은 윤종신 곡들 중에서도

산책자라면 좋아하지 않고는 못배길,

걸음을 부추기는 노래인데,

윤종신과 선우정아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원곡은 정말이지, 예전 사랑했던 사람과 거닐던

장소로 추억처럼 데려가는데,

새곡은 내가 알지 못했던, 그러나 어딘가

알지도 모르는 모호한 길로 이끄는 듯하다.

원곡이 과거 버전이라면 새곡이 미래 버전.

이 곡을 듣는 리스너들이 현재! 

시간이 섞이는 곡이다.

선우정아의 목소리를 들으면

모처럼 나가보았네, 라는 과거 시점이

나가볼 거야,

언제나 똑같은 거리,도 언젠가 달라질 거리처럼

느껴진다.

잊기 위해 피해다닌 골목골목 그 낯익은 가게들,도

알기 위해 찾아나선 골목골목 그 낯선 가게들,로

모든 구절을 미래의 시점으로 보내고 싶어진다.

그냥 그 가사 그대로 과거 시점도 물론 좋은데,

내 기분대로 어느 먼 훗날, 언젠가로

노래를 보내버리게도 된다.

시간의 흐름을 흐트리고 그 시간 속에서

공간을 홀려 버리는 이국적인 목소리다.

선우정아의 모처럼.

어딘가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은,

그래서 몰랐던 이들의 마음까지 여미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침몰하는 배를 함께 올리 추는 춤처럼.)

https://youtu.be/WlXi9iY2g1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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