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아프레스 May 19. 2021

뜬금 라이브

한남동에서, 거울보다 낯선.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물리적으로 멀지만 정서적으로 가까운 이를

무척이나 걱정했다. 나의 스타 윤종신.

그럼에도 그가 주기적으로 유튜브에 올려주던

<뜬금 LIVE>를 애청하면서 이국적인 풍광과,

그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가수의 목소리에

이방인 프로젝트에 끼어든 전 세계적 재난 상황도

결국 전화위복이 되는구나 생각했다.

촬영이 어려워 멈추나 했는데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길을 열었고, 한적한 거리거리가

, 가보지 않았지만 언젠가 가본 듯도 하고

가보고 싶은 배경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음악들은 특히 침잠 사색 스타일이 짙어서,

혼자 듣곤 할 땐 더 유난히 위로가 되곤 했다.

바깥에서 라이브를 하고, 그 주변 공기음까지

모두 채집해 넣은 뜬금 라이브의 뮤직비디오.

업로드 된 작마다 좋아하긴 했는데,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게

누군가 금 없이

등장하는 <지친 하루>편이다.


<지친 하루>와 <오르막길>이 같은 장소에서 촬영돼서,

뜬금 라이브를 아직 안 본 이라면,

오르막길을 먼저 보고

지친 하루를 보라고 하고 싶다.

그러면 진중한 음성과 애수 어린 풍경에 잠기었다가

돌연 어느 출연진에 그 감동이 증폭된다.


https://youtu.be/01uExvLXd38

<오르막길> 월간 윤종신 이방인 프로젝트 뜬금라이브 버전

https://youtu.be/T5xB3jV7SHE

<지친 하루> 월간 윤종신 이방인 프로젝트 뜬금라이브 버전



우선, 오르막길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연가로

윤종신 부부의 사랑에서 출발했으나,

이 오르막길이란 게 리스너들에게 자기 삶의 어떤 부분들이

되고 나니, 사랑, 인생 같은 큼지막한 것뿐 아니라

지금 당장 해내야 하는 마감 있는 프로젝트라든가,

근성 같은 마음가짐 등 여러가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노래에선 '그대'에게 이제 가게 될 오르막길 앞에서의

심경을 애정있고 진중하게 들려주는데 그 그대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 님처럼

여러 존재가 돼버린다.

마치 연인이든 종교이든 국가이든.


오르막길 그대는 내가 택한 직업, 사람, 공간 등

다양해진다.

그래서일까. 누구에게라도 의지와 위로가 되는

음악으로, 지난해는 공익광고 BGM으로

정인과 코로나 의료 관계자들이 부르는 노래로 나왔다.

그때 그대는 코로나를 이겨내야 하는 '국민', '인류'

거창하지만 그렇게도 흘러갔다. (그러고 보니

정말 한용운이네.)

뜬금 라이브에선 모닥불, 새 소리가

조정치 기타에 섞이고

윤종신이 너무 편해 보이는 의상을 입고 단화를

헤드폰을 쓴 채 노래를 부른다.


다음으로 <지친 하루>

젊은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생활밀착형 노래,

본 뮤비도 좋지만 곡을 열창하는

그 이방인 이브가 좀 더 애착이 간다.

뜬금 라이브에선 그야말로 호기심 많아 뵈는 소녀가

불쑥 등장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닥불 가,

이후로는 나무를 질질 끌고 다니며

촬영지 주변을 크게 돌아 사라진다.

이 소녀는 누구지,

처음 보았을 , 별안간 이쁜 등장 깜짝 놀랐다.

보자마자 정말 다 했다, 네가 다 했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뮤비 분위기를 명랑하게 해주었다.

노래 내용이 사실 엄숙하고

마이웨이를 읊조리는데,

거기에 통통 튀는 이가 등장하니,

그 어울림이 너무 좋고 마지막에

노래 때문인지 소녀 때문인지 웃는 윤종신 미소가 더욱 좋고,

잘했어, 잘했어, 완벽한 배운데, 라는

윤종신 마지막 말에 지극히 공감하게 된다.


최근에 한남동 갤러리에 갔다가

그림을 보고 있는데, 문득 지친하루

그 소녀가 떠올랐다.

전시장 안에 등장한 어느 인물 탓이다.

어떤 분이 살포시 설레는 인상으로

다소곳이 그러나 뭔가 되게 에너제틱한

표정으로 그림 부근에 나타났다.

관람객이 아니라 관계자 같아 보였으나,

사무직 직원도 아닌 듯했다.

심지어 작품과 비슷한 색감의 옷을

걸치고 있어 그가 작가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림은 푸른색, 분홍색, 노란색 등의

선명한 색

어우러져 신화 인물마냥 다른 세계의 존재를

드러냈고, 그들은 풍선을 불고 있거나

말을 타고 있거나, 어떤 소품들을 갖고 있었다.

갤러리 허락 하에 사진 촬영. 디스위켄드룸 지하1층.

그림 사이에 뜬금없이 나타난 낯선 분,

미지의 그림을 직접 그린 작가다.

'거울보다 낯선'이란 2인 전시에서

한 부분을 맡은 박신영 작가였다.

작가가 해외 레지던시에 가서

감각을 깨우는 워크숍에 참여한 후

완성한 작과 다른 작품들을 선보인 것.

작가에게 언제 작업한 것인지

문의하자, 작품에 관한 얘기를 스스럼 없이 들려주었다.

캐나다에서 밤 숲에 가서 본 동물을 그리거나,

스코틀랜드에서 본 어떤 이에게 영감을 받아

이후 생각난 것들을 그리는 등

시간과 순서는 조금씩 다르게 중첩되어

작품화 되었다. 작가 인상에 길게 남아 작품

만나게 된 과정이

나는 꿈과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언제 꿀지, 어떻게 꿀지 모르는 어떤 것들이

불쑥 나타났지만,

나중에는 심지어 이유가 될 만한 것들.

기억에서 조립이 가능한 세계. 꿈이다.

작가는 작품 제작 과정도 들려주었고,

초기 작품을, 핸드폰에 담겨 있던 판화를 보여줬다.

특히 예전 베이직한 판화가 현재에 이르러

매우 복잡다단하지만 그 안에 초기 느낌이 묻어 있어,

그 애초의 판화도 보고 싶어졌다.

정갈한 기본 리듬이 재즈로 변해가는 듯한 인상을 얻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폰 안에 담긴 작은 서울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하여, 언젠가 그곳에 가서도 봐야지 생각했다.

그림의 색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다,

절에 들어갈 때 지장보살이나 관세음보살 같은

그런 색이 첫인상으로 다가왔다고 얘기하자,

작가는 웃으며 "실은 불교 신자예요"라며 웃었다.

작품은 작가의 이국 생활 작업물이라

본인 종교 정체성과 거리가 좀 있을 수도 있는데,

관람객의 느낌에 무안하지 않게

호응 아닌 호응을 하며 작품 얘기를 나눠주어

그 시간이 즐고 유쾌해졌다.

전시장을 방문한 날이 마침 오프닝이 있는

날이었고, 코로나로 어떤 행사보다 작가가

직접 그 장소에 있는 듯했다.

예상하지도 못하게 작가의 코멘터리를 들으며

전시를  보는 행운을 누렸고,

다시 들여다 보니 좀 더 달리 보이고

작품과 나의 거리도 더 가까워진 듯한 기분에

잠겼다.

다음 다른 장소에도 박신영 작가 작품 전시가

있으면

보러 가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감각을 깨우는 그 새벽녘 동물과 숲의

그림이 여운에 남았다.

가보지 않았으나 역시 가보고 싶어지는 곳.

장소가 한남동이어서였을까.

(한남동 월간윤종신)

이국적 판화를 보고 나와 이방인 프로젝트가

연달아 떠올랐고,

친절한 작가가 <지친 하루>의 소녀 같다고 생각했다.


한남동 육교에서 대사관 많은 길로

몇 걸음 안 가서

초입이랄 수 있는, 골목 앞 쪽에 있던 깔끔한 공간

디스위켄드룸. 전시 제목처럼

낯선 풍경으로 데려갔는데,

또 한편으론 그렇게 많이 낯설지 않은 건

유난히 이국, 이방 이런 데 쏠리는 내 성격 탓인 듯도 했다.

그리고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도. 작가의 환대에

나의 거울도 들여다 보고 ,

친구와 그림 얘길 하며

이태원까지 좀 걸었다.


5월 29일까지 전시.


P.S. 곽상원 작가는 어두운 내면과 그 안에서 숨구멍을 찾아 올라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고독한 산책자들을 많이 그렸고, 나는 그 그림들에서도 감흥을 받았다. 한남동 조용한 골목을 들어서다 누군가 걷고 있는 그림을 발견한다면 문을 열고 들어가

들여다 보자. 그 작가의 고독한 여정이 골목을 반긴다.

전시장 주소 한남동 789-9

http://thisweekendroom.com/wp/portfolio-item/far-in-my-mirror/

갤러리 홈페이지 작품 관련 글





곽상원 작가의 그림
매거진의 이전글 여기까지 가져온 노래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