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취미 아니세요?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엄지손가락 통증이 또 심해져서, 침을 맞으러 갔다가 들은 말이다.
그러게. 나는 왜 고통을 참으며 취미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걸까.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왼손 통증에서 시작해서 이젠 오른손 엄지 쪽에도 똑같은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확히 이 통증이 바이올린 때문에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약 1년 후 생긴 통증이긴 했다. 처음 통증이 있을 때는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가? 할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몇 개월 쉬면 낫겠지 하고 수업도 그만두고 잠시 쉬었고, 2개월 후엔 다시 개인 레슨을 시작했다. 그 후에도 낫질 않아 검사를 해보니 퇴행성 관절염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갱년기에 관절을 너무 많이 쓰면 나처럼 퇴행성이 올 수 있다고 한다.
3년 전, 내가 50살이 되던 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갱년기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사람도 참 드물긴 할 거 같다. 그러다 말겠지 했던 통증이 벌써 몇 년째 이어져오다니 이러다 정말 나와 죽을 때까지 같이 갈 운명인 걸까?
손이 아프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아주 사소한 움직임을 제대로 못해낼 때 더 그렇다.
화장실 휴지 팩의 비닐을 벗기는 거조차 나한테는 왜 이리 어려울까. 당연히 요즘은 가위를 쓰기도 하는데, 그럴 때도 엄지를 써야 하니 따끔따끔한 통증이 전해진다. 큰 휴지팩을 선반에 올려둘 때도 힘이 없으니 참 어설프게 대충 올려놓는다. 예전엔 뭐든 각을 딱 맞춰 정리했다면 이젠 그러기엔 좀 무리가 간다.
빨래가 건조대에서 나오면 옷들이 후줄근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손바닥으로 탁탁 쳐서 깔끔하게 접으면 주름이 안 생긴다. 그런데 손바닥으로 치는 동작은 아예 못한다. 손이 잘 펴지지 않는 데다가 그 부분을 치는 건 용기가 생길 정도로 아프다. 즐거운 파티에서 손뼉을 쳐야 할 때도 맘껏 치지 못해 주먹 쥐고 손뼉을 칠 때도 있다. 문의 손잡이를 돌릴 때도 손만 돌리면 아프니 내 몸도 손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이면서 통증을 최소화한다. 누가 지켜보고 있다면 어디가 좀 모자라나 싶을 것 같다.
늘 하고 있는 살림살이가 특히 가장 힘들다. 요리할 때 꽉 잠긴 소스의 뚜껑을 열 땐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하고, 무거운 그릇을 드는 건 통증이 느껴지니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정말 안 되는 것투성이다.
이 정도로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기니, 이젠 좀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
3주 정도 침과 shockwave 및 cold 레이저로 치료를 해보자 했는데, 손을 쓰는 건 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하신다.
당연히 무거운 덤벨이나 바벨을 들어야 하는 근력운동도 이젠 그만둬야 할 것 같다. 그동안 2년 가까이 근력운동하느라 덤벨을 들고 운동했는데, 아픈 손을 무시하고 그냥 막 쓴 벌을 받는 건지...
재미를 붙였던 테니스 역시, 오른손마저 아파져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손 안 쓰는 운동을 생각하다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 보니, 예전에 아팠던 고관절 통증이 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나이 신경 쓰지 않고 뭐든 도전하는 편이었는데, 정말 나이를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나?
손이 아픈데, 손을 써야 하는 악기를 두 개나 하고 있다.
기타 모임은 내가 밴드를 만든 리더인 만큼 책임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그만둬야 할 거 같다.
멤버들과 처음 기타 밴드를 시작했을 때, 내가 가지고 온 악보들을 모두 버거워했지만, 1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어떤 음악도 함께 연주가 가능하다. 그것만으로도 리더로서 내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
매달 연습할 곡들을 고르고 꾸준히 연습했던 건, 분명 기타 실력을 올리는 데 큰 몫을 차지했을 거라고, (누가 알아주지는 않아도) 나 혼자만의 공치사로 뿌듯함을 느낀다. 단순히 곡을 고르는 것을 넘어 멤버들이 어느 정도 칠 수 있는 수준을 고려해야 하고, 우리가 계속 불러도 질리지 않을 곡들을 선택했다. 그렇게 선곡된 곡을 가지고, 쉽게 칠 수 있는 기타 코드를 고르고, 직접 쳐보며 음역대를 맞췄다. 연주할 때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하도록 악보를 섬세하게 다듬고, 마지막으로 가수 음원을 뺀 MR 반주도 만든다. 어떤 날은 몇 시간 동안이나 꼼짝 않고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도 있다. 내가 재미있고 좋아서 하는 일이다.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완성해 가져간 결과물을 앞에 두고, 누군가에게 "이게 무슨 노래야~ 나는 이 곡 모르는데? 다른 거 해~"라는 무심한 말을 들으면 살짝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서로 취향의 다름이라 생각한다. ㅎㅎ
어쨌든 나에겐 정말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고, 가장 많이 애쓰고 좋아하는 활동이었다. 그렇기에 이 지난한 노력이 통증으로 인해 이제 완전히 중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어쨌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멤버들에게 미안하지만, 기타 모임은 더 이상 못할 것 같다고 말을 했다.
아무리 손이 아파도 바이올린은 아직 포기하기엔 너무 억울하다.
바이올린을 배운 지도 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 그만둔다면, 3년 넘게 칼을 갈아 놨는데 무를 썰기도 전에 그만두는 셈이 된다. 원래 목표가 오케스트라 활동이었고, 원하던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만큼 연습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다. 어쨋든 손에 많이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히 연습할 생각이다.
이제 곧 있을 11월 말과 12월 초 두 차례 공연 그리고 내년 5월 정기공연까지는 꼭 잘 마무리해보고 싶다. 그러고 나서 다시 오랫동안 쉬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일이란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 나는 건강에 대해 자신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손만 아니면 너무 건강하다. 팔, 다리, 뿐 아니라 속도 불편한 적이 없고 하물며 눈도 밝고, 이도 건강한데 손이 나를 힘들게 할 줄이야. 데이지를 데리고 산책을 가다가도 가끔 맘대로 가려할 때 줄을 당기다 손가락에서 전기가 찌릿하고 전해져 올 때도 있다. 밤에는 손 통증이 더 심해져서 자면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어느 한 군데만 아파도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시그널이 찾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안 좋은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 나쁘게만 생각하진 않는다.
이 고통이 내가 하는 일들을 멈추게 하지만, 동시에 나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점.
무엇을 붙잡고 살아왔는지,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그 구분을 비로소 배울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이 멈춤의 시간은 나에게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주는 것인지도.
50대에 시작한 뜨거운 열정과 기꺼이 그 고통을 감수했던 나의 용감했던 시절을 나중에는 온전히 기억하게 되겠지.. 하며.
지금 나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해야 하는 깊은 사색의 지점에 서 있다.
그러니 이젠 그 손으로 대신, 다른 때보다 더 많이 책장을 넘기고, 더 많은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덤벨이 아닌, 하루 두 번 강아지와 산책하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느리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통증은 나에게 많은 것을 멈추게 했지만, 그 멈춤 속에 나는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게 되리라 믿는다.
그러니 이젠 그 손으로 대신 다른 때보다 더 많이 책장을 넘기고, 더 많은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덤벨이 아닌, 하루 두 번 강아지와 산책하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느리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통증은 나에게 많은 것을 멈추게 했지만, 그 멈춤 속에 나는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게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