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가 우리 집에 온 지 석 달이 지났다.
생후 두 달 무렵까지만 해도 물고, 으르렁대고, 저녁만 되면 정신없이 흥분하고, 배변패드를 찢고, 가끔 설사까지 해서 혼란 그 자체였던 아이가 나와 함께 지낸 지 3개월이 지나자 서서히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강아지에 대해 공부하며 아이의 마음을 알아채가는 그 3개월 동안 데이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데이지를 이해하고 돌보는 방법을 몸으로 익혀가며 둘 다 서로에게 편안해지는 시기가 동시에 찾아온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내려가면 언제나처럼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고, 곧바로 마당에 나가서 볼일을 본다. 하루 두 번하는 산책도 안정적으로 잡혀가고 있다.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늘 하는 훈련도 이제 자리를 잡았다. 나의 아침 독서시간에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다시 잠을 청하는 데이지를 보며,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반려견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문득 행복해진다.
함께 어우러 산 그 석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석 달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조금씩 익숙해지고, 서로를 알아가는 법을 배워갈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생각해 보니, 숫자 3은 묘한 힘을 가진 숫자다. 우리는 어떤 과정을 설명할 때나, 성장을 이야기할 때도 본능처럼 ‘셋’이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철학에서도, 종교에서도, 심리학에서도 3은 완성, 변화, 전환을 상징하는 숫자로 자주 등장한다. 하나는 시작이고, 둘은 갈등과 혼란이며, 셋은 그 갈등을 넘어선 새로운 균형이다. 무엇이든 처음은 낯설고 두렵고, 둘째 단계에서는 흔들리고 시험받지만, 셋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흐름이 잡힌다.
습관과 관련된 자기 계발서들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형식이 이 세 단계다.
1단계는 저항의 단계로 뇌는 변화를 “위협”으로 해석해서 최소 노력의 경로를 택하려 한다고 말한다.
2단계는 혼란의 단계로, 새로운 습관을 만들 때 필연적으로 “정체기”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3단계는 안정의 단계로, 정체기를 지나면 습관이 자동화되고 정체성과 자연스럽게 융합된다고 설명한다.
한국에서 “삼세번”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임신 초기 3개월은 태아가 자리를 잡는 기간이며, 첫 직장에서도 3년은 버텨보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아이 키우는게 얼마나 힘들면 백일이 되면 파티를 다 하겠나! 갓난아이가 3개월이 지나면 엄마와 아이 모두 어느 정도 적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시간을 나눌 때도 마찬가지다. “3일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3개월은 적응 기간이야”, “3년은 버텨봐야지” 같은 표현들은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변화가 몸에 스며들기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경험적으로 알려주는 지혜일지도 모른다. 3이라는 시간은 서툼이 익숙함이 되고, 혼란이 질서가 되며, 불안이 신뢰로 바뀌는 경계선처럼 작동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이렇듯 깊은 변화와 성장을 견디며, 인내와 기다림이 요구되는 시간에 모두 숫자 3이 들어가는 건 우연이 아닌 듯하다. 어쩌면 3이라는 숫자는 사람들에게 ‘지금은 흔들릴 때지만, 곧 변화가 올테니 조금만 더 버텨라’고 말해주는 시간 단위인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도 바이올린을 처음 배운 초반 1년 동안은 활의 각도 하나 제대로 맞추는 것도 힘들어 매번 좌절했다. 2년 차에는 조금 익숙해진 듯했지만,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3년이 지나니, 바이올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서서히 활이 붙는 느낌이 들며, 간단한 비브라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나는 왜 이렇게 안 느는 거지?”라는 답답함이 있었는데, 그 시간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 벽을 살짝 넘어서는 느낌이 찾아온 것이다.
마치 그 3년이 나에게 익숙함과 안정의 문턱이었던 것처럼. 새로운 일을 배울 때도, 이민 생활의 리듬을 익힐 때도, 늘 ‘세 번의 턱’을 넘고 나서야 비로소 편안해졌구나 싶다.
숫자 3은 내 인생에서 작은 완성과 안정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제 어떤 변화든 ‘세 번은 겪어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숫자 3이 주는 힘을 믿게 되었으니까.
데이지와 함께한 그 3개월이 바로 증거다.
혼란스럽고 불안했던 시간은 지나갔고,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져 편안함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숫자 3이 알려준 인내와 기다림, 그리고 그 끝에 찾아오는 안정과 기쁨을, 나는 매일 아침 데이지를 보며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