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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J Oct 09. 2023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

한번 거슬러 올라가 볼까?


제일 최근의 일이라면 얼마 전 도서관가서 빌려 온 프렌치 디저트 책 케이크, 타르트 진들을 보고 설렜다. 예쁜 요리책을 보면, 먹고 싶다 보다는, 만들어 보고 싶다가 먼저 드는 생각.

직접 만들어보면 늘 결과물은 사진이랑 다르지만, 집안 곳곳에 퍼지는 빵냄새를 맡으며 오븐에서 빵을 꺼내기 직전은 매번 설렌다. 부풀어 오르지 않은 발효빵, 가운데가 푹 꺼져버린 치즈케이크, 재료 하나가 빠져 딱딱해져 버린 쿠키.. 그렇게 실수가 많은데도 또 앞치마에 밀가루 묻혀가며 빵을 굽는다. 식힘망에 올려놓은 빵들은 구운 직 후 한 김 식은 후가 가장 맛있다. 한 김 식자마자, 손으로 반을 살짝 가르면 김이 솔솔 배어 나오고, 나는 가장 맛있을 때 가장 먼저 맛보는 특권을 누린다. 어떻게 안 설렐 수가 있을까?

쇼핑몰에 가더라도 부엌살림이 예쁘게 전시된 가게에 들어서면 살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설렌다. 사람들에게는 설렘 포인트가 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부엌살림들이 그렇다. 묵직한 형형색색의 더치 오븐들, 단아한 모양의 플레이트들, 식탁 위에 꾸며진 예쁜 커트러리들, 홈카페를 만들어 줄 광나는 에스프레소머신들. 가지고 싶고 사고 싶다는 느낌과는 다르다. 그저 깨끗이 정렬된 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설레니 가끔은 눈호강 시켜주러 쇼핑몰로 가곤 한다. 보석도 아니고, 명품백도 아닌 주방용품에 설레는 나...


다시 거슬러 올라가, 3년 전쯤의 기억..


캘거리에 이사 와서 새로운 도전을 한답시고 공부하느라 바빠, 한동안 사람들과 별다른 교류를 못하고 지내다가, 크리스마스 즈음에 오랜만에 아끼는 동생과 안부전화를 하게 되었다. 그날, 그 동생이 속해있던 캘거리에 살고 있는 한국 여성로 구성된 북클럽을 소개받았다. 그즈음 나는 신년 계획으로  북클럽을 가입하고 싶어 적당한 곳을 물색 중이었는데 어찌 이런 우연이 있을까.. 찌릿하게 전율이 왔다. 그녀의 소개로 북클럽 단톡방에 초대되어 들어가 보니, 25명 정도 되어 보이는 회원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정희님~ 크리스마스에 찾아오신 선물이시네요~ 반갑습니다~"라는 정겨운 멘트와 함께 줄줄이 인사가 올라오고, 왁자지껄 이모티콘 세례를 그렇게 많이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단톡방에서 특히나 따스하게 답을 해주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몇몇 회원의 이름을 익혔다. 처음으로 톡방에 "책 읽기 시작합니다"라는 낯선 인증도 해보고, 아직 잘 모르는 회원들의 수다를 따라잡으며 가끔 중간에 끼어들기도 하면서 그렇게 좀 더 가까워지려 노력했다.

드디어 2021년 새해 첫 정모날. 그때는 코비드 시기로 직접 모일 수가 없어서 줌으로 정모를 대신했다. 누가 들어오실까? 단톡방에서 만난 분들을 다 볼 수 있으려나? 첫 정모에 들어가기 전 너무너무 설레었다. 컴퓨터를 켜놓고 10분 전부터 대기모드로 있다가 시간이 되자마자 곧바로 클릭을 눌렀던 것 같다. 그러나, 화면을 꽉 채우고 사람들이 모여 있을 거란 기대와는 달리 북클럽 회장님만 혼자 덩그러니 와 계셨다. 내가 너무 시간을 딱 지켜 정시에 들어갔던 것이다..ㅎㅎ

이후 한 명 한 명 들어와서 인사를 하는데, 단톡방에서 이름으로만 보던 바로 그분들이었다. 이분은 단톡방에서 참 명랑하셨는데, 직접 봐도 명랑하시네, 활동을 열심히 해서 눈여겨보던 회원은 이번엔 안 들어왔네? 이분 참 따뜻해 보였는데 좋은 사람 같아. 목소리가 참 좋네? 다들 너무 이쁘신데? 우와~ 말씀들을 왜 이렇게 잘하시지? 새로운 만남자체가 너무 오랜만이었고, 종교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터라 이렇게 많은 한국 여성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 역시 캐나다 와서 처음이었. 그 순간이 내게는 짜릿한 감동이었고 설렘이었다. 당시의 나는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고, 맘속에 담긴 많은 감정들과 감동들이 찰나에 뒤섞여서, 회원들에게 내 소개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려버렸다. 처음 만난 분들 앞에서, 내 감정을 이렇게 여실 없이 드러내는 것은 나답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된 것일까? 자꾸만 벅찬 감정이 올라오고 있었다. 멤버들이 농담 진담반으로 "괜찮아요~ 여기선 원래 처음엔 다 울고 시작요~ 여기서  울어본 사람 없어요" 라며 민망한 나를 웃게 해 줬다. 나를 그렇게 설레게 했던 그 사람들과는 지금까지도 책 이야기를 하며 만나고 있고, 여전히 만나기 전에는 애인 만나듯이 설렌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이제는 조금  멀리 지금으로부터 삼십오 년 전으로 가보겠다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어느 날 티브이에서 기타 치는 대학생들을 보게 되었다.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거실에 앉아 티브이를 보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갑자기 뭐가 씌었는지, 기타가 너무너무 치고 싶었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중학교 때는 공부를 꽤나 잘했다. (학교대표로 MBC 부산 장학퀴즈에 나갈 뻔한.. 아~ 옛날이여~)

공부만 해도 모자랄 중3 때 갑자기 기타라니. 그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내가 공부가 아닌 다른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엄마에게 부탁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용기에서인지 마치 지금 당장 기타를 안 배우면 안 될 것처럼 엄마에게 부탁 아닌 애원을 했다. 지금 같았으면 유튜브에 독할 수 있는 강의들이 널려 있을 텐데, 그땐 동네 기타 학원에 직접 가서 배워야 했다. 이미 동네에 있는 기타 학원 하나를 알아놨고, 학원비도 알아왔다. 그런데, 엄마는 뜬금없이 기타를 고 싶다는 중3 소녀에게 학원비를 쥐어 주셨다. 그리고, 학원 다니며 알게 오빠에게 부탁해 동네 레코드 가게에서 파는 제법 괜찮은 통기타도 골라서 살 수 있게 해 주셨다. 그 당시 거금 3만 5천 원을 들여서. 아직도 그때의 엄마 마음을 알 수.

학원에 간 첫날 그 설렘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심장이 바운스 했다. 처음 도레미 명을 익히고 나서, 트대로 튕기며 연습하던 곡이 "섬집 아기"였다. 빨리 코드를 배워서 슬로우고고, 칼립소 등의 스트로크를 신나게 치고 싶은데, 줄만 띵띵거리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내 앞에선 몇 달 먼저 배운 오빠들이 팔을 휘두르며 스트로크를 고 있는데 어찌나 부러웠던지.

드디어 선생님께 코드 워서 격적으로 스트로크를 시작하게 된 순간이 왔을 때  한 번 심장이 바운스 했다. 첫 곡은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코드 4개만 알면 멋들어지게 칠 수 있는 곡이다. 게다가 처음에는 아르페지오로 조용히 기타 줄을 튕기다가 후렴부에 스트로크로 바뀌는 것도 맘에 들었다. 발라드의 국룰이다. 학교에 가면 필통을 부여잡고 코드를 익히고, 집에서는 손가락 끝이 퉁퉁 부어 껍질이 여러 번 벗겨 질정도로 연습을 했다. 방학 때는 밤새도록 사전보다 두꺼운 통기타 가요집을 넘겨가며 기타 연습을 하며 중3 시절을 보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지랄 맞다. 중3 때 기타에 빠져들게 뭐람. 그래도 고3 때가 아니어서 다행인 건가? 덕분에 고입선발고사를 엉망으로 치렀다.

중3 때 밤새워 연마한 기타 실력으로 고등학교 때는 소풍이나 MT를 가면 꼭 기타를 둘러매고 가서 장기 자랑시간에 반 대표로 나가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 당시에 기타를 조금이라도 칠 줄 아는 학생들이 학교에 서너 명 밖에 없어서 기타를 칠 줄 안다는 것만으로 인기가 있었다. 성적과 인기를 바꾼 셈인 건가 ㅎㅎ

고1 엠티 때 친구들과 숙소 텐트에 둘러앉아 렌턴 불빛 아래서 조하문, 김광석, 이문세 노래들을 내 기타 반주에 맞춰 소리소리 지르며 함께 노래하던 생각이 난다. 에선 군가 장기자랑 준비로 소방차 안무를 연습하고 있고.. 응답하라 1988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참 순수했던 시절이다.


그렇게 설렘을 가지고 뭔가를 배운 적이 있었을까? 지금도 뭔가를 새롭게 배우기 전엔 늘 설레긴 하지만, 중3 때 기타를 치던 나의 열정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싶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치던 기타를 대학 졸업과 동시에 완전히 내려놓고, 25년잊고 살았. 그런데 작년 이맘때 즈음,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잊고 있던 기타에 대한 열정이 살포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다시 쳐볼까?  그리곤 작년 크리스마스에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야마하 기타를 샀다.

그렇게 열심히 치던 기타인데 25년 동안 한 번도 치질 않았더니 기본 코드조차 생각이 나질 않아 기본기를 익히는데도 몇 달이 걸렸다. 명 가요집을 통달했던 실력이었는데 이제는 한 곡 익히기도 어렵구나. 노래하는 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몇십 년간 노래를 안 불렀더니, 고음에선 음치로 변해버리는 내 목소리가 눈물겹다. 하지만, 실력은 줄었어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때면 몸속 앤돌핀이 마구 솟아난다.

이제는 "응답하라 1988"이 아닌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꿈꾸며 멋들어진 밴드 하나 만들어 함께 모여 연습해 보고 싶다. 거창한 꿈은 아니고, 그저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여러 가지 악기들을 조화롭게 함께 연주해 보며 노래하는 거다. 벌써 마음맞고 하고 싶은 이들 몇몇을 모아놓았으니 시작이 반인 건가?

그런 날을 생각해 보면 또 어쩔 수 없이 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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