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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J Oct 02. 2023

첫인상

평생 첫인상에 자신 없이 살았다.  

여자의 인상을 곱상하게 만들어주는 동그랗고 이쁜 쌍꺼풀진 눈매도 아니고, 오히려 옆으로 쭉 찢어진 길쭉한 외쌍꺼풀 눈에다, 브이라인을 최고라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그와 정반대인 네모에 가까운 각진 턱, 안 그래도 큰 입인데 활짝 웃으면 위아래 이가 온천하에 다 드러나는 강렬함이라니.

그나마 곧고 동그란 콧방울을 가진 코가 제일 자신 있는데, 위아래가 너무 강렬하다 보니, 나를 자세히 알고 나면 보일까 둘에 비해 존재감이 약하다.

나랑 친해지고 난 후 그제야 털어놓는 사람들의 내 첫인상은 처음엔 아주 못됐고, 강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도 "알고 보니 성격은 정반대였다"라는 멘트로 마지막은 훈훈하게 끝나지만, 늘 그게 아픈 상처가 되었다.

 

성형 공화국 우리나라에서 왜 나라고 그 흔한 쌍꺼풀 수술에 대한 유혹이 없었겠는가! 20대 때에는 쌍꺼풀만 있으면 내 인상이 좀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 당시 올케언니에게서 친구들이 수술해서 성공했다는 성형외과 주소를 받은 적이 있다. 유명 성형외과가 즐비한 부산 서면거리에 내려 병원입구까지 갔다가 다시 마음을 바꾼 적이 있었다. 그놈의 겁 때문에. 내 일생일대 가장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 마냥 가슴이 콩닥되면서, 어린 맘에 혹시나 실패할까 무서웠고, 아플까 걱정도 되었던 거 같다.

렇게 외쌍꺼풀에 대해 불만을 가끔 표출할 때면, 엄마는 내가 젊었을 때의 엄마 얼굴이랑 닮아서 결혼해서 애만 하나 낳으면 쌍꺼풀이 저절로 생길 거라고, 본인이 그러셨다며 걱정하지 말란다. 이 이야기 10번은 더 하셨는데, 난 애 셋을 낳아도 여전히 쌍꺼풀이 없다 ㅎㅎ

언니는  엄마보다 한 술 더 뜬다.

"정희야, 나는 니 눈이 진짜 이쁘다고 생각한다니까! 얼마나 매력 있는데 그라노~ 안 그래도 그 큰 눈에 쌍꺼풀까지 있으면 너무 부담스럽다. 절대 수술하지 마라!"

어릴 때부터 내 동생이 제일 이쁜 줄 알고, 늘 잘한다, 최고다 칭찬을 많이 해주는 긍정 에너지의 언니다. 가족들의 이런 애정 어린 위로의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은 나는 결국 수술은 이번 생에는 없는 것으로 ㅎㅎ


사실, 첫인상이란 건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달라지고, 그 사람의 품성이나 인성, 말투로 인해 나중에는 오롯이 그 사람의 진면목이 보이작하 순간이 오게 된다.  

요즘 핫한 예능프로그램 중 "나는 솔로"라는 것이 있다.  편은 전혀 보지 못했는데, 현재 방영 중인 16기가 "나는 솔로" 전체를 통틀어, 다른 어떤 영화보다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 적이 있다. 일명 솔로 나라라는 곳에 신청해서 찾아온 10명의 일반인 남녀가 첫날은 그들의 첫인상만으로 서로를 선택하고, 5박 6일 동안 함께 지내며 서로를 알아간 후 최종 선택을 한다는 예능이다. 출연자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그들의 첫인상을 유심히 보게 된다. 우습게도 첫 느낌에 참 선하고 여리면서 곱게 생겼네 하는 여성출연진이 최고의 빌런으로 등극하고, 스타일 빵점에다 무뚝뚝하고 잘 웃지도 않는 남자출연진은 뒤로 갈수록 의외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탈해 보이고 착해 보인다 싶람이 알고 보니 이 말 저 말에 휘둘리는 새털보다 가벼운 존재인 것이 드러나기도 고, 상대방을 편하게 하는 분위기 메커였던 한 출연진은 이 사람 저 사람 말을 옮기고 이간질하기 바쁘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인간의 밑바닥 본성과 본능스릴 있게 시청할 수 있며, 이 프로그램으로 사랑이 아닌 을 배웠다는 의견이 쏟아진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첫인상이 이 정도로 드라마틱할 까만은 나도 가끔은 첫인상과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정말이지 첫인상이란 건 전혀 쓸모없는 찰나의 이구나 싶다.

인성이 드러나면 인상도 달라진다.


하지만, 대학교 때나 취업을 위한 면접 그리고, 소개팅이나 중요한 사람과의 미팅등에서 때론 첫인상이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하고, 유리하게 작용하곤 한다. 면접을 보러 가서 내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이미 90퍼센트의 사람들은 처음 인상만으로 나의 성격과 재능을 가늠하기도 한다.

영어 공부에 한참 빠져 있던 20대 중반, 전공과는 달리 영어 강사에 관심이 있어서 은 영어 학원에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학원 원장이 면접이 끝난 후 계속 고민을 하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죄송한데, 주정희 씨는 너무 인상이 강해서 뽑기가 힘들 거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  

내 전공이 달라서, 아니면 경력이 모자라거나 능력이 안되서가 아니라, 내 외모 때문에 뽑지 않겠다고 한 셈이다. 사람을 면전에다 대고 그렇게 강력한 펀를 날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보통은 우리 회사에 맞지 않아서 라는 핑계를 대지 않나? 그 후로 더욱 인상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졌던 거 같다.  

다행히도 나이가 드니 강렬했던 눈매도 중력의 힘으로 살포시 내려가 조금 부드러워진 거 같고, 실제로 내 인상도 예전에 비해 조금 편안해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나를 나타내는 이미지도 외모뿐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있다는 걸 알게 되,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거 같다. 이제는 새로운 사람들보다 나를 이미 아는 사람들과 더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살고 싶고, 낯선 사람들이 잠깐 지나치며 나를 평가하는 모습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 사람들이 내 삶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또한, 20대와는 달리, 점점 나 자신을 소중히 생각할 줄 알게 되면서는 나의 이목구비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거 같다. 지금의 내 모습도 이제는 좋다.


캘거리에 이사 와서 가입했던 북클럽에 나와 같은 부산 출신 미경이라는 동생이 있다. 처음   북클럽 정모 줌 미팅에서였는데 화면으로만 보고 인사할 때는 말수가 많이 없어 보여 조용한 성격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만나 보니, 알면 알수록 특유의 친화력으로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동생이었고, 먼저 애교 있게 말 걸어주고 표현을 잘하는 친구였다. 같은 부산 출신인지라 대화를 나눌 때 통하는 것도 많았으리라. 

그런데 사실, 미경이의 인상을 더 돋보이게 들어 주는  다름 아닌 바로 시원한 웃음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분 좋게 소리 내어 웃을 때면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평소엔 풍덩 빠질 것 같은 커다란 눈망울 웃음과 동시에 사라져 버리고,  매력적인 도톰한 입술이 말려 올라가면서 이가 환하게 드러나게 웃는다.  그 특유의 하이톤 웃음 하나로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켜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 그 사람의 환하게 웃는 모습은 인상을 더 좋게 만들어준다. 처음 만나 어색한 사이더라도, 상대방의 말에 반응해 주고, 자주 웃어 주는 사람들에게는 일단 마음이 열린다. 정말 얼굴이 쁘고, 잘 생긴 사람이라도 웃음기가 전혀 없고, 늘 인상을 쓰고 있는 사람은 차가워보이며,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그 긴장을 풀려고 실없는 농담을 하다 보면 말실수를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잘 웃는 사람이 좋다.

웃음은 또 하나의 인상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 친구 민영이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너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딱 떠올리면 뭐가 먼저 생각나?" 

어느 날 갑자기 둘이서 라면을 먹는 중에 친구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같이 라면 끓여 먹을 모습?"이라고 대답해 주고는 둘이서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그 당시 매일 붙어 다니며 친구집에서 같이 공부하고, 라면 끓여 먹던 게 일상이었던 우리.

"그럼 넌 내 어떤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라?"라고 내가 되물으니, 친구는 고맙게도 이렇게 말해줬다.

"네가 엄청 많이 웃으면 눈밑 보조개가 가끔 생기는데, 그렇게 환하게 웃을 때의 모"


누군가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 구체적인 어떤 모습이나 표정이 떠오른다면 그게 그 사람의 인상이 아닐까?

내 친구가 나의 웃는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니 그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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