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 행복을 연습한 기록

프로는 고의사구도 던진다

by 리아

여러분 2025년이 밝았습니다. 이번 글의 주제는 제가 직장인이 되고 가장 많이 고민하고, 한동안 제 인생의 주제였던 것에 대한 글을 써봤습니다. 아직 불안함에서 살아남은 건 아니고, 살아남으려 해 보는 과정입니다. 나의 나약함을 공유하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뭐 그래도 저도 좀 나아지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누군가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으니, 제 시행착오의 기록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해봅니다.




쉴 때마다 불안했던 기억


나는 졸업한 다음날 아침 입사를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쉬는 동안 뭘 할지 몰랐기 때문이고, 그 시간이 불안으로 채워질걸 알았기 때문이다. 미국 테크 업계는 (특히 호황이었을 때는) 졸업하기 전에 직장을 이미 구하고 졸업하고 몇 달간 쉬고 입사하는 게 통상적이다. 현 회사도 리쿠르터가 "졸업하고 좀 쉬고 입사할 거지? 6월이나 8월 중 언제 입사할래?"라고 했을 때 "5월도 되나요"라고 물어본 게 나였다. 회사 사람들이 "너 언제 졸업했니"라고 물어볼 때 "어제ㅎ"라고 대답할떄마다 사람들이 나를 보던 눈빛이 생각난다.


취직을 하고 나서 나는 쉬는 시간이 불안해졌다. 다행히도 우리 회사는 워라밸이 좋은데, 그래서 5시쯤 퇴근하고, 또 회사 앞에 살기 때문에 집에 도착하면 늦어도 5시 10분이 된다. 자 이제부터 잘 때까지 뭐 하지. 주말엔 뭐 하지. 처음에 취직을 하고 나서는 계속 포트폴리오를 고쳤다. 뭐 이직할 것도 아닌데 그냥 항상 달리다 보니 달리지 않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다음 목표도 없는데 말이다. 요즘도 나는 드라마를 볼 때 늘 다른 걸 한다 정리를 한다던지 빨래를 갠다던지 다른 일처리를 한다던지. 드라마만 보고 앉아있는 시간이 낭비 같은 느낌이 들어서, 효율도 떨어지는 멀티태스킹을 강제로 한다. 그러면 뭔가 해낸듯한 느낌이 뿌듯하기까지도 하다. 하지만 아주 '갓생적으로' 지낸 소수의 주말이 아니면, 분명 주말 이틀 내내 공부를 하면서 지냈는데도 이룬 거 하나 없는듯한 죄책감이 괴로웠다. 학부 때는 이게 더 심했던 것 같아서 사람도 자주 못 만났다. 나는 지금 빨리 취준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야 하는데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지? 나를 위해 열심히 살려고 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 무서웠기 때문에 뭐라고 찾아가며 했다. 나를 잡아먹는 불안이 너무 커서 이 불안은 밖으로도 새어나갔다. 불안은 전염되어 나와 함께 있는 친구들도 나와 함께 불안을 느꼈다. "너와 있으면 불안해져"라는 말을 학우로부터 들어본 적도 있지만, 내가 나만 보고 있었기에 남의 입장조차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학부 때는 이게 문제라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사실 자각했지만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이건 사실 나를 잘되게 만들어주는 장점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나를 더 몰아붙였다.

download.jpg 인사이드아웃 2 보고 오열했다. 인생영화 등극


프로는 고의사구도 던진다


우리 엄마가 해준 명언이다. 머리가 띵해지지 않는가. 그래서 띵언인가 보다. 우리 엄마는 과거에 무적 엘지 팬이었고, 나는 SSG 팬이기에, 종종 야구를 통한 비유로 얘기를 한다. 솔직히 야구 몰랐을 때 사람들이 야구로 비유를 하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야구를 아니까 이제 야구 비유를 들면 너무 재밌다. 요즘 한국 야구가 최고 인기라는데, 여러분 야구 보세요. 정말 즐거워요. 미국 와서 가장 아쉬운 건 KBO 야구 직관 가서 응원가를 못 부른다는 것...


a4cf25cf091c7046ee8bf1a5adeaa9c9.jpg 문상훈의 빡사분면


돌아와서, 항상 모든 공이 강속구일 수는 없다. 내가 설령 150km의 공을 던질 줄 아는 뭐 신인왕이라도, 매일 150km의 공만 던지면 내 프로 인생이 일찍 끝나거나 토미존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피해 갈 줄 아는 것도 전략이다. 항상 강속구로 모든 타자와 승부를 볼순 없다. 4번 타자는 고의사구를 내주고 5번 타자에게 병살을 잡을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이 말을 통해 나는 나의 고의사구는 뭘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20230128132317894zybh.gif 궁내 체고 싱카볼 투수 증대현의 병살플레이를 보시고 가시라. 고의사구랑은 별 상관없는 짤



불안함이 나를 도왔을 때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점점 많아졌다.


언젠가 불안이라는 감정이 나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느꼈다. 학교 다닐 때 내 디자인의 크리틱을 위해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시간분배를 잘못해서 다른 작품에 피땀눈물을 쏟아버린 바람에, 다른 수업 파이널 크리틱 준비를 하지 못해 하루 전날 작업을 시작했다. 새벽에 준비하면서 작업하는 내내 울었다. 울면서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며 비웃고 교수님에게 욕먹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학교 가는 길에도 울었다. 그때 며칠 밤을 새워서 학교 가는 길이 몽롱한데도, 그날 추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어라? 너무 잘됐다. 학생 중 하나는 오늘 본 작품 중에 제일 잘한 것 같다고 칭찬도 해줬다. 교수님도 열심히 준비한 게 보인다고 했다. 뭐 내가 잘나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약간 운이 좋았음.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그간 불안함이라는 고효율 배터리를 달고 날아가고 있었는데, 어느새 이게 내 추진력을 방해하는구나.


회사 입사한 지 한 3개월쯤 되었을 때, 회사 중요 프로젝트에 참여할 10명의 디자이너중 한 명으로 차출된 적이 있었다. 그 방에는 10년 이상 근무를 한, 여기저기 이름만 들어도 입 벌어지는 백그라운드를 가진 슈퍼스타들과 뭐 조금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뽑혀 어리둥절한 내가 있었다. (회사 돈 내고 다녀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프로젝트를 잘 해냈지만, 그때 사람들로부터 받는 칭찬이 어색했다. 매우 좋았다가도, 아 이제 사람들이 나에 대한 기준치가 높았으니까 다음 프로젝트는 더 잘 해내야 할 거야라는 심리적 압박감이 훨씬 커졌고, 오히려 와 이번에는 나 정말 실패할 거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점점 사람들의 칭찬을 못 믿어서 스스로를 입증하려는 듯 들었던 말을 자꾸 되뇌며, 내 가치를 밖에서 찾으려 애썼다. 매니저가 "네가 이미 이루고 배운 건 어디 가지 않아"라는 위로와 "나는 이런 실패를 해봤는데도 괜찮았어"라는 위로들이 마음에 살짝 위로가 되었지만, 내 불안의 뿌리는 뽑지 못했다.


"칭찬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해요"라는 멍청한 질문을 회사 높은 사람과 커리어 관련 상담을 할 기회가 있었을 때 물었었다. 그 사람은 커리어 관련 멘토링을 오랫동안 지속한 디자이너였는데, 그 사람이 다행히 나에게 "아냐 바보 같은 질문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그런 걱정을 해"라는 말을 하며 여러 답변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내 질문은 칭찬에 어떻게 반응해요가 아닌, "내가 다른 사람의 칭찬을 마음으로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가 맞았다. 왜냐면 내 마음은 그 칭찬에 동의하지 못하니까. 아니, 동의하면 발전하지 못할까 봐 두려우니까.



불안함에서 살아남기


무튼 직장인이 되고 다행히도 스스로를 위해 보낼 시간이 많았고, 불행히도 불안해할 시간이 더 늘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난 아무것도 이루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나의 기준은 점점 더 엄격해져 갔다. 아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라는 마음에 떼라피도 해보고, 관련 책도 유튭도 정말 많이 읽었다. 그래서 배운 도움이 되었던 팁들을 소개한다.


Screenshot 2025-01-03 at 1.14.19 AM.png 김경일 교수님의 유튭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 불안에게 감사하자. 인간은 불안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안은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불안은 나와 공존하는 것이다. 불안을 없애려고 할수록 그 마음은 더 자라날 것이다. 다만, 불안한 마음이 들 땐 내가 왜 이 불안한 마음이 드는지 불안을 들여다보자. "나를 어떻게 도와주려고 불안한 마음이 들까?" "이 불안은 지금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만약 이 불안이 과거의 부족했던 나로 인해 생겨났다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 지금의 나는 훨씬 많이 배웠고, 더 성장했고, 더 경험이 있다. 더 많은 걸 이겨낸 경험이 있다.


✅ 내가 보는 내 눈앞의 삶이 전부가 아니다. 다른 삶의 중요한 의미는 많다.

김은주 은사 (Google UX lead) 님이 강연중 말씀해 주셨던 일화인데, 구글에서 UX lead로 재직하고 있었을 때 팀원들에게 구조조정을 통보한 날, 한국에서 꾸준히 기부하고 있었던 봉사 시설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기부금액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어떻게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는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회사가 내 전부 같지만, 세상은 매우 넓다. 눈앞에 것의 매몰되지 말자. 내 눈앞 불안이 아닌. 인생의 중요한 의미는 많다. 내 떼라피스 트는 나에게 인생에 있어 중요했던 순간의 추억이 담긴 제품을 가지고 다녀보는 게 어떨까 물어봤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가족과 여행 갔던 바르셀로나에서 산 기념품을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불안해지면 생각한다. 아 이렇게 행복했던 다른 순간의 내가 있다.


✅ 불안을 작게 쪼개고 쉬운 것부터 끝내기.

학생일 때 집에 돌아오는 셔틀버스 안에서 옆에 앉은 중국인 친구에게 하소였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 가면 할게 산더미만큼 있어서 너무 무섭다고. 근데 항상 그 무표정으로 내게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 친구가 나에게 그거 커 보여도 조각조각 나누면 할만할 거야.라고 말한 게 생각이 난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땐 보통 나는 할 게 너어어어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하다. 이럴 땐 해야 하는 걸 다 적고, 기본적으로는 중요도대로 처리하되, 쉽고 일찍 끝낼 수 있는걸 먼저 처리하여 뇌와 마음속 공간을 늘리려고 해 봤다. 작은 승리부터 해치우면 에너지가 생긴다.


✅ 작은 성장도 기쁨을 줄 수 있는 초보자의 취미를 가지자.

심리학자 김경일 님의 유튜브강연을 보며 배운 것이다. 일했던 자세와 다른 자세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취미. 하루가 기대되고 나를 진심으로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는 취미를 찾자. 올해는 참 다양한 걸 시도했는데, 예를 들면 러닝, 클라이밍, 그림 그리기, 바둑두기 등등 여러 취미를 시작했다. 초보자로 돌아가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롭고 작은 성장도 기쁨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취미가 필요하다.


✅ 불안할 때 자기를 너무 들여다보지 말자. 맑은 날 잠깐 들여다 보라!

너어어무 이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는 것.


✅ 가장 중요한 것. 삶의 목표는 동사여야 하고. 이룰 수 없는 광활한 것이어야 한다.

'취업을 할 거야'는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 그것을 이룬 순간 며칠은 기쁘지만, 그 뒤로 그건 일상이 되어버린다.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다 보니 그 목표를 이뤘을 때 행복이 따라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목표와 별개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별개이다. "대학만 가면" "취업만 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가정을 했지만, 그것을 이룬다고 해도 즐거움은 잠깐이고 금방 익숙함에 젖어서, 목표를 이뤘는데도 새로운 문제들과 기존에 있던 문제들이 고스란히 남겨진 걸 보며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이 될 때도 있다. 그래서 행복은 늘 노력해야 한다. 과정이 행복해야 한다. 그러기엔 쉼이 필요하다. 내가 있어야 성장도 있다. 그리고 난 어차피 열심히 하니까 즐겁게 열심히 하면 된다.


Screenshot 2025-01-03 at 1.16.55 AM.png
Screenshot 2025-01-03 at 1.17.13 AM.png
Screenshot 2025-01-03 at 1.17.31 AM.png
Screenshot 2025-01-03 at 1.17.44 AM.png
Screenshot 2025-01-03 at 1.18.02 AM.png
Screenshot 2025-01-03 at 1.18.18 AM.png
Screenshot 2025-01-03 at 1.18.31 AM.png
Screenshot 2025-01-03 at 1.19.13 AM.png
Screenshot 2025-01-03 at 1.18.49 AM.png
Screenshot 2025-01-03 at 1.19.23 AM.png

정승제 선생님의 "지금 행복하신가요?" 영상도 추천한다. 수상하게도 수능 강사 영상 보는 걸 좋아하는 직장인. (구독 중인 채널: 미미미누). 캡처를 잘 못해서 죄송해요 선생님




이런 생각이 드니 이게 내 인생의 2막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디자이너 소셜 이벤트 참석 후기 (feat. 김은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