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의 한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던 25년 전의 일이다.
당시 회사의 주요 시장은 네덜란드 바이어를 주축으로 한 유럽이었고, 공급처는 중국과 베트남 공장들이었다. 우리 회사는 그 사이에서 샘플 개발부터 생산, 선적까지 전 과정을 원활하게 조율하는 에이전시 역할을 수행했다. 가격 네고를 위한 인보이스 송부부터, 제품의 패키지 방식까지, 하루에도 수십 통의 세세한 이메일이 국경을 오고 갔다.
나의 주된 업무는 바이어의 요구를 공장에 정확히 전달하고, 반대로 공장의 상황을 바이어에게 오해 없이 알리는 것이었다. 사장님은 부산대 영문과 출신의 아주 명석하고 꼼꼼한 분이셨다. 당시 사장님 나이가 40대 초반이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젊은 나이셨구나 싶다.
보통 아침에 사무실에 오면 밤새 쌓인 이메일을 확인하고, 즉각적인 회신이 필요한 메일은 미루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처리를 했다. 내가 담당하는 이메일뿐만 아니라, 사장님 이름 앞으로 오는 이메일도 내가 대신 써서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단, 중요한 안건의 경우 사장님이 답변할 내용을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내가 메일을 쓰고, 보내기 전에 컨펌받을 것을 지시하셨다.
그때는 문법 검사기나 AI는커녕 인터넷 사전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오로지 나의 경험과 실력에 의지해 문장을 구성해야 했다. 사장님 이름으로 나가는 메일인 만큼, 예의를 갖추면서도 정확하게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를 골랐고, 시간을 들여서 내가 쓴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도록 몇 번의 수정을 거쳤다. 이렇게 쓴 메일을 사장님께 가져가서 컨펌받는 시간은 늘 떨리고 긴장되었다. 사장님은 매번 시험지를 든 빨간펜 선생님처럼 내 초안 위에 줄을 긋고 돼지꼬리 표시를 하며 문장을 수정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확인하시는 동안, 나는 영어 작문 시험을 치르는 듯 늘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했다. 나도 무역 사무직으로 나름 경력자인데, 메일을 늘 체크하시는 게 못 마땅하긴 했다.
내가 지금 당장 이 업무를 한다면 이메일을 쓰는 건 AI를 돌리는 것만으로 쉽게 해결될 텐데... 쩝..
11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도 영어 이메일을 쓰는 일은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고객 센터에 항의하거나 아이들의 학교와 소통할 때, 전화보다는 글로 쓰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이후 파파고
같은 번역 앱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편의 회사 관련 서류부터 각종 일상까지 모두 내가 담당했기에, 직접 부딪히고 수정하는 과정은 계속되었다.
그것이 내게는 고단한 지적 노동이긴 했지만, 영어 공부 하나는 확실히 한 셈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젠 "이러저러한 내용으로 영문 이메일 써줘"라고 부탁하면 AI는 단 몇 초 만에 나보다 훨씬 우아하고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낸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이메일이나, 친근한 어투로 써야 하는 문자 등 어떤 것도 주문할 수 있다. 물론, 간단한 것은 내가 쓰긴 하지만, 내용이 조금만 복잡해져도 AI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굳이 단어를 고민하며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편이 나에게 영어 이메일을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사라졌다.
이러한 변화를 보며 문득 궁금해진다.
이건 빨래터에서 고생하던 어머니들이 세탁기를 만난 것처럼 마냥 고마운 일일까, 아니면 인간이 사고하는 시간을 빼앗기는 위기일까? 미래를 다룬 영화 속 장면들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며 가끔 섬뜩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런 장면들이 하나씩 현실화되고 있는 것일까?
세탁기 덕분에 생긴 여유시간에 어머니들이 좀 더 많은 일을 쉽게 할 수 있었듯이, AI가 처리해 준 시간 또한 어떻게 보내야 할지 우리에게 숙제를 던져준다. 그런 시간을 마냥 도파민을 자극하는 영상들로 채울 수는 없다. 기계가 잘하는 일과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면, 우리는 이제 지성과 창의력을 고양하는데 힘써야 할 것 같다.
그중 하나가 글쓰기와 독서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깊고 넓은 독서를 통해 '내가 무엇을 써야 할지'를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내 내면의 생각과 고유한 경험을 담아낼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을 더 투자해서 나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일은 AI가 절대 대신할 수 없지 않은가.
25년 전, 사장님의 빨간 펜 아래에서 문장을 고치던 시간은 불편한 과정이었지만, 동시에 정확한 표현을 찾기 위한 치열한 사고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AI는 그 섬세한 노동을 단 몇 초만에 처리해 주며 우리에게 시간을 돌려주었다. 어떻게 보면 지적 노동의 해방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AI가 준 시간은 우리에게 덜 중요한 일을 제거하고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이 귀중한 여유 시간에 글을 쓰며, 무엇을 전달할 것인지 그리고, 내 글에 어떤 고유한 관점과 진심을 담을 것인지를 더 고민해 보게 된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도구를 주었지만, 본질적인 질문은 여전히 우리의 몫인 거 같다.
앞으로의 시대는 AI가 효율을 책임지는 동안,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하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정의될 것 같다.
인간이 그 시간을 지혜롭게 잘 쓰길..그래서 .AI에 지배당하지는 않기를 괜히 노파심을 부려본다.