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ah J Sep 25. 2023

나이 듦에 대하여

어느덧 초가을 즈음으로 접어든 내 나이를 바라보며

아주 어렸을 때 보았던 엄마손은 참 희고 고왔다.

아이일 때의 나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고, 어른들을 마냥 부럽고 좋아 보이는 존재로 생각했다나도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길고 이쁜 손을 가지게 되는 건가?


"엄마~ 엄마손 참 이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엄마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스무 살은 젊은 30대 중반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채 되기도 전 어느 날, 엄마 손이 어느새 많이 변해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우리 가족 살림살이와 장사까지 하시느라 손이 심하게 거칠어지고, 까맣고,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그 순간, 엄마의 고생스러운 세월이 다 보이는 거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았다. 엄마의 싱그러운 청춘이 다 지고 있구나.

나이 드는 것이 이런 건가를 생각하게 된 최초의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나이 듦이 이런 신체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으로 시작되는 거라면, 요즘의 나는 뼛속까지 나이 듦을 느끼고 있다.  

40대 중반부터 서서히 시작된 노안으로, 젊을 때 시력 2.0의 밝은 눈의 소유자였지만 이젠 안경이나 돋보기 없이는 제품설명서는 읽을 수 조차 없고, 핸드폰 글씨가 잘 안 보여 캡처해서 크게 확대를 해서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조금 웃프기도 하다. 아침엔 침침한 눈을 비비고 안경부터 챙기고서야 책을 읽는다

한 달 전부터 시작된 폐경의 조짐은 하루에도 수차례 얼굴에 열을 올렸다 내렸다 한다. 이게 삶을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 뒤통수부터 시작해서 급기야 얼굴 전체에 불이 확확 지나갈 때는 식은땀도 같이 나고, 내가 마치 뜨거운 헬맷을 쓰고 있는 건지, 사막을 걷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누굴 만날 때는 혹시나 얼굴이 너무 빨개졌나 신경 쓰이기도 한다. 별다른 처방도 없다. 이젠 제대로 듣지도 않는 영양제 하나 더 플러스하고 견뎌내야 하는 거다.

게다가 흰머리는 왜 이렇게 빨리 자라나는지, 염색약으로 지저분한 머리카락들을 가리기 바쁘다. 피부 건조함은 또 어떻고. 20-30대에 워낙 영양크림, 수분팩 같은 거 안 하고 살아서 가진 땅이 워낙에 메말라있어서인지, 느즈막에 수분을 넣어본들 소용이 없다. 아무리 얼굴에 수분크림을 들이부어도 마치 피부에 방수막이 쳐져 있는 것처럼 촉촉해지질 않고, 몸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느낌이 든다.

기억력 감퇴까지 생겼는지, 얼마 전에는 아들에게 새로 사준 SIM 카드를 내가 끼워줬는지 안 끼워줬는지가 생각이 안 나고, 아예 없던 일처럼 까마득해져서 남편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앞으로는 내 기억력도 못 믿을 테니 모두 기록하고, 적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신체적인 변화는 아무것도 아니다.

문득문득 50대라는 내 나이를 생각해 보면, 어릴 때에 높게 올려다보던 아주 나이 많으신 어른들의 나이 아닌가? 그런 숫자로만 보는 내 나이는 아직까지도 낯설다. 어른이란 말도 나에게는 너무나 낯설다. 평생 어른 같은 어른이 될 수 없을 거 같은 생각마저 든다.

어른이라면, 모든 일을 순리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고, 어떠한 일에도 초조해하지도 않으며, 모든 것에 유연한 생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하며,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어른이 되려면 몇 살이나 되어야 하는 것일까?


나이 먹을수록 신체적으로 이런저런 걸림돌이 많아서 힘든 건 사실이지만, 사실 또 그렇지만은 않다.

나는 오히려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보니, 내 나이 듦이 편하고 좋을 때도 많다.

그동안 오랜 육아로 해보지 못한 취미생활도 가져보고, 이제는 저녁에 나가 친구들도 만나는 자유와 여유가 생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젊을 때 예민하던 부분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는 유연한 사고를 가지게 된 것도 있다.

50년을 살아보니, 어릴 때 하던 행동들을 되돌아보고 후회도 하게 되지만, 웃음도 지을 수 있게 되었고, 마냥 불안하기만 하던 젊은 시절보다는 이제는 미래를 조금 흐리게나마 그려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겨나는 거 같고, 아이들에 대한 생각들도 좀 편해진 거 같다. 나이가 드니, 그럴 수 있지, 괜찮아, 그럼 어때 이런 말들을 더 많이 하고 사는 거 같다.


실질적으로 내 나이를 체감하는 요즘에는 당연히 건강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것이 사실이다. 매일 운동 20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조금씩 움직이려 노력하고 있다. 30대에는 그래도 스쿼시도 쳐보고, 헬스클럽에 가서 근력운동도 해 본 거 같은데, 40대에는 너무 안 해서 후회되는 일들 중의 하나가 운동이다. 한 살이라도 젊었던 그때 몸을 좀 더 건강하게 만들어둘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젊은 시절 안 해서 후회되는 일 중의 하나가 운동 말고도 내가 그 당시 할 수 있었으나 시도해보지 않은 일들인 거 같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 할 걸, 계속해 볼 걸, 시도해 볼 걸 하는 일들이 꽤 있다. 몇 번 시도해 보다 금세 포기해 버린 일들도 조금 더 노력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훨씬 젊은 친구들이 나에게 어떠한 일에 대해 할까 말까 하는 고민을 털어놓으면 무조건 해봐~ 실패해도 되고, 그것도 경험이야. 지금 안 하면 나중엔 더 힘들어~라는 말을 꼭 해준다. 그런 후회가 드는 요즘이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우선은 결과가 어떻든 실행하려고 한다.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들을 꺼내놓지 않으면 아무런 파장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이렇게 매일 30분 글 쓰는 시간을 만들게 된 것도 그중의 하나이다.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실행이 되지 않아 답답했다. 블로그 활동을 할 때는 그나마 사진을 올릴 때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뭐라도 끄적이는 습관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하지 않고 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일단은 해보자 해서 사람들을 모아 의견을 물어보니,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니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걸 또 느낀다. 혼자 하면 빨리 갈 수 있으되,  함께 하면 더 오래갈 수 있다는 건 진리인 것을.


그래서 나이 든다는 건 어찌 보면 참 좋은 일이다. 후회할 일들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 좀 더 노력하게 되고, 나의 사고를 유연하게 해 주고, 내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되니 말이다.

나는 겁도 많고, 위험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안전을 추구하고 즉흥적이지도 못하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떠나는 여행을 불안해한다. 그런 내가 나이가 든다고 완전히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뭐 어때, 이렇게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나이 듦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내 식견과 경험이 축적되어 겁내지 않아도, 꼭 계획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스스로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나이 드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스승이 될 수도 있겠다.


나이를 계절로 비유하자면, 내 나이는 이제 막 노란 잎도 생겨나고, 빨간 단풍도 보이기 시작하는 초가을 일 수 있겠다. 가을은 넉넉하고 여유가 있다. 눈부시게 이쁘고, 열정이 넘치는 더운 여름보다 가을은 왠지 모를 원숙미가 보인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린다. 풍성해 보이던 나뭇잎도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모두 떨어져 버리고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면서, 건조하고 추운 겨울이 시작되는 것이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월동준비를 잘해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긴 시간을 지루하고 힘들게 보낼 수 있게 된다. 나의 겨울을 맞이하기 전 지금 부지런히 움직여두자


아이들 육아로 힘들 때 내 수첩에 써두었던 글이 생각이 난다.


"나는 50살부터 제2의 인생을 살 것이다"


유치하지만, 그 문장덕에 힘들었던 육아의 시간에 위안을 얻고 살았다. 그 믿음이 맞았나 싶다.

정말 50살이 되고 보니, 이제 나에게 꽤 많은 자유도 주어지고, 아이 낳은 후로는 가정주부로만 살다가 15년 만에 다시 일도 시작하게 되었으며, 한 번도 안 해봤던 일들을 시도해보기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이 든다. 앞으로 또 새롭게 시도하게 될 일들이 궁금해지면서 아직 살아보지 않은 50년이 또 기대가 된다.

내 나이 60에는 나이 듦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그때는 또 일기장 펼쳐보듯 이 글을 찾아보게 되지 않을까? 그때는 나의 50대가 마냥 후회되지만은 않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