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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인생의 두 번째 챕터

어느덧 초가을 즈음으로 접어든 내 나이를 바라보며

by 고들정희

어렸을 때, 엄마손은 참 희고 고왔다. 어린 마음에 나도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길고 예쁜 손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기도 전에, 엄마의 손이 거칠고 쭈글쭈글해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장사와 살림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신 엄마의 손에는 고생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제야 엄마의 청춘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음을 깨닫고, 마음이 아렸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나이 듦"에 대해 생각했다.

어렸을 때, 엄마손은 참 희고 고왔다. 어린 마음에 나도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길고 예쁜 손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기도 전에, 엄마의 손이 거칠고 쭈글쭈글해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장사와 살림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신 엄마의 손에는 고생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제야 엄마의 청춘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음을 깨닫고, 마음이 아렸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나이 듦"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나는 나이 듦을 뼛속깊이 체감하는 나이가 되었다.


40대 중반부터 서서히 찾아온 노안으로, 이제는 돋보기 없이는 제품설명서를 읽을 수 없다. 휴대폰 화면을 캡처해 확대해서 보고, 아침마다 안경부터 챙기고 책을 읽어야 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웃프다.

갱년기가 시작되어 하루에도 수차례 얼굴이 갑자기 달아오르고, 식은땀이 나는 일이 잦아졌다. 뒤통수에서부터 시작된 열이 얼굴 전체를 덮을 때면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누굴 만날 때는 혹시나 얼굴이 너무 빨개졌나 신경 쓰이기도 한다.
흰머리는 왜 이렇게 빨리 자라나는지, 염색을 하지 않으면 지저분해 보이기 일쑤다.

피부도 마찬가지다. 20-30대에는 크림 하나 안 발라도 괜찮았는데, 이제는 아무리 수분 크림을 발라도 피부가 물기를 튕겨 내는 것 같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다. 했던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 헷갈려서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렇게 몸이 변하니 자연스레 건강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요즘은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근력운동을 중점을 둔다. 결혼 전에는 스쿼시도 치고, 수영도 했지만, 첫 아이를 낳고 나서는 내 몸을 제대로 돌본 기억이 없다. 그때 조금 더 운동을 해둘걸. 이제 와서야 그런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운동만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더 해볼 걸, 끝까지 가볼 걸" 싶은 일들이 많다. 지금에서야 후회가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그래서 나보다 훨씬 젊은 친구들이 어떤 일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으면 꼭 이렇게 말한다.

"해봐! 실패해도 괜찮아. 그 자체가 경험이야!"

이제 나도 어떤 일이든 망설이기보다 실행에 옮기려 한다. 머릿속에만 담아두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이런 마음 가짐 덕분에 요즘은 매일 30분씩 글을 쓴다.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일이다. 예전에 블로그를 할 때는 사진과 함께 꾸준히 글을 올렸지만, 어느 순간 멈춰 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루지 않으려고 글쓰기 모임도 만들었다. 혼자 하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하면 더 오래갈 수 있으니까.

가끔 50이라는 숫자를 보면 낯설다. 지금 내 나이는 어릴 때 보았던 높이 올려다보던 어른들의 나이 아닌가? 그런데 정작 나는 어른 같지가 않다. 평생 어른 같은 어른이 될 수 없을 거 같은 생각마저 든다. 어른이라면, 모든 일을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어떠한 일에도 초조해하지 않으며, 유연한 사고로 모두를 포용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런 어른이 되려면 몇 살이나 되어야 할까?

나이를 먹을수록 신체적으로 이런저런 걸림돌이 많아서 힘든 건 사실이지만, 좋은 점도 많다.
아이들을 다 키워놓으니, 이제야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육아로 미뤄뒀던 취미도 가져보고, 저녁에 친구를 만나러 나갈 자유도 얻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다.

젊을 때 예민하던 부분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는 유연한 사고를 가지게 된 것도 있다. 50년을 살아보니, 젊을 때 하던 행동들을 되돌아보고 후회도 하게 되지만, 웃음도 지을 수 있게 되었고, 마냥 불안하기만 하던 젊은 시절보다는 이제는 미래를 조금 흐리게나마 그려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긴 것 같다.

아이들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조급해하며 잔소리를 했을 일도 이제는 한결 여유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나이가 드니,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뭐 어때 " 이런 말들이 자연스레 늘어났다.

그래서 나이 든다는 건 어찌 보면 참 좋은 일이다. 후회할 일들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고, 나의 사고를 유연하게 해 주고, 내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오히려 요즈음엔 나만을 위한 시간이 많아져서 운동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어서 40대 때보다 훨씬 건강해진 느낌이 든다. 나는 겁이 많고, 즉흥적인 걸 좋아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계획하는 편이고, 안전을 추구한다. 즉흥적으로 떠나는 여행을 불안해한다. 그런데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뭐 어때? 그냥 한번 해볼까?"

나이가 들면서 내 경험이 쌓이면서, 모든 걸 미리 계획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걸 알게 된 덕분이다. 어쩌면 나이 드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스승일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를 계절로 비유하자면, 이제 막 노란 잎도 생겨나고, 빨간 단풍도 보이기 시작하는 초가을이다. 여름처럼 뜨겁진 않지만, 익어가는 가을은 넉넉하고 여유가 있다. 가을은 왠지 모를 원숙미가 보인다. 하지만, 가을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다. 풍성해 보이던 나뭇잎도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모두 떨어지고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건조하고 추운 겨울이 시작되는 것이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월동준비를 잘해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긴 시간을 지루하고 힘들게 보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겨울을 맞이하기 전 부지런히 준비하려 한다.


한창 육아로 지쳐있던 시절, 내 수첩에 적어두었던 글이 생각난다.

"나는 50살부터 제2의 인생을 살 것이다!"

유치한 다짐 같았지만, 그 문장이 내게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정말로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으니까. 육아로 일을 그만둔 지 15년 만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배워서 다시 일도 해보고, 새로운 악기인 바이올린도 배우며 연습하고 있다. 기타밴드를 꾸려 매달 연습도 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오래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테니스도 시작했다.

무엇보다 두 번째 인생 챕터를 기록할 새로운 블로그 공간도 마련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마치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다. 앞으로 펼쳐질 시간이 기대된다.
60대가 되면, 나는 또 나이 듦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그때는 일기장을 펼쳐보듯 이 글을 찾아보게 되지 않을까?
미래의 내가 오늘의 나를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제부터 나의 50대 이후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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