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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J Feb 05. 2024

해방을 위한 글쓰기

해방일지

“왜 매일 술 마셔요?”

“아니면 뭐 해?”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겨울이 오면 살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예요. 당신은 무슨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작년..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봤을 때 염미정이 구 씨에게 말하는 저 대사를 듣는 순간 숨을 멈추고 말았다.

염미정은 서울 변두리 경기도에 살면서 먼 거리의 서울 직장으로 매일 출퇴근하며 항상 똑같은 일상을 사는 기쁠 일이 별로 없는 삼 남매 중 막내다. 별로 말이 없던 그녀가 훨씬 더 말이 없던 구 씨에게 다가가 저렇게 말을 쏟아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면의 희열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찌릿한 전율 또한 전해졌다.

추앙이라니... 너무 이상하잖아?


염미정이 회사 내에서 주관하는 취미 클럽 중 어디라도 들어갈 것을 회사 내의 사규 등의 이유로 종용받지만, 내성적인 그녀에게는 어느 곳에든 들어가기가 쉽지 않고, 부담스럽다. 그렇게 그녀와 비슷한 부류의 직원 몇몇을 알게 되고 그녀는 차라리 우리끼리 해방클럽이라는 걸 만드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해방일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자고. 염미정은 내면에 숨겨진 나를 진심으로 해방시키고자 글을 쓰게 되고 그렇게 그녀는 진정한 자유를 만난다.


나는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는 대사가 8할이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할 수 있는 대사들이 너무 많아서 한편을 다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리뷰들을 찾아보곤 했고, 아니나 다를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그만큼 메시지들이 강력했다.

염미정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들을 하면 다른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해방클럽에서 해방일지를 쓰거나 구 씨를 추앙해 보는 일들도 안해보던 일들이다. 그녀는 그렇게 채워지기를 원했다.


요즘 들어 내 머릿속에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생각은 안 가보던 경로로 일단 가보자이다. 그런 와중에 나의 해방일지에 관한 주제로 글을 써보라는 글쓰기 리더의 제안에 이번에야 말로 진정으로 나를 해방하라는 메시지인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는 몇 년 전 엄청나게 강한 인상으로 남게 된 그 드라마를 다시 복기해 보며, 염미정이 느낀 그 해방이란 것을 나도 해보고 싶다고 되뇌어본다.

나는 평생 늘 가던 대로만 가고, 늘 예상되는 선택을 하는 삶을 살았다. 그게 가장 안전하다고 느꼈으니까. 다행히 별 탈 없이 순탄하게 잘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진짜 잘 사는 것인지는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 안전지대를 벗어나면 어떤 삶일까? 또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더 잘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해 보고 나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마음을 많이 가지게 되다 보니, 갇혀있는 내 마인드부터 변화할 수 있게 해방시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염미정처럼 글을 써보자. 내가 안 가보던 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자.

그리고 글을 쓸수록 희미하게나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진정으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것들, 내가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무엇을 할지는 알 수 없으나, 이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새로운 길에 대한 설렘이 생겼다.


사람은 누구나 24시간이 주어지지만, 얼마나 가치 있게 보내느냐는 다른 일일 것이다. 내가 24시간을 나에게 가치 있는 일들로만 채운다면 나 스스로 완전한 해방감을 느낄 것 같다. 오히려, 남의 가치를 위해 살아가다 보면 열심히는 살았지만, 뒤돌아보면 후회가 남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내 가치가 무엇인지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자꾸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내게 해방일지가 있다면 나의 가치가 무엇인지 찾고자 할 것 같다. 그리고 아침마다 되뇔 것 같다.  


확실해? 봄이 오면 너도 나도 다른 사람 되어 있는 거?”

“확실해.”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


“가짜로 말해도 채워지나? 이쁘다, 멋지다, 아무 말이나 막 할 수 있잖아.”

“말하는 순간 진짜가 될 텐데? 모든 말이 그렇던데. 해 봐요 한 번, 아무 말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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