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예전에 바라던 나였던가?

미국 사는 사람이 쓰는 글

by 리아

이번에는 미국 생활이 힘들 다고 느낄때마다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해봤다. 유학생으로 산 지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여기도 집 같지 않고, 저기도 집 같지 않은 애매한 시기를 건너고 있다. 가끔은 괴롭고, 절망스럽고, 뭐 매우 불안한 마음이 들어 어떻게 할지 모르는 시간이 있지만, 그걸 애써 꾹꾹 눌러담으며 행복으로 채우려고 하고 있다. 이제는 KBO가 아닌 MLB를 보는, 뭐 그런 차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이정후를 실물로 봤잖아! 이날 정후가 3루타를 쳤다.


나는 사실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과거에 힘들었던 일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미화돼서 흐릿하게 남고, 막상 지금 닥친 불안함과 답답함만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요즘은 특히 신분 문제로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사실은 감사해야 할 조건들인데 말이다.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고, 나에게 왔던 기회에 감사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나는 어리석어서 그 짧은 순간에도 불평할 거리를 먼저 찾는다.


힘들 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과거의 내가 바라던 삶을, 지금 어느 정도는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일정 부분을 이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출장도 다니고, 새로운 곳도 자주 가본다. 과거의 나도 분명 행복했지만, 지금은 행복이라는 감정이 조금 더 뚜렷해졌다. 그런데도 어떤 날들은 내가 가진 것들은 보이지 않고, 가지지 못한 것들만 유난히 선명하게 보일 때가 있다.


전에 누가 그랬다. 하루에 좋았던 일을 몇 개라도 꾸준히 기록해보면, 그게 사람을 살게 해주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보면 나는 살면서 참 운이 좋았던 사람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늘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그걸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한다는 건 분명히 큰 행운이다. 살면서 소중한 친구도, 가족도 만났고, 나랑 가장 가까운 내 동생도 있다. 나에게 스쳐 간 모든 인연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지금 겪는 이 정도의 불운은 그냥 얻으려는 것에 따라오는 부작용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불운이라기보다는 과정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이렇게 초점이 흐려질 때는 다시 나의 기준치를 생각해본다. 10년 전엔 무슨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5년 전엔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어떤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본다. 그때 했던 고민들은 지금 보면 이미 지나갔거나 사라졌고, 지금 이 걱정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10년 전 나는, 언젠가는 디자이너가 되어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집에서 유화도 그릴 수 있는 환경이 생겼고, 언젠가는 친구들이랑 디즈니랜드에 놀러가고 싶다고 말하던 순간들도 지금은 일상처럼 되어 있다. 분명 예전에는 상상 속의 이야기였는데, 현실이 됐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늘 마음 속 불안이 눈에 띈다. 그런 불안한 시간들에는 일부러라도 행복의 요소를 찾아보려 한다. 행복도 노력이고, 감사함도 계속 의식적으로 되새겨야 유지되는 감정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지금은 모든 게 걸려 있고 결정되지 않은 상태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냥 한 시기를 지나온 기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글도 언젠가 다시 읽었을 때, ‘그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라고 담담하게 넘길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이라서. 친구들과 중경삼림을 봤을 때도, 별을 보러 갔을 때도,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해변가에서 자전거를 탈 때도, 스모어를 만들어 먹을때도, 좋아하는 미술관을 갔을 때도. 부모님이 김현철, 이문세, 그리고 변진섭의 LP를 찾았을때도, 그런 순간들이 분명히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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